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하게 날선 상처 역설적인 치유 흔적
팽팽하게 날선 상처 역설적인 치유 흔적
  • 대구신문
  • 승인 2017.05.0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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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가 주목한 지역 작가 3人의 작품세계 <3> 김 완

버려진 종이 상자서 영감

골판지 위 칼자욱 새겨

상처·치유·깨달음 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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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에 초대된 김완이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팔조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기 가세가 기울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났다. 결핍이 곧 상처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소원했던 미대 진학이 좌절되고 속앓이를 했다. 그래도 그림에는 소질이 있어서 각종 공모전과 시전에 작품을 출품하면 큰 상을 타고는 했다.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포항에서 그림 레슨도 하고, 각종 공모전에 심사위원도 맡으며 나름의 예술세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이 되어 갈수록 비전공자라는 꼬리표가 더욱 선명해졌고, ‘상처’가 마음을 헤집었다. 30대 중반에 미대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작품에 대한 욕구가 올라왔다.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예술을 위한 탐구’가 시작됐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그래서 더 익숙한 ‘상처’가 또렷하게 보였다. 김완의 예술주제 ‘상처’가 작품이라는 이름을 얻는 순간이었다.

“나만의 예술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할지 고민했어요. 해답은 ‘내 이야기’였죠. 그리고 ‘상처’가 보였어요. 상처는 나만의 문제이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반적인 주제이기도 했죠.”

새 화풍을 만들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갔다. 학부에서 동양화를 선택하면서 선긋기부터 다시 팠다. ‘동양적인 선’, ‘김완의 선’을 찾기 위해 지난한 시간을 보냈다. 한지와 철판 등 다양한 재료가 오고갔고, 그러다 골판지를 만났다.

“차를 타고 가는데 앞 트럭에 실려 있는 평면 골판지를 보고 묘했어요. 당장 편의점에 버려진 종이 상자를 뜯어 잘라봤죠. 그랬더니 애절하면서도 까칠까칠한 칼자욱이 난 선이 나왔어요. 제가 찾던 우리네 상처와 닮은 선이였죠.”

칼로 자른 단면의 선을 평면에 집적했다. 선이 면이 되고 공간으로 확장됐다. 그리고 색도 칠했다. 팽팽하게 날 선 선들 사이에 햇살을 끌어들이고, 사람(人)도 세웠다. 하늘과 바다도 들여놓았다. 구상과 비구상을 혼용했지만 완결지점은 추상이었다.

“예술은 리얼리티라고 봐요. 현재 사람들의 삶이 빠지면 사실주의에 머물 뿐이죠. 서양은 추상에 지적 개념과 자신들의 삶을 동시에 구현해서 리얼리티를 실현했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지적 장식으로 머문 느낌이랄까? 나는 추상에 지금 내 삶을 더해서 우리의 추상을 구현하고 싶었어요.”

칼자욱이 선명한 상처난 단면을 팽팽하게 세워서 하나의 세상을 구축한다. 이 새로운 세상은 색즉시공(色卽是空) 상태. 번뇌와 깨달음, 색과 공이 대립과 차별을 넘어 하나로 수렴되는 깨달음의 공간이자 우주다. “싸구려로 취급받는 물질인 골판지로 치유와 깨달음이라는 고고한 세상을 창조했어요. 이 공간에 수많은 저의 상처와 삶의 이야기들을 담았죠. 현실의 아픔,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선을 세우면서 그 너머의 존재와 우주로 확장했어요.”

국내에서 무명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지만 해외에서의 반응은 늘 좋았다. 중국 북경 상상미술관, 광저우 샤이만갤러리, 상하이, 일본과 뉴욕 첼시 에이블파인아트 갤러리에서 개인전과 초대전을 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초대작가로 선정된 것은 그 정점에 있다.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파는 것보다 좋은 미술관이나 명망 있는 공간에서 개인전을 하는 것이 진짜 하고 싶은 것입니다.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에 초대된 것은 그런 바람에 큰 발자욱을 남기는 것 같아요. 기쁘기도 하고 겁도 나지만 그들의 선택에 부합하는 전시를 보여주고 싶어요.”

그가 초대된 2017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퍼스널 스트럭쳐(Personal Structure)’은 13일부터 11월26일까지 베니스 명소 리알토 다리 근처에 위치한 팔라조 벰보와 팔라조 모라 두 곳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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