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진정성 있게 음악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눈부시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 곡을 바칩니다”
카운터테너 최성훈이 이렇게 말을 건넸다.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 전주가 나오고 그의 목소리로 들려질 노래의 첫 소절을 기다리고 있는 순간이다. 뜻밖의 순간에 전해진 위로와 응원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내레이션이 아니라 음악의 일부로 녹아들어 감동을 더욱 고조시켰다.
크로스오버그룹 라포엠(LA POEM)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입성 공연을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라포엠(유채훈, 박기훈, 최성훈, 정민성)은 지난 26~27일 양일간 '2024 라포엠 단독 콘서트 [LA POEM SYMPHONY]'(이하 '라포엠 심포니‘)를 개최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4명의 아티스트가 전해주는 위로와 응원으로 가득찼다.
이날, 라포엠은 67인조 아르츠심포니오케스트라(지휘 안두현)의 웅장한 연주와 함께 '오! 포르투나’(O Fortuna)로 포문을 열었다. 보통 수십명의 합창단과 함께 불리는 곡을 멤버 4명의 목소리 만으로 공연장을 가득채워 시작부터 놀라움을 선사했다. '강 건너 봄이 오듯', '내 맘에 강물', '얼굴', '그리운 마음', '그리운 금강산' 등 한국가곡 메들리는 아름다운 한국가곡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이어진 무대는 서로 다른 음색과 질감을 가진 네 명의 솔리스트의 매력을 보여주는 개인무대였다.
첫 무대는 유채훈이 열었다. 기타 선율에 맞춰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 세레나데, ‘내 이름을 알고 싶으시다면’(Se il mio nome)으로 설렘 가득한 무대를 선보였다. 최성훈은 ‘아베 마리아’(Ave Maria)를 자신만의 감성으로 재해석한 무대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정민성은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가신들, 이 천벌 받은 놈들’(Cortigiani, Vil Razza Dannata)을 비통함과 절규의 감정을 담아 부르고, 박기훈은 ‘무정한 마음’(Core 'ngrato)을 선곡해 특유의 단단한 음색으로 폭발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멤버 모두 성악을 전공한 '성악 어벤져스'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이어 라포엠은 지난해 발매한 가곡 앨범 중 '미별: 아름다운 이별', '낙엽'의 무대를 꾸몄다. 특히, 심포니 공연 첫날이었던 26일은 지난해 라포엠이 창작가곡 앨범 ‘시·詩·POEM’을 발매한 날이라 의미를 더했다.
핀란드 출신의 반도네온 연주자 빌 힐툴라(Ville Hiltula)와 함께 한 정열적인 탱고음악 무대도 매력적이었다. '또모 이 오블리고‘(Tomo Y Obligo), '포르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 '라 쿰파르시타‘(La Cumparsita),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날엔’(El Dia Que Me Quieras)로 이어진 무대는 관객들의 힘찬 박수를 받았다.
라포엠은 1부 마지막 곡으로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중 '축배의 노래‘(Libiamo ne' lieti calici)를 선곡해 흥겹고 풍성한 하모니로 무대를 꽉 채웠다.
‘미제레레’(Miserere)로 문을 연 2부는 경건함과 흥겨움을 오가는 폭넓은 음악적 구성으로 펼쳐졌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라포엠의 오리지널 곡 ‘왈츠 인 스톰’(Waltz In Storm)은 쉽게 라이브로 들을 수 없었던 곡이라 더욱 특별했다. '이프 온리’(If Only),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Quizas, Quizas, Quizas) 등 다양한 분위기의 선곡이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지며 공연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2부 솔로무대에서 최성훈은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담은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를. 박기훈은 민요를 가곡으로 편곡한 '박연폭포'를 흥겹게 , 정민성은 러시아 가요 '우리는 얼마나 젊었었나’(Kak Molody My Byli)를 따뜻한 중저음의 목소리로 불렀다. 4인 4색 솔로무대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유채훈은 조용필의 명곡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가곡형식으로 재해석해 불러 대극장을 감동으로 물들였다.
