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27일 금요일    단기 4351년 음력 3월12일(己丑)
오피니언좋은시를 찾아서

오래된 울음

기사전송 2018-03-29, 22: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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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환
이진환


숲에서 하나 둘 나무를 세고가면

나무가 되었다 숲이 되었다 고요가 되었다

고요가 깊어지자 웅크리고 있던 숲이 안개처럼 몸을 푼다

불신의 늪이 꿈틀거려서다



한 때, 뿌리 뻗친 늪에서 마구잡이로 우듬지를 흔들어대다

새 한 마리 갖지 못한 나무였다

눈도 귀도 없는, 그 몸속으로

흘러 다니던 울음을 물고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릴 적 어둑한 논둑길에서 두려움을 쫓던

휘파람소리와 함께 가슴을 졸이던 눈물이었다



울음의 반은 기도였으므로,



안개의 미혹에서 깨어나는 숲이다

고요란 것이 자연스럽게 들어서서 허기지는 저녁 같아

모든 생명이 소망을 기도하는 시간이 아닌가

두려움의 들녘에서 울던 오래된 울음이

징역살이하듯 갇혔던 가슴으로 번지고 있다



기도를 물고 돌아오는 새들의 소리다



◇이진환 = 경북 포항, 2014 국민일보 신앙시 신춘문예 당선, 계간 다시올 신인상 시 감상



<해설> 울음의 반은 기도였다는 본문의 말이 웅숭깊다. 시인은 무엇을 소망했기에 절반을 울음으로 채웠을까? 울음은 슬픈 것, 기쁜 것의 상반된 두 종류가 아닐 것이다. 단지 감정의 소산만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두려움의 들녘에서 울던 오래된 울음의 의미가 신성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어쩌면 기도는 응답이 목적이 아닌, 참된 나를 만나고 싶은 갈망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소망이란 느끼는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부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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