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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음악.미술

인간성에 대한 그리움, 자연을 입다

기사전송 2017-07-11, 21: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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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까지 작품 갤러리 손문익展
달은 어머니, 새는 자아…
자연 일부분 매개체 삼아
고향·휴머니즘 등 표현
“좋은 삶이란? 고민했으면”
40년간 구상표현주의 추구
붓 대신 나이프로 질감 묘사
독특한 비례·조형언어 눈길
전시·교육 등 왕성한 활동
손문익-인물
손문익 초대전이 작품 갤러리에서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지난 4일, 작품(ZAKPOOM) 갤러리가 사람들로 북적이며 성황을 이뤘다. 화가와 콜렉터 등 100여명의 사람들이 손문익(63) 화백의 전시 개막식에서 작품을 둘러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마른장마가 몰고 온 습한 무더위도 중년을 훌쩍 넘긴 노 화가의 위세를 꺾지는 못했다.

“보통 전시 개막식에 400~500명은 족히 방문 한다”면서도 이번 전시에는 “홍보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제자와 동료선후배 등 100여명만 초대해 조용하게 했다고 겸손해마지 않았지만 그의 위치가 에둘러 가늠이 됐다.

“미술학원을 15년을 했고, 지역 내 문화센터 강의를 20년 넘게 했다. 내가 고문으로 있는 제자들의 모임만 해도 5개다. 그동안 지도한 제자만 해도 수천명은 넘을 것이다.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아와서 전시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손문익 화백의 전시가 대구 중구 삼덕동에 위치한 작품 갤러리와 북성로의 복합문화공간 박물관이야기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작품 갤러리 개관전을 겸하는 이번 전시에는 구상표현주의를 이끌어온 손문익 화백의 대표작 50여점이 걸렸다.

손문익은 아련한 추억속의 시골풍경을 그린다. 사실적이기보다 감성이라는 여과장치를 통과한 심상의 풍경을 그린다. 중심은 구상표현주로 잡고, 추상과 구상을 혼용하고 있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소박하다. 황금들판, 달과 새, 꽃과 나무가 소박하게 화폭을 채운다. 초기에는 들판을 주로 그리다가 최근 3~4년 전부터는 절제된 풍경에 여백의 미를 더한 지금의 화풍으로 전환했다.

구상표현주의가 그렇듯 그도 각각의 소재에 관념적인 의미를 담는다. ‘달’에는 생명의 표상인 여성으로써의 어머니, 순환으로써의 자연, 언젠가 돌아가야 할 그리움으로써의 고향 등 이상향을 표현하고 있다.

또 사랑스럽게 표현된 ‘꽃’에는 생성과 소멸, 탄생과 죽음 등의 현실적인 가치들을 내포한다. 상징적 아이콘으로 달과 함께 짝을 이루고 있는 ‘새’는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 떠나는 자아를 의미한다. 이는 작가 자신이자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표상이다.

“떠나간 가족에 대한 그리움, 돌아가야 할 자연과 순수가 작동하는 어머니 품속 같은 고향이 향하는 곳은 ‘인간’이다. 나와 가족, 그리고 친구와 이웃들이 자연을 노래한 내 작품을 보고 ‘어떻게 사는 삶이 좋은 삶인지’를 고민하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삶을 선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작품에 스며있다. 다른 말로 휴머니즘이다.”

화면 구성에서도 독특한 조형언어가 드러난다. 화면은 선과 직사각형, 원형을 기본으로 수직과 수평, 원을 조화롭게 분할한다. 그렇게 얻어진 비례와 균형은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개별성을 확보한다. 나이프를 활용한 독창적인 표면처리에서 오는 질감도 특징적이다. 투박하지만 섬세하고 거친듯하지만 두드러운 질감은 또 하나의 단단한 미의식으로 다가온다.

“평면성의 딱딱함을 순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리움, 향수, 이상향, 휴머니즘이 주제다. 주제와 조형언어가 조화를 이뤄야 작가의 메시지를 관람객들이 읽을 수 있다.”

