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어리숙해서
농사나 제대로 지을라나 싶었다
너무 착해빠져서 속도 썩이지 않았다
동네 사상가 선배 따라다니더니/ 산으로 갔다
배고파 가끔, 야반에 집에 왔다
새벽길 떠나는 녀석 보니
몸이 똑바로 서고 속이 깊어져 보였다
까짓 놈이 뭘 알고 얘기하는지
아부지, 어무이
‘곧 우리 농민이 해방됩니더’
미덥지는 않았지만 못 믿을 얘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을 마지막 본 건,
잡혀가 대구형무소 면회장에서 였다
그리고 또
가창골에 끌어 묻었다는 소문만 듣고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여편(옆편)의 눈물 속에서 였다
이놈을!/ 돌아오면은 요절을 낼라캐도
와야 우예해 볼거 아이가
◇고희림= 1999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평화의 속도, 인간의 문제, 대가리, 가창골 학살
<해설>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 혹은 교만. 오백년 천년 뒤에는 누가 이겼을까, 순간순간 꽃빛인데. 창조와 새 시대 개막은 공손한 행렬 보다는 맛있는 빵을 굽는 밀폐된 오븐 속처럼 뜨겁고 답답하고 어두운 치열함으로 탄생한다. 살면서 할 수 있는 것, 통제할 수 없는 것, 피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를 깨우치는 것처럼 무척 어려운 일이다. -성군경(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