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장애인 편견 씻어내는 ‘소통 음악회’
20년째 장애인 편견 씻어내는 ‘소통 음악회’
  • 대구신문
  • 승인 2018.01.0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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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만 돋움공동체 대표

“자폐 아들 키우며 장애인 현실 절감

장애도 삶의 일부라는 사실 깨달아

음악으로 인식 전환 메시지 전하려

매월 마지막 주 ‘돋움음악회’ 열어”

지역 예술인·익명 후원가 지원 바탕

소공연장 ‘공간울림’서 무료 공연

“자폐아 공동육아센터 건립 꿈 품고

장애인도 행복한 세상 위해 힘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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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만 돋움공동체 대표



낯선 사람들 간의 지적 교류를 돕는 비영리단체 ‘옥스퍼드 뮤즈(The Oxford Muse)’를 이끌고 있는 시어도어 젤딘(Theodore Zeldin)은 저서 ‘인생의 발견’에서 “가난한 사람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가난’ 자체보다 ‘사회로부터의 소외와 무관심’”이라고 언급하며, “상호이해와 존중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이상만 (63) 돋움공동체 대표 역시 장애인이 겪고 있는 어려움으로  ‘소외’와 ‘무관심’을 언급했다. '가난'과 '장애'라는 주제는 다르지만 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편견의 결은 시어도어 젤딘과 이 대표의 의견이 정확히 일치했다. 

이 대표는 “장애인은 우리와 특별하지 않다”며 “그들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일원으로 받아들여 줄 것”을 하우스콘스트를 통해 호소하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 전환 운동을 이끌고 있다.

◇ 장애인 인식 변화 위한 돋움음악회 20여년 이끌어

이 대표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인식 변화를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하우스콘서트는 '돋움음악회'라는 이름으로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오후 8시 공간울림에서 열린다. 사실 돋움음악회는 여느 하우스콘서트와 다르지 않다. 클래식과 국악, 재즈, 힙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전문연주자들이 무대에 오른다. 장애인이 직접 무대에 올라가는 일은 극히 드물며, 관객 역시 공연의 취지를 모르고 공연장을 찾는 일반인들이다.

그러나 공연 시작 전이나 중간 즈음에 주최자인 이 대표가 무대에 올라 음악회의 취지를 설명하면 순식간에 공연장 분위기는 엄숙해진다. 단순히 연주를 즐기려던 음악회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민낯을 되돌아보는 개념음악회로 분위기가 급반전된다.

“살면서 장애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는 드물다. 어쩌면 장애인을 잘 볼 수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애인은 우리 주위에 생각보다 많다. 단지 일반인들이 불편해 하기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 않을 뿐이다. 돋움음악회를 통해 왜 우리는 그들을 불편해 하는지,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40여년 전, 대학 재학 중에 적십자사·YMCA 등을 통해 장애아 목욕 봉사와 레크리에이션 봉사를 다닐 때만 해도 이 대표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우리사회의 보편 수준 정도였다.

당시 봉사활동을 할 때만 해도 자신이 발달장애아의 부모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그 와는 다른 세상을 사는 특별한 사람들과의 나눔 행위 정도로 가볍게 접근했다. 더군다나 자신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한 돋움음악회를 20여년 동안 계속할 것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혼 후 첫째 아들이 심한 자폐를 가지고 태어나면서 그는 장애아의 아버지가 되었고, 그제야 대학 시절의 장애인을 위해 다녔던 봉사활동들에 대한 재성찰이 시작됐다. 그 시기의 장애인 봉사활동은 진심어린 나눔 활동이었기보다 시혜를 베푸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것. 
자폐는 그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 됐고,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큰 아들이 자폐아로 태어나자 당혹스러웠다. 장애가 내 문제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상 내가 장애인 가족이 되고 보니 대학 때 장애인 봉사활동을 다닐 때의 내 행동들이 위선이었음을 깨달게 됐다. 나는 내 아들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하늘을 원망했다.”

◇ 아들 자폐 받아들이기까지 힘든 시간들이 이어져

자폐는(autism)은 자기 자신에게 비정상적으로 몰입한 상태를 말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한 선천적인 장애다. 원인을 알 수 없어 치료도 불가능하다. 자폐아는 1천 명 중 한 명꼴,교육 통계로는 400명 당 한 명꼴로 태어난다. 확률적으로 아주 드물다고 할 수도 없는 수치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었던 이 대표였지만 아들의 자폐를 대하는 행동은 감정적 함몰 상태로 치달았다. 자폐를 고쳐보겠다고 10여년 이상을 의학과 특수교육, 심지어는 기도원까지 오가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아들을 병원과 기도원으로 데리고 다닐 때마다 아들은 온몸으로 싫다는 의사를 표현했지만, 그는 애써 외면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아이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5일 이상을 치료할 곳을 찾아 돌아다니기도 했다.”

