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함께 한 60년…최고의 행복”
“그림과 함께 한 60년…최고의 행복”
  • 남승렬
  • 승인 2016.10.24 21: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로화가 최돈정 개인전

30일까지 수성아트피아

지역서 추상회화 정립 앞장

물방울 튄 듯한 기법 활용

소리·자연미 등 대표 연작에

한국적 형상·색채 녹여내

시대별 화업 조망 60점 전시
/news/photo/first/201610/img_210106_1.jpg"20161024_162913/news/photo/first/201610/img_210106_1.jpg"
최돈정의 화업 60주년을 기념하는 ‘행복한 시간여행’전이 25일부터 30일까지 수성아트피아 전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4일 화업 60주년 기념전인 ‘행복한 시간여행’전 준비에 여념이 없는 서양화가 최돈정 화백이 오래된 기억 하나를 끄집어 보여줬다. 사연은 이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재학시절 일주일에 30~50호 규모의 작품 한 점을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엄수해야 했다.

낭만적인 대학생활에서 일주일에 한 작품 제출은 그의 발목을 잡았고, 어느 날 치밀어 오른 부화를 이기지 못해 붓을 씻기 위해 준비해둔 석유통을 발로 차버렸다.

발에 힘이 너무 들어간 탓일까? 석유통이 엎질러지면서 석유 방물이 과제물로 그려놓은 캔버스 위에 튀었다. 다시 그리기엔 시간도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고, 과제물은 사고 난 상태 그대로 제출했다.

서양화가 최돈정 화백이 60여년 동안 특유의 기교로 고수해온 물방울이 번진 듯한 형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뜻밖에도 교수님이 그 작품을 보시고 특이한 기법이라고 칭찬을 해 주셨어. 나도 굳이 그런 작품이 나온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새로운 기법이라는 교수님의 해석을 나 역시 운명처럼 받아들였어. 그때부터 여백에서 드러나는 물방울이 번진 듯한 형상이 내 그림의 기교가 됐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학과와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석사를 졸업한 최돈정 화백은 현대 한국화단의 격동기에 구상회화 중심의 지역화단에서 추상회화를 정립한 대표 화가다. 구상에서 시작해 1960년대 후반부터 형상을 단순화 해 가는 반추상의 과정을 거쳐 완전한 추상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그의 대표작은 ‘진화’(71-80)연작과 ‘흔적’(81-90)연작, 그리고 ‘자연미(91-00)’ 연작, ‘소리(01~현재)’ 연작 등이다. 이들은 모두 추상회화다. ‘진화’ 연작은 수컷과 암컷의 생식기관을 모두 가지고 있는 암수한몸의 상태의 자웅동체(雌雄同體) 동물을 통해 진화의 원리를 탐색해보고, ‘소리’ 연작에서는 자연이 내는 다양한 소리를 화폭에 담고 있다.

다양한 연작을 발표해온 최돈정 화백의 평면은 비정형적 이미지와 강한 색채감이 긴장으로 가득하면서도 재현을 목적으로 하는 어떠한 이미지나 모티프도 남기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구상적인 표현의 모든 구속과 제한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자유롭고 순수한 추상화를 추구한 결과다.

‘왜 추상이었냐’는 질문에 술을 좋아하는 노 화가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술 이야기에 빗대어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술꾼이 잔칫집에 가면 많은 안주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안주를 고르기 마련”이라며 “나 역시 추상이 내 그림의 조형언어로 가장 적합해서 선택했다”고 단호하게 잘랐다.

“피카소가 사실주의 시작해 하나씩 파괴해 나가며 자신만의 입체파 추상을 완성했듯이, 나 역시 구상으로 시작해 구상을 파괴하고 또 파괴해 나가지. 이 과정을 통해 본질적인 형상을 찾았다고 할까? 그런 과정을 수없이 거치다보면 나중에는 모든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곧바로 추상으로 들어가는 경지가 돼요. 하나의 연작에 10년이 걸린데는 그런 무르익는 시간이 필요했던 까닭이었지요.”

작가는 작품에 일련번호를 매겨왔다. 그의 붓끝에서 세상 빛을 본 작품이 3천360장이라고 했다. 부유한 의사 아버지를 둔 탓에 네 살 무렵부터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평생 그림만 팠다.

그의 작품에는 추상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적인 형상과 색채가 짙다. 이는 한국인이라는 것에서 오는 태생적 귀결로 보여진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의 백미는 깊이에 있다.

“‘소리’연작에는 돌로 쌓은 담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소리를 담았지. 근데 가만히 보면 오른쪽 돌에는 불은 빛이 감돌고 왼쪽 돌에는 흰빛이 드러나요. 그것은 태양과 달, 즉 낮과 밤 사이의 모든 소리가 표현되어 있다는 의미에요. 그 안에는 센바람, 가벼운 바람, 태초부터 지금까지의 바람, 우주의 소리가 모두 담겨져 있어요. ‘진화’연작에도 자웅동체(雌雄同體)를 통해 암수 더나아가 모든 존재를 아우르려 했지요.”

“예술과 술(酒)은 ‘취해서 행복하다’는 점에서 서로 같다. 내게 술은 윤활유이며, 예술은 내 삶의 전부다. 예술은 내게 최고의 행복을 선사했다”고 말하는 노(老)화백. 병맥주와 거품이 넘쳐흐르는 가득찬 맥주잔, 소주와 양주병, 그리고 언제든 찾을 수 있도록 촛불을 켜 놓은 캔맥주가 화가의 망토 안에 진열돼 있고, 그 꼭대기에 거나하게 취한 듯 보이는 노(老)신사의 얼굴이 정면을 직시하고 있는 그의 자화상이 그의 삶을 꼭 닮아 있다.

“화가의 삶이 더없이 행복하다”는 최 화백의 화업 60년의 변화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작품 60점을 만날 수 있는 전시는 25일부터 30일까지 수성아트피아 전시실 전관에서. 개막식은 26일 오후 6시. 053-668-158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