영화 '전,란', “운명에 맞서라”…우정에 칼 겨눈 두 남자
영화 '전,란', “운명에 맞서라”…우정에 칼 겨눈 두 남자
  • 김민주
  • 승인 2024.10.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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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 란’
조선시대 기나긴 임진왜란 전후
신분제 흔들리는 혼돈 담아내
박정민·강동원 화려한 검술액션
박진감·속도감 있게 펼쳐져
박찬욱 감독, 각본·제작 참여
감각적 카메라 연출과 판소리
장르 넘나드는 배경음악 등
장대한 서사극의 깊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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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란’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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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란’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지난 2일 개막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영화 ‘전,란’이 처음 공개됐다. 영화제에 극장 개봉작이 아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작품이 개막작에 선정된 것은 이번이 최초다.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자 독립영화 등을 개막작으로 선보인 기존의 역사와 달리 극장 개봉을 하지 않는 OTT 영화, 특히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작품을 영화제의 시작으로 선보이는 것에 대해 취지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직접 관람한 영화 ‘전,란’은 ‘대중성’을 겨냥한 이번 영화제에 확실하게 부합하는 작품임이 틀림없다. 역대 넷플릭스 K영화 콘텐츠 가운데 단연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영화 ‘전,란’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영화는 천영(강동원)과 종려(박정민)의 관계를 중심으로 부조리한 신분제로 고통받던 백성들의 삶을 조명한다. 아버지의 빚으로 억울하게 양인에서 노비로 전락한 천영(강동원)은 이름난 무관 집안의 자제 종려의 노비가 된다. 천영의 주된 업무는 도련님을 대신해 회초리를 맞는 일이다. 종려는 검술 수련 중 상대에게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해 항상 패배한다. 그럴 때마다 매를 맞는 건 천영이다. 억울한 천영은 회초리를 맞으며 눈으로 검술을 익혀 매일 밤마다 몰래 종려에게 검술을 가르친다.

둘은 노비와 양반이라는 신분을 넘어 서로를 의지하는 친구가 된다. 어른이 된 천영은 노비에서 면천되어 자유를 얻으려 하고 종려는 이를 돕는다. 천영은 매번 무과시험에서 낙방하는 종려를 대신해 과거 시험을 보기로 하고 종려는 아버지에게 천영의 노비 문서를 불태워 없애달라는 약속을 받기로 한다. 천영의 도움으로 시험에 붙은 종려는 벼슬길에 올랐지만 끝내 종려의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화가 난 천영은 종려 집안에 대한 분노를 가진 채 집을 떠나게 된다.

첩첩산중으로 나라는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나라가 흉흉해진다. 백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치려는 왕의 계획을 들은 종려는 가족들에게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알린다. 하지만 왕을 호위하던 중 종려의 집안 노비들이 란(亂)을 일으켜 가족들이 모두 죽게 된다. 종려는 이 란의 주동자를 천영이라 오해하고 복수를 다짐한다. 과거 천영은 검술 수련을 하며 종려에게 “네 칼에는 분노가 없어”라고 말하자 종려는 “걱정 마. 진짜 적을 만나면 내 칼에도 분노가 실릴테니” 라고 대답했다. 이제 종려의 분노의 칼은 천영를 향할 수 밖에 없다. 7년의 기나긴 왜란을 겪은 후 두 사람은 돌고 돌아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된다.

 

영화 ‘전,란’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영화 ‘전,란’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1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전,란’은 임진왜란 전후를 배경으로 노비들의 양반에 대한 반란과 궁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를 그렸다. ‘전란’(戰亂)의 사전적 의미는 ‘전쟁으로 말미암은 난리’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은 ‘전’과 ‘란’ 사이에 ‘쉼표’를 넣어 ‘전,란’으로 끊었다. 이는 단순한 전쟁 시대극을 보여주는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관군은 자신들의 백성을 베고, 노비는 의병이 되어 왜놈을 벤다. 영화는 전쟁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임진왜란을 거치며 엄격하게 유지됐던 신분제가 흔들리는 혼돈과 그 과정에서 각기 다른 선택을 한 두 주인공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담아내면서 연출 의도를 보여준다. 깨부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대결이 화려한 검술 액션을 통해 박진감 넘치고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영화 ‘전,란’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을 정도로 영화에서 표현되는 폭력의 수위는 꽤나 세다. 이는 전쟁 당시의 참혹한 상황에 걸맞은 장면들이라 설득력이 있다.

강동원은 출신이 노비일 뿐 기품이 넘쳐흐르는 검을 다루는 의병으로, 박정민은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점차 변화해 악한 감정을 지닌 무사를 연기한다. 전쟁이 발발하자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무능한 왕은 차승원이 맡았다. 어떤 역경에도 꺾이지 않는 굳센 의지를 가진 의병에는 김신록이, 수군 대신 내륙에서 왜구에 맞서 싸운 의병들을 통솔한 현명한 장군은 진선규가 맡으며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여기에 교활하면서도 유능한 왜장 겐신역은 정성일이 연기하며 캐릭터들이 모두 살아있는 영화가 완성됐다.

영화 '전,란'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영화 '전,란'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입체적인 인물들은 전란의 시대를 겪으며 더욱 진하게 각자의 색깔을 낸다. 특히 극 중 ‘청의신검’으로 불리는 천영은 다양한 적과의 싸움을 통해 전투 스타일을 매번 익히고 그에 맞게 대응하며 다채로운 검술을 선보인다. 결국 ‘코 베는 귀신’이라 불리던 공포의 대상 왜장을 압도하는 장면에서는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종려는 강하고 거친 액션을 선보이며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박정민은 액션뿐만 아니라 영화 내내 수시로 변하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노비인 천영을 안쓰럽게 여기는 양반 도련님의 얼굴을 보여주다가도 살기 어린 눈빛을 장착해 나룻배에 오르려는 피난민들의 손을 가차 없이 절단해버리는 매정함을 보여주며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영화 ‘전,란’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영화 ‘전,란’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영화 ‘전,란’은 박찬욱 감독이 각본과 제작에 참여했다. ‘공동경비구역 JSA’ 미술감독을 맡은 김상만 감독이 연출을 맡으며 함께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박찬욱표 영화답게 숨기지 않고 튀어나오는 유머 코드도 자연스럽게 융화되며 스토리 전개를 해치지 않는다. 특히 장르 영화에 특화된 김상민 감독의 감각적인 카메라 연출과 판소리, 락을 넘나드는 배경음악은 영화의 몰입감을 더하며 장대한 서사극의 깊이를 완성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람했지만 다시 한번 보며 곱씹고 싶어지는 영화다. 강렬한 캐릭터들의 조화로움을 이 영화의 최대 강점으로 꼽고 싶다.‘전,란’은 넷플릭스를 통해 11일 전 세계에 공개된다. 서사, 스케일, 연출, 재미. 모든 면이 부족함 없이 완벽하다. 오히려 극장이 아닌 스트리밍 환경으로 접해야 하는 상황이 가장 아쉬울 따름이다.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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