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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車로 가득 찬 거리에 실망…그래도 그때가 그립구나

기사전송 2017-03-23, 21: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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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지의 인도여행기
(4)남인도 벵갈루루, 사과를 주워 담듯이
도시이름이 마음에 들어 충동적 방문
휴양지 아닌 뉴델리 뺨치는 대도시
어릴 적 과수원에서 사과 줍기 놀이
송충이 붙은 썩은 사과에 기겁하기도
기억에 남는 건 ‘사과 줍기’ 그 자체
복잡한 행정도시에 낙심했지만
인도의 일부 거닐어본 추억이 중요
벵갈루루 풍경
벵갈루루 풍경.
여행을 할 때 그다지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편이 아닌지라 이날도 그저 마음가는대로 지도를 펴들고 다음 이동 할 장소를 골랐다. 도시 선정기준은 늘 그때그때 다르다. 도시 이름이 마음에 들거나, 혹은 지금 있는 곳에서 이동하는 편한 곳이거나, 또 혹은 맛있는 음식들이 많은 곳이라거나, 뭐 그때의 기분이나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일정을 짜곤 했다. 그날 역시 그랬다. 가이드북을 펴들었는데 우연히 ‘벵갈루루’라는 도시가 나왔고, 마침 내가 있었던 곳과 그다지 멀지도 않았으며, 어쩐지 도시 이름이 썩 마음에 들기도 하여 충동적으로 기차표를 덜컥 끊었던 것이다.

허나 벵갈루루에 도착했던 날, 기차역 밖으로 한 발 짝 떼자마자 느낌이 확 왔다.

“오 젠장, 여기 너무 별론데?”

이름만 딱 들었을 땐 좀 뭐랄까, 신비롭고 수풀이 우거진 밀림 같은 그런 지역이라 생각했건만. 막상 도착해서 뚜껑을 열어 봤더니 이거 뭐 뉴델리 뺨치게 대도시인 거다. 온 도로는 차들이 점령했고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속에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다 허겁지겁 빨리빨리.

나중에 알았지만, 남인도 벵갈루루는 인도의 행정 및 교통의 중심지란다. 땅 덩어리가 워낙에 큰 나라인지라 관광객인 나로서는 그저 ‘많이 들어본 곳이니까 당연히 관광지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상공업이라든지, 문화, 섬유산업 등 인도의 굵직굵직한 사업들이 죄다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그러고 보니 내가 오며가며 만났던 집 좀 산다 싶은 인도인들은 죄다 벵갈루루에 볼일이 있다고 했었다. 생각해보니 그들 대부분이 정장차림이었고, 또 하나같이 영어를 아주 잘했었지. 그런데도 나는 눈치를 채지 못했던 거다. 사실 벵갈루루의 도심은 내가 생각했던 초원이라든지, 한가로이 졸졸 흐르는 시냇물 같은 건 웬만해선 찾아보기 힘든 곳이란 걸.

“와, 진짜 어쩌지? 이거 생각했던 거랑 완전 딴판이잖아?”

하지만 도시의 분위기나 사람들의 표정 등등을 다 떠나서 내겐 당장 해결해야할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숙소. 사람이 미친 듯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숙소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좀 괜찮다 싶은 숙소는 비즈니스맨들 때문에 이미 만원. 그나마 빈방이 있다는 곳에 기어들어가 가격을 물어보니 무려 1,300루피란다.

“예에? 1천300루피요?”

벵갈루루의 밤거리
벵갈루루의 밤거리.
입이 절로 쩍 벌어졌다. 북인도에선 아무리 비싼 숙소라도 웬만해선 500루피를 넘지 않았었는데 이건 뭐 거의 3배에 가까운 수준. 하루치 생활비를 훌쩍 넘는 금액을 고작 하룻밤 방값에 투자하려니 손이 다 떨렸다. 1천300루피라는 헉 소리 나는 가격을 듣곤 우물쭈물하고 있었더니 직원의 심드렁한 표정이 칼같이 따라붙는다.

“여기서 안 묵을 거면 현관문 막고 있지 말고 좀 비켜 줄래??”

결국엔 반쯤 오기로 하루 치 숙박비를 계산한 뒤 방으로 올라오면서 굳게 다짐했다.

‘내일 당장 이 거지같은 벵갈루루를 떠날 테야. 여긴 진짜 제대로 꽝이라고!’

