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화 인생 40년…‘인생 2막’ 밑그림이 되다
풍경화 인생 40년…‘인생 2막’ 밑그림이 되다
  • 황인옥
  • 승인 2017.11.24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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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방, 28일부터 대백프라자서 회고전
60년대 유화물감 대신 수채화 선택
물감 흡수하는 기름종이 특성 살려
농촌풍속 등 토속적 한국 풍경 담아
한국 최초 수채화 교본 작품 수록
아동미술과 창설 등 선구자 역할
“화업 돌아보고 인생 후반 새 시작”
윤정방
풍경을 소재로 기름종이와 지화 등의 다양한 기법의 변화로 자신만의 풍경수채화를 완성한 원로화가 윤정방의 개인전이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12월 3일까지 열린다.

작업실이라고 알려준 주소를 인터넷 검색창에 입력하자, 아파트가 떴다. 대구 중심에서 차로 30여분을 달려가야 했다. 경북 경산시에서도 끝자락이었다. 정면에는 남천이 아파트를 굽어 돌았고, 측면에는 낮게 깔린 성암산 자락이 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부인이 야생화로 꾸며놓은 베란다 정원과 바깥 풍경이 경계 없이 녹아들어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배산임수가 부럽지 않았다. 원로 풍경화가 윤정방의 전원같은 작업실 겸 집이다.

“퇴직하고 작업에 집중할 장소를 찾았다. 청도에 전원주택을 지을까도 생각했는데 그래도 도심에 있어야 할 것 같아 고민하던 중에 이곳 풍경을 보고 바로 결정했다. 풍경화가의 작업실이라면 이 정도 풍경은 품어야 하지 않겠나?”

◇지화(指畵)와 기름종이로 다양한 풍경화 도전

대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끌려 평생 풍경화를 그렸다. 좋은 풍경을 찾아 여행을 다녔고, 화폭에 옮겼다. 퇴임 후 풍광 좋은 산천에 삶의 터전을 잡은 것도 아름다운 풍광을 곁에 두고 즐기고 싶어서다. 풍경화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작은 공간에 광활한 대지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것이 풍경화다. 이 작은 그림 하나만으로 집에 아름다운 풍경을 들여놓을 수 있다. 그것이 풍경화의 매력이다”

윤정방은 풍경을 수채화의 담백함으로 담아왔다. 지난 40여년 동안 풍경화의 기본구도인 원근법과 차별화된 시각과 구도로 그만의 고착화된 수채화풍을 구축해왔다. 특히 주변의 산야와 들녘, 강변, 소나무 등 향토색 짙은 소재로 한국적 수채화를 구현했다.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는 한국미술계에서도 인정받아 국내 최초 수채화 교본인 ‘풍경 수채화’(도서출판 우람, 1995)에 작품이 수록되기도 했다.

작품의 소재는 풍경 속에서 찾지만 그만의 감흥과 기법을 입혔다. 가장 눈에 띄는 독자성은 기름종이(일명 장판지). 그에게 기름종이는 캔버스 대용이다. 모르긴 해도 장판지로 수채화를 그리는 화가는 그가 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다. 기름종이는 돌담이나 기와집, 농경시대의 농촌풍속, 절 풍경 등 과거의 토속적인 한국적인 풍경을 그릴 때 주로 사용한다.

장판지를 물에 씻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서 물감이 스며드는 상태가 되면 스케치를 하고 물감을 칠해 작품을 완성한다. 유성 기름이 덧칠된 종이에 수용성을 가미하는 기법으로 표현한 기름종이 풍경화에는 깊은 색과 따뜻함이 어려있다. ‘온돌방 선생’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그런 정서와 무관치 않다.

◇포근한 국내풍경, 산뜻한 유럽풍경

재료가 부족하던 시기인 60년대에 유화물감을 살 수 없어 차선책으로 수채화를 택했다. 경제적 고려에 의한 선택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담백함과 경쾌함, 그리고 속필이 가능한 수채화의 매력에 마음이 끌렸다. 빠른 표현이 가능한 수채화는 성격이 급한 그와 잘 맞았다.

늘 새로움에 목이 말랐다. 일반적인 수채화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럴때마다 윤정방 만의 풍경화에 대한 갈증도 커져갔다.