아들의 자폐를 받아들인 것은 치료를 시작한지 10여년 즈음이다. 안찰기도를 통해 암을 고쳤다는 어느 기도원의 소문을 듣고 아들을 데려갔는데, 치료라는 명목하에 피멍이 들도록 구타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녹초가 되어 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문제의 원인이 자신이었음을 깨달았다.

이전까지는 아들의 자폐를 하루빨리 벗어나야 할 장애로만 인식했고, 자폐가 아들의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의식 밑바닥에서부터 거부하고 있었다.

“아들의 장애가 아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다는 깨달음이 그때서야 왔다. 내 아들의 장애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자폐를 가진 아들도 나와 똑같은 인격적 존재로 받아들이게 됐다.”

자폐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아들과도 화해를 했다. 그러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나 당시 자폐인은 법적으로 장애인의 범주에서 제외될 정도로 사회적인 인식은 왜곡돼 있었고, 그런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자폐인에 대한 올바른 실태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차올랐다. 사회적 공조 체제의 필요성도 강하게 느꼈다.

“자폐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자폐인을 사회구성원으로 포용하는 사회적인 인식전환과 제도적 뒷받침이 급선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자폐아 부모모임을 주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자폐가 ‘부모의 애정결핍에 따른 증세’로 치부되면서 장애 범주에서 제외되고 외부지원 대상에서도 소외됐다. 부모들 중에도 자폐아를 둔 것을 드러내려 하지 않아 모임은 제대로 성립되지 않았다.자폐가 법적으로 장애범주에 포함된 것은 2000년이 되어서였다. 당시 그는 자폐인을 공동으로 돌 볼 기반시설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부모가 있는 자폐아는 법적으로 국가시설에 맡길 수가 없다. 그래서 편법으로 무연고 처리해서 시설에 맡기는 가정도 생겼다. 심한 경우 큰 아이가 자폐가 있을 경우 그 아이에게만 신경을 쓰다 보니 둘째로 태어난 아이에게 무관심해 그 아이 마저 애착장애로 후천적 자폐아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 예술가 재능기부, 익명 후원이 동력

돋움음악회는 ‘자폐아 공동육아 센터 건립’을 목표로 발달장애인과 그 가정을 돕기 위한 사랑의 음악회로 20여년 전에 시작됐다. 소공연장인 공간울림(대구시 수성구 상동)이 공연장을 지원하고, 뜻있는 예술인들이 재능 기부에 동참하면서 가능해졌다. 익명의 후원자들도 20여년 동안 무료 공연을 이어온 동력이다.

돋움음악회는 자폐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바꾸는 것에 방향성을 두었다. 발달장애아를 문제 삼지 않는, 일반인과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을 확산하는 것이다.

음악회는 한 달에 한 번, 20년 동안 240회 열렸다. 서울공연도 10년 정도 열었으니 총 360여회가 넘는다. 연주자들은 모두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최소로 잡아도 360여명의 연주자가 무대에 올랐다는 말이다. 그것도 재능기부로. 그 많은 연주자 섭외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경이로울 따름이다. 

장애인의 사회적 편견을 바꾸기 위한 방법으로 '음악회'를 선택한 배경을 묻자, 그가 싱긋 웃으며 자신을 ‘작곡가’라고 소개했다. 사실 그는 지역대학 작곡가에서 후학들을 지도했으며, 대구에서 꽤 잘나가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작곡가로 활동하며 맺었던 인연들과 일면식도 없는 연주자들에게 돋움음악회의 취지를 여쭙고 연주를 부탁하면 흔쾌히 응해 주었다. 익명의 후원자들도 힘이 됐다. 돋움음악회는 우리 사회의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다는 것을 20년동안 증명해 온 셈이다.”

돋움음악회가 열리는 ‘공간울림’은 작은 공연장이다. 공간울림 이상경 대표와의 인연으로 20년을 함께 했다. 이상만 대표와 이상경 대표는 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일상 예술에 대한 생각이 서로 맞아 공간울림이 상동에서 처음 문을 열 때 이상만 대표가 3년 동안 공간울림의 하우스콘서트의 기획자로 활동하며 음악적 인연도 더해졌다. 그 인연의 끈이 돋움음악회로 이어졌다.

공간울림은 무대와 객석과의 거리가 짧아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들린다. 이 대표는 이러한 하우스콘서트야말로 장애인 문제를 소통하기에 최적의 공연 형식이라고 소개했다. 일상과 동떨어진 예술이 의미 없듯, 일상과 가장 닮은 하우스콘서트에서 친근하게 음악과 소통하며 장애인 문제를 일상의 문제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장애인들에게 손을 내밀 때다. 그들을 우리와 다르지 않은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 역시 우리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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