어릴 적에 경북 구미에서 몇 년 살았던 적이 있었다. 아빠가 구미로 발령을 받으면서 우리 가족은 살던 대구 집을 정리하고 구미로 이사를 하였고 그렇게 나는 구미에서 2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도심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깡촌에 있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려면 차를 차고 저 멀리 시내로 나가야 할 정도로 주변 상황이 열악했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놀이터라든지 오락실 같은 건 꿈도 꿔 볼 수 없었는데 그래도 딱히 심심하다거나 무료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나와 온종일 잠자리 잡기, 달팽이 찾기, 땅따먹기 등을 하며 놀아줄 외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외할머니와 함께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즐거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놀이는 바로 과수원에 떨어진 사과를 주우러 다니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집 옆에는 ‘사과 줍기 놀이’를 할 수 있는 과수원이 하나 있었는데, 딱 5,000원만 내면 온 가족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사과를 포대에 마음껏 주워 담을 수 있는 거였다. 놀이의 규칙은 단 하나, 절대로 나무에 달린 것은 따지 말 것! 이 규칙만 잘 지키면 나는 할머니와 함께 과수원에서 아주 재미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놀이가 시작되면 나와 할머니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과 줍기에 돌입했다. 최대한 크고, 싱싱한 사과를 주워 담기 위해서. 이 사과를 줍는 데는 생각보다 운이 많이 따라야 했다. 재수가 좋을 때는 방금 나무에서 땄다고 해도 믿을 만큼 싱싱한 사과를 얻을 때도 있지만, 조금만 운이 나쁘면 송충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다 썩어가는 놈을 집어 들 때도 있었으니까. 특히나 사과밭에 사는 송충이들은 하나같이 왜 이리도 새빨간 건지, 무심코 집어 들었다가 우글우글거리는 빨간 벌레를 마주하곤 ‘으아아아악!!!’ 소리를 지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이 사과 줍기 놀이는 어떤 날엔 질 좋은 싱싱한 놈을 건지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엔 징그러운 벌레들을 끊임없이 마주하기도 하며 그렇게 ‘복’과 ‘불복’을 반복했다.

볼일을보러가는사람들
벵갈루루 시내로 볼일을 보러 가는 사람들.
먼지가 풀풀 날리는 벵갈루루의 거리에 서 있자니 예전에 할머니와 함께했던 과수원 놀이가 떠오른다. 마치 한편의 복불복 게임을 하듯 사과를 주워들었던 그때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인도 곳곳을 떠돌고 있는 지금이 별반 다를 게 없는 거 같아서. 재수 좋은 날엔 과즙이 쭉쭉 나오는 아삭아삭한 도시를 만나기도 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을 땐 음식도 분위기도 영~ 아닌 이런 곳에 뚝 떨어지기도 하는 것처럼 알고 보니 여행도, 사과를 줍는 것도, 사실 뭐 크게 다르진 않은 거더라고.

아, 진짜 기대 많이 했는데. 놀 거리도 많고 맛있는 것도 많은 그런 재미난 곳일 거라 생각했건만 이게 뭐냐고. 거리엔 온통 차들뿐이고 잘 곳도 마땅치 않은 데다, 사람들은 아주 찬 바람이 쌩쌩 날릴 정도로 불친절하잖아. 벵갈루루! 너 완전히 썩은 사과 같아. 제대로 ‘꽝’이라고!

근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어릴 적에 내가 집어 올렸던 사과가 싱싱한 것이었든 벌레 먹은 썩은 사과였든 그건 크게 중요치가 않더라. 결국 기억에 남는 건 ‘사과 줍기’ 그 자체다. 싱싱한 사과는 싱싱한 사과인 채로 신이 났고, 썩은 사과는 또 그냥 그거대로 즐거운 추억이 됐듯이 아마 지금의 벵갈루루에 대한 기억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벵갈루루의 거리
벵갈루루의 거리
예전에 뭘 주웠든, 얼마나 실패했든 지금 그건 크게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냥 내가 과수원에서 사과를 주워 보았다는 것. 배낭을 메고 이 인도를 거닐어 보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거다. 재수 없게도 인도의 수많은 지역 중 굳이 마음에 안 드는 곳을 골라 조금 짜증 나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결국 이것도 다 내가 지금 인도에 있기 때문에 겪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니겠나. 그러니 성질 내는 건 이제 그쯤 해 두고 슬슬 이 ‘인도에 있음’ 자체를 즐겨 보자. 똥 밟았다고 너무 그렇게 인상만 쓰고 있기엔 이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너무 아깝잖아?

아마 내 생각엔 벵갈루루의 이 이미지 역시 금세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송충이 때문에 그리 혼비백산 넋이 나가 봤으면서도 “사과 주우러 다니던 그때 시절이 참 그리워”라 말하고 있는 걸 보면.

여행칼럼리스트 jsmoon09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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