첫 변화가 지화(指畵)였다. 수채화 물감을 바른 후 손으로 풍경의 분위기를 조정했다. 이로써 불투명 효과가 생겼고, 완성된 작품은 유화의 분위기와 흡사했다. 장판지도 수채화 기법의 확장으로 차용됐다. 캔버스와 달리 은은하게 물감을 흡수하는 기름종이의 특성이 수채화를 유화의 깊이감으로 끌어 올렸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다. 그런 도전의 결과 중후한 무게감과 개성미가 넘치는 윤정방만의 풍경을 구현했다는 호평을 많이 받아왔다”

화가에게 여행은 보약이다. 특히 풍경화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들에게 여행은 삶의 활력소이자 작품 구상에 필수요소다. 윤정방도 가능하면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며 창작 욕구를 충족하려 했다. 국내여행은 물론이고 유학 후 독일회사에 디자이너로 근무 중인 아들 덕에 유럽 여행을 현지인처럼 다녔다. 그의 작품에서 배어나는 강한 현장감은 감흥을 건드리는 곳이면 일정을 바꿔서라도 현지 스케치를 고집하는 철저함으로부터 왔다.

“유럽의 여러 미술관과 시골을 다니며 소재를 찾았다. 여행과 함께 독일의 시민대학(V.H.S) 수채화 과정도 이수했다. 이러한 도전은 유럽 유학을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희망을 실현하기 위한 발로였다”

◇국내아동전문 미술교육의 선구자 인정

윤정방을 언급할 때 아동미술은 핵심이다. 그는 국내 아동미술교육의 씨앗을 뿌리고 이론과 실기를 계몽한 아동미술의 대부다. 해방 후 격동기, 아동정서교육이 불모지였을 시기, 아동미술 관련 논문을 발표하고 교재를 개발했다. 또한 대학에 아동미술학과를 창설하고 학문적인 기반도 구축했다.

아동미술 선진국인 일본의 책과 자료를 구해 번역을 하고 자신의 경험을 접목해 아동미술의 체계를 세워나갔다. 아동미술교육의 목적을 ‘미술의 교육’이 아닌 ‘미술을 통한 교육’으로 설정하고, 아동들의 정서와 창의력 개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노력은 결실로 답했다. 아동미술대회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던 인도 상 카본 대회에서 한국 대표로 수상하고, 국내에서도 수많은 지도자 상을 수상하며 일약 유명세를 탔다.

1963년 중앙대학교(서라벌예대) 회화과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화가지망생은 가난을 자초한다고 해서 주변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나는 굴하지 않고 적성을 찾아 한평생 소질과 취미를 살려 직업으로 삼고 살았다. 결과적으로 잘 선택한 인생행로였다”

당시 그가 설립한 미라보 미술연구소는 전국에서 유명했다. 자녀교육열이 남달랐던 엄마들이라면 앞 다투어 자녀들을 미라보 미술학원에 보내려 했다. 그래야 자녀교육의 최첨단을 달린다고 인식할 정도였다.

윤정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구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상아와 장애아들의 묘화표현 특성연구(1980)’로 석사학위를 취득하며 전문성을 강화해갔다. 이 논문은 우리나라 최초 지적장애아동들에 관한 미술 논문으로 주목 받았다.

그는 이후 수성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를 거쳐 같은 대학에 한강 이남, 대구 최초로 아동미술학과를 신설하고 초대학과장을 역임하며 정년을 맞았다. 대학재직 시기에 각종 아동미술행사를 주관·참여하고 부모교육, 교사연수 등 수많은 강의를 다녔다. 그의 교육자로서의 행적은 지역 미술계에서는 결코 가볍게 다루어선 안 될 업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대과학 문명의 폐해는 인간성 상실과 자연파괴다. 아동미술 교육의 주목적은 인성교육이므로 생태교육에서 그 가치를 찾아야 한다”

◇윤정방 화업인생을 회고하는 희수전 열려

윤정방이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77세 희수(喜壽)전을 연다. 전시에서는 1960년대부터 시대별 대표작 50여점을 선보인다. 사실 이번 전시는 40여년 화업을 정리하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열리고 있다. 하지만 더 큰 의미로 꼽자면 ‘새로운 시작’이다. 퇴임한 지금이야말로 본업으로서의 화가에 충실할 시기라는 것.

“기운생동 할 젊은 시절의 그림이 더 좋을 수도 있으나,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원숙미가 생긴다. 이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좋은 작품제작에 매진하고 싶다” 전시는 28일부터 12월 3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 A관. 053-420-801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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