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특수 활동비는 쌈지 돈인가
<대구논단> 특수 활동비는 쌈지 돈인가
  • 승인 2009.04.2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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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大記者)

큰 조직을 움직이는 단체나 회사에서는 업무 활동비나 판공비라는 이름으로 비용을 지출하는 수가 많다. 영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업무 활동비를 판촉비라고 부르기도 하며 영업비용으로 인정되어 세금 혜택을 받게 된다. 이런 비용들을 통틀어 판공비라고 부르면 편한데 정부기관에서도 부처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부르기도 하지만 대개 그런 이름이 적용된다.

그런데 유독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은 특수 활동비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 이름이 새삼스럽게 부각된 것은 이번에 노무현 스캔들과 관련되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특수 활동비 12억을 횡령했다는 검찰의 발표가 나오면서부터다. 청와대 특수 활동비는 예산상 약 100억에서 200억 정도가 책정된다고 한다.

이 돈은 아마도 대통령과 비서실 고위층들이 다양한 쓸거리에 맞춰 집행될 것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영수증도 필요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이 신청하면 내주도록 되어있는 모양이다. 그러기에 일개 총무비서관이 12억을 빼낸 것 아니겠는가. 특수 활동비 전체 예산의 10% 정도를 그가 쓸 수 있다면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들은 더 써야 할 곳도 많을 텐데 총무비서관보다 못 가져가는 수도 생길 수 있겠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의 청와대 집사역할을 했다는 그의 막강한 위상을 짐작케 한다. 그가 이 돈을 가져다가 자기의 업무를 집행하는데 요긴하게 썼다면 누가 뭐랄 사람이 있겠는가. 대통령을 보좌하는 주요직책을 가진 사람이니 국가를 위해서 돈을 쓰는 일이야 얼마든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퇴직한지 1년도 훨씬 넘은 지금까지 차명계좌에 넣어두고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검찰의 수사선상에 걸린 것이다.

재직 시 돈을 다 쓰지 않았으면 다시 반납하면 그만이다. 과거 이승만 정권 시절 변영태 국무총리가 외국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남은 돈을 반드시 국고에 반납한 사실은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된다. 그의 청렴결백은 지나치리만큼 철저했지만 우리의 이도(吏道)는 이래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모범답안이었다.

그 당시 어려운 정부 살림에 국무총리가 조금 흥청망청 썼다고 해서 누가 시비를 걸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를 고수했다. 이런 모범을 본받지는 못할망정 쓰지도 않을 돈을 꺼내어 남의 명의로 감춰뒀다는 것은 국민의 혈세를 도둑질한 공금횡령이다. 지난번 구속을 면했던 그에게 구속영장이 떨어진 것은 공금횡령죄가 추가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특수 활동비는 국가정보를 다루는 국가정보원의 전유물이다시피 되어 있는 것인데 국정원 예산 전부가 이에 속한다. 이를 활용하여 과거 김영삼 정권시절 정치자금의 일부를 국정원 계좌에 넣어놓고 썼다가 퇴임 후 호된 경을 치른 일도 있다. 이 문제는 사법처리 되었던 강삼재가 마지막 선고를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의 돈이다”라고 이실직고했으나 자신만 무죄를 선고받았을 뿐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추도 하지 않았다.

이 돈은 청와대의 특수 활동비를 쓴 게 아니라 대선자금 중 남은 돈으로 추측되었다. 아무튼 대통령과 관련되어 쓰는 돈이라면 정확하게 보고할 의무는 없다고 하더라도 나라를 위해서 분명히 썼다는 정황만은 확실해야 국민들이 안심한다. 영수증 내놓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고 해서 조자룡 헌 칼 쓰듯 마구잡이로 비서관들이 빼내 쓰는 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청와대를 관장하고 있는 비서실장은 이에 대한 기강을 확립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정상문의 공금횡령 사실이 밝혀진 뒤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은 “그럴 리가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고 전해진다. 참으로 한심한 청와대 일꾼들이다. 검찰에 의해서 밝혀진 일을 믿지 않는 것은 그의 위치가 그렇기 때문이라고 봐줄 수도 있지만 책임자였던 사람이기에 “사실 관계를 확인한 후에 말하겠다.”는 정도의 겸손을 보여주는 것이 국민에 대한 미안함을 표하는 공직자의 자세 아니겠는가.

무조건 부인부터 하고보는 태도는 국민을 무시하거나 얕잡아보는 상투적인 행위다. 지난 4월17일자 본란에서는 이미 이런 사태를 예측한 듯 `공금횡령은 상급자까지 처벌해야’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정상문이 공금을 횡령할 당시 비서실장이 문재인 이었다면 그는 부하직원의 부정비리를 감찰이나 감사에 의해서 적발해내지 못한 불찰이 있다. 직무태만 등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이 문제는 검찰에 의해서 노무현 소환이 이뤄진 다음 결말이 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공직자의 올바른 자세를 확립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반면교사로 알아야 한다. 신청만 하면 쓸 수 있는 돈이라고 해서 쌈지 돈으로 알고 있었다면 이는 애당초 공직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국민의 혈세는 종이 한 장이라도 아껴 쓰는 마음의 자세로 출발해야 한다. 전국의 공직자들이 명심하고 아로새겨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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