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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달구벌아침

<서영옥이 만난 작가> ‘영원한 시간’을 추구하는 작가 배수봉

기사전송 2017-10-16, 21: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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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봉 작가.





작가 배수봉의 작업실은 안동시 도산면이다. 이주한 지 4개월 남짓 된 공간이 정갈하고 고요하다. 아내와 단 둘이 여생을 보낼 둥지인 셈이다. 나고 자란 지역이라 낯설진 않다. 오히려 듬뿍 정이 들었다.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곳이자 유수한 유학자들이 배출된 곳, ‘시간’에 의미를 두고 작업하는 그의 작업관과 맞닿는 마을이다. 12년간 살던 곳을 벗어나 서부리로 작업장을 옮긴 이유이다.

배수봉은 ‘시간’을 사유하고 시각화하는 작가다. ‘영원한 시간’을 조형하는 작가가 더 근접한 표현이겠다. 미술대학졸업 후부터 지천명인 지금까지 줄곧 한 가지 주제에만 천착해왔다. 살 거처를 모색할 때도 흘러간 옛 시간의 가치를 되새길 만큼 배수봉에게 ‘시간’은 작업의 중요한 모티브다. 때문인지 그의 캔버스에는 시간을 대변하는 묘사가 흥건하다. 작가 특유의 우직한 성품으로 빚어낸 느린 템포의 흔적들이다.

어릴 적부터 화가가 꿈이었던 배수봉은 오직 한 길만 걸어왔다. 지난한 순간에도 최면을 걸며 온 지 30년. 첫 개인전(1997년)부터 현재(2017년)까지 안동과 일본, 서울에서 가진 개인전(14회)엔 ‘시간’을 사유한 흔적들이 즐비하다. 마치 시간을 촉각하게 하는 것이 화가의 과업인 듯 배수봉은 주변의 소재를 시간의 대상화로 삼는다. 20대에는 작업이 세상을 바꿀 거라 믿었다. 6회 개인전(2005년 단성갤러리)에서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추상적인 작품을 선보인바 있다. 실험적인 작업은 40대까지 꾸준했고 새로움에 대한 갈구는 현재에도 진행형이다.

잠잠하던 가슴에 파문이 일면 유물과 유적발굴현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폐가에서 수집한 폐자재를 작업실로 옮겨오던 열성은 애잔한 이끌림이었다. 이끌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합리적인 이성만을 강요하지 않는 예술이기에 가능하다. 예술의 범주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을 붓으로 쓸어 담는 행위도 용인한다. 사유에 더한 일련의 노력들은 서로 연결돼 따로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예술은 종종 모순되거나 어긋난 것들마저 부여잡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시화하는데 분투하기 때문이다. 차마 입으로 발설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보듬는 우회적 표현일 수도 있다.

최근에는 한지의 물성에 매료됐다. 한지는 사람의 가슴처럼 따뜻한 온기를 품었다는 것이 배수봉의 생각이다. 400년이란 긴 시간을 품은 한지가 바탕이 된 것도 여러 점이다. 견뎌낸 시간만큼 애잔함이 감도는 한지 위에 능소화가 만개했다. 활짝 핀 매화와 소나무가 청청하다. 청개구리가 뛰어놀고 나비의 날개 짓이 가쁜하다. 천둥과 풍우를 두루 견딘 거친 바위와 비문을 탁본한 한지 위에 세필로 재현된 이미지들은 불멸할 대상들이다. 예술로 승화된 재생이자 환생이다.

흙을 개어 붙이고 조개껍질을 갈아서 밑바탕을 만들거나 낙엽을 오브제로 삼은 것도 부재한 것을 재생시키고자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가 배수봉은 이러한 작업방식을 소멸하는 것에 대한 연민이라고 한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연민이 배수봉이 가진 전반적인 정서다. 그간 오래된 것(또는 사라져가는 것) 위에 형상을 복기하고 빛을 부여한 이유다. 빛은 대개 어둠의 반대편이고 세상은 빛과 어둠의 각축장이자 상생의 장이다. 꺼지지 않는 빛은 영생의 다른 모습이다. 자연의 순환원리에 어긋나더라도 붓 끝에서 부활이 반복되는 것은 인간의 공통된 열망이자 작가 배수봉의 염원이고 그가 추구해온 작업의 당위성이다. 배수봉이 서부리로 오기 전 12년간 <이하리의 빛>을 그린 연유이다. 하여 능소화와 매화, 소나무, 청개구리, 나비, 고추 그리고 사마귀와 꽃신마저도 재생과 부활의 대변체로 봄이 옳다.

헤겔을 연구한 학자 김문종은 ‘영원불멸설’을 사후에 어디론간 간다는 의미로 이해하지 않는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 ‘인간으로 하여금 진리에 이를 수 있게 하는 것은 물리적 자연성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 이라고 한다.

불교의 윤회설과 기독교의 영생도 영원을 꿈꾸는 인간의 열망으로부터 출발한 것은 아닐까. 배수봉이 던진 ‘영원한 시간’도 다르지 않다. 그가 던진 질문은 그의 예술(또는 삶) 안에 있고 궁극적인 답도 그 안에 있을 것이다.

가끔 미술의 가치는 아름다움으로 환원된다. 아름다움의 한 요소는 조금 모자란 구석에 있다. 모자란 듯 남겨진 여백의 미를 운용할 줄 아는 재주야말로 예술가에게 주어진 축복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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