60세를 훌쩍 넘겼지만 손문익은 여전히 잘나간다. 해마다 초대전이 최소 1회 이상 들어오고 있고, 다양한 형태로 그의 작품들이 소비되고 있다. 그 어렵다는 작품판매를 전시 때마다 완판에 가깝게 기록하는가 하면, 달력 등에 작품 이미지를 제공하는 등 간접적인 작품 소비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 왔다.

올해만 해도 그는 서울의 유명 달력업체 3곳에 작품 이미지를 제공했고, 내년 달력 문의도 벌써부터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말이 3개의 기업이지 이 3개의 달력전문기업이 전국의 수많은 기업체의 달력에 손문익의 이미지를 사용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파급영역은 생각보다 훨씬 넓다.

“한 해에 초대전을 4회나 하는 해도 있을 만큼 화가로 열심히 달려왔다. 달력에 이미지가 사용되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 그림을 간접적으로 감상하고 있다. 화가로써 고마운 일이다.”

손문익은 구상표현주의가 낯설었던 사실주의 중심의 대구화단에서 몇 안 되는 구상표현주의로 작품을 시작했다. 구상표현주의 한 장르만 우직하게 팠고, 40여년을 손문익 특유의 화풍을 구축하며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아왔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작품을 팔아서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하며 전업 작가로 살 수 있었다. 그가 “중요한 것은 ‘소통’에 대한 의지”라고 언급했다.

“화가 혼자만의 고집으로 고독하게 그리기만 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일반 대중과 호흡하고 소통하며 작가와 대중과의 중간지대를 찾아야 한다. 나는 그 중간지대의 조형언어를 끊임없이 개발하려고 노력했고, 지금의 화풍을 만들었다. 그 점에서 긍지를 가진다.”

동경국제공모전 동상, 대구예술인상, 대한민국미술인상, 미술대전 초대작가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그가 미술을 접한 것은 집안 내력이 한몫했다. 취미로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삼촌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각종 대회에서 1등상을 거머쥐며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미술대학에도 수상경력 덕분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50년 이상을 그림과 함께 해왔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림은 운명처럼 다가온다. 붓을 들 힘이 없을 때까지 화가로 살고 싶다.”

그는 제자 부자다. 그림을 곧잘 팔았지만 부자로 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길러낸 제자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찍 미술학원을 열어 15년 동안 운영하며 홍익대, 서울대, 중앙대 등 국내 최고 명문 미슬대학에 제자들을 진학시켰다. 지금은 대구 지역 내에 있는 문화센터 5곳에서 구상표현주의를 가르치고 있다.

작가로써 고유의 화풍을 고집해왔던 그다. 교육자로써 제자들에게 주문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그가 작가로써 추구한 철학과 제자들에게 주문한 가치가 다르지 않다고 했다.

“보통 문하생을 두고 있으면 스승의 화풍을 따라오도록 하는데 나는 절대 내 그림을 따라하지 말라고 한다. 작가로써 나만의 화풍을 완성하려 해왔듯이, 제자들도 그들만의 개성 있는 그림을 그리기를 원한다.”

그가 부인 조선영씨 이야기를 꺼냈다. 부인 조 씨의 내조가 있어 지금의 손문익이 있다고 치켜세웠다. 그의 부인은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중등학교에서 평생 교직자로 살았다. 그에 따르면 그림 속 진하게 우러나는 그리움은 부인과 관계가 깊다. 그는 오랫동안 부인과 떨어져 주말부부로 살아왔다. 내년에 부인이 정년퇴직하고 나면 그동안 못다 한 부부의 정을 원없이 나누겠다고 했다.

“캠핑카를 샀다. 지난달 한 달간 캠핑카를 타고 제주도를 여행했다. 연애하던 시절처럼 설레었다. 이제 더 무슨 바람이 있겠나? 집사람하고 여행하며 부부애를 나누고, 그림도 그리며 살고 싶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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