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한 점 없는 늦여름 오후
찌는 듯 한 더위와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고층 건물 속에
갇힌 고택
덧문과 방문마저 꼭꼭 닿아 놓아
숨이 막힐 듯하다
장독대 옆에 서 있는 석류나무엔
벌써 가을이 열리고
오래된 감나무 가지에 짙푸름이 남아있어
그나마 더위를 식힌다
고택 여기저기를 보수하여
고즈넉한 맛은 덜하지만
그래도 옛 사람의 체취가 느껴져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팸플릿을 펴들고 시간여행을 간다
빌딩 사이로 노을이 지고
벽에 걸린 시인의 시에 가볍게 바람이 인다
빼앗긴 정취를 찾아
동네 한 바퀴 돌아보고
진 골목에 들어서니
거나하게 취한 시인이 걸어가고 있다
▷▶김봉윤 필명:而 亭 1952년 대구産.
낙동강문학 창간호 동인. 계명대학교 사서교육원 교수 역임.
한국시민문학협회 감사.
<해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노래했던 민족시인의 고택 뜰 석류나무에선 푸르듯 붉은 꽃이 몇 번이야 피고지고 고택의 정취를 찾아 돌아선 시인의 손에는 아직도 차가움이 느껴지리라.
-안종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