미리 공개된 세트리스트에는 없었던 깜짝무대도 있었다. ‘허리케인 2000’(Hurricane 2000)과 미국투어 무대에서 처음 선보여 화제를 모았던 ‘리빈 라 비다 로카’(Livin' La Vida Loca)는 67인조 오케스트라와 팬들의 응원봉 불빛과 어우러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을 열기로 가득채웠다. '허리케인 2000'은 그룹 '스콜피온스'가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불렀던 곡으로 라포엠과 관객이 함께 '히어 아이 엠'(Here I am)을 외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과천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인 안두현 지휘자와의 호흡도 좋았다.
앙코르 무대에서는 ‘대성당들의 시대’와 ‘기도’로 깊은 울림을 전하며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다. 라포엠은 최종 앙코르곡인 ‘기도’의 선곡 이유를 그들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처음 불렀던 곡이라 선곡했다고 밝혔다.
이날 관객들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된 공연에서 곡의 분위기에 따라 울고 웃고, 아낌없는 기립박수를 보내며 가을날 종합선물같은 공연을 즐겼다.
이틀간의 공연을 마치며 유채훈은 "양일간 진행한 콘서트에 많은 분이 찾아주셔서 정말 행복하다. 무엇보다 비교할 수 없는 팬분들, 관객분들이 자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최성훈은 "라포엠이 4년동안, 짧지 않은 시간인데 굉장히 많은 일을 했다. 최근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미국 투어도 다녀왔고,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라포엠 심포니’를 하게 됐다. 항상 노래도 열심히 하고 여러분들을 재미있게 웃겨드리려고 노력하지만 무엇보다 진심으로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는 팀으로 항상 진정성 있게 노래하려고 한다. 오늘 특별히 감동적인 느낌이 있다."고 전했다.
박기훈은 "우리 형들이 아니었으면 이 무대를 해내지 못했을것 같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오늘 와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정민성은 "세번의 심포니 한번 한번 진행하면서 저희도 많이 성장한 느낌이다. 네번째 심포니에서 뵙겠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라포엠 심포니'는 지난 2022년부터 라포엠이 매해 선보이고 있는 브랜드 공연으로 장르와 시대를 초월한 클래식과 크로스오버 명곡들을 라포엠만의 색깔로 재해석해 관객들에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교향곡 같은 무대를 선사한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자신들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누가와도 즐길 수 있는 무대를 표방하는 '여름밤의 라라랜드'와 함께 라포엠의 시그니처 공연 중 하나이다.
데뷔 5년차, 4주년을 지난 그들은 매 무대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을 거듭해 놀라움을 준다. 어쩌면 심포니 첫날 공연에서 정민성이 '멤버들이 3년 내내 다른 곡 하느라 고생했다'라고 농담처럼 한 말 속에 그 이유가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국내외 콩쿨을 휩쓸던 그들은 '팬텀싱어3'로 첫 등장 했을 때부터 솔리스트로서는 완성형처럼 보였다. 팀 결성후 그들은 한 순간도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해왔다. 그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행보를 보이는 이유다. 이번 공연 역시, 바쁜 스케쥴 가운데서도 시간을 쪼개고 쪼개 마치 대회를 나가는 것처럼 준비를 하고 연습을 해왔다는 후문이다.
단 이틀, 서울에서만 진행된 공연이라 공연장에는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등 전국 각지에서 온 팬들도 적지않게 보였다.
전 세계적으로 권위를 갖는 미쉐린(미슐랭)가이드는 별점으로 식당을 평가한다. 1스타는 그 지역을 여행할 때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 2스타는 그 요리를 맛보기 위해서 경로를 벗어나서라도 찾아갈만한 곳, 그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3스타는 최고의 요리가 제공되는 곳으로서 그 음식을 먹기 위해 여행을 가도 아깝지 않은 곳이라는 의미다.
마치 미슐랭 3스타 음식점처럼 라포엠의 공연 역시 누군가에게는 그들의 음악만을 목적으로 기꺼이 먼 거리를 달려갈 만한 가치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늘 그랬듯이 이번 공연 후기도 똑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어야만 할듯하다. '라포엠 심포니', 단 두 번의 공연만으로 보내기에는 정말 아쉽다.
배수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