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양조장 `단지’ 값으로 뺏긴 지역문화방송
<달구벌 아침>양조장 `단지’ 값으로 뺏긴 지역문화방송
  • 승인 2012.05.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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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구문화방송 노조가 파업을 하고 있다. 기자들은 마이크를 놓고 피디들은 스튜디오에 불을 끄고 거리로 나섰다. 간부들도 보직사표를 내고 행동을 함께 하고 있다. 회사가 만들어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방송의 공공성 확보와 자율경영을 내걸고 서울문화방송과 전국 계열사들이 오래 동안 파업을 하고 있는 상황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에 줄을 댄 사장이 들어서고 그 사장은 언론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방송사 경영을 엉터리로 한다는 것이 파업을 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주장이다.

대구문화방송의 파업 이유는 여기에 하나가 덧붙여진다. 지난 5월 7일 서울문화방송 간부를 대구문화방송 사장으로 임명했다는 것 때문이다. 대구문화방송 노조는 이를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고 거부하고 있다. 지난날의 경험으로 보면, 이렇게 임명된 사람은 지역사회와 지역방송의 발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다음 단계에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자리에 갈까라는 궁리만 한다.

말하자면 대구문화방송 사장이라는 자리를 자신의 출세를 위해 밟고 지나가는 디딤돌 정도로 생각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회사 경영에도 문제가 생길 뿐 아니라 대구문화방송이 지역사회와 점점 멀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대구문화방송 노동조합은 오래 전부터 `자사’ 인물을 사장으로 임명하라는 요구를 해왔고 지난 두 차례는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나는 이 파업이 방송의 공공성과 자율경영을 확보하려는 노력이기도 하고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대구문화방송이 서울문화방송에 종속된 과정을 이해하면 왜 이 파업이 `역사적 정의’를 세우는 일이라고 말하는가를 알 수 있다.

1980년 신군부는 언론 장악 계획의 일환으로 지역문화방송의 민간소유 주식 가운데 절반 이상을 서울문화방송이 가지도록 했다. 서울문화방송이 지역문화방송의 대주주가 됨으로써 지역문화방송은 경영, 보도, 프로그램 편성의 권한을 서울문화방송에 빼앗기게 되었다. 신군부는 서울문화방송을 통해 손쉽게 지역문화방송을 장악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지역문화방송의 주식을 서울문화방송으로 넘기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당시 서슬이 시퍼렇던 국가권력기관에 지역문화방송 사장을 불러놓고 주식을 넘기라고 강요했다. 그곳에 불려간 사장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권력기관의 요구를 회피하기도 했으나 결국은 모두 굴복을 하고 말았다. 광주를 피로 물들인 정권이 아니었던가? 그들의 요구를 거절할 사장은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 불려간 사장들에게는 모멸감이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을 거절했다가는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르는 위협적 상황이었다.

그들에게는 어떤 저항 수단도 없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짐짓 도장을 거꾸로 찍기도 하고 이름을 틀리게 쓰기도 했다 한다. 신군부의 폭력적 요구에 응하기는 하지만 그것의 부당함을 어디엔가 표시해 두고 싶었다는 것이다.

지역문화방송 주식을 서울문화방송으로 넘길 때, 그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은 것도 원통한 대목이라고 말한다. 당시 신군부의 협박으로 지역문화방송 주식을 넘기는 도장을 찍은 어떤 사장은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양조장 `단지’ 값으로 넘겼다.” 지역문화방송을 넘기는 과정에서 회사의 가치평가를 엉터리로 받았다는 말이다.

양조장에는 술을 익히는 단지가 시설의 전부이지만 양조장의 값을 평가하는 데는 단지 값이 전부가 아니지 않는가? 단지 값만을 계산해서 양조장을 달라고 하는 것처럼 방송사의 가치 평가를 그런 엉터리 방식으로 계산해서 가져갔다는 것이다. 당시 방송사의 자산이라고 해봐야 낡은 카메라와 녹음기, 그리고 마이크가 전부였을 텐데 그런 것들의 자산 가치만을 평가해서 주식을 넘기도록 했다.

그런 점에서 지역문화방송의 자율성은 신군부의 언론 장악 계획에 따라 `빼앗긴’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대구문화방송의 파업이 역사적 정의를 세우는 일과 맞닿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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