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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심이 곧 자기애…나눔·배려로 공동체 가치 회복”

기사전송 2018-04-17, 21: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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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필’ 출간 정극원 대구대학교 DU인재법학부 교수
성장기·유학시절 등 떠올리며
역지사지·측은지심 정신 강조
인성 함양 위한 교육철학 담아
“이기심에 각박해진 현대사회
공동체 무너지면 행복도 잃어
다함께 더불어사는 법 익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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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심이야말로 공동체 번영과 영속의 전제조건이라며 ‘이타적 삶’을 강조하는 정극원 교수의 책 ‘둔필’이 출간됐다. 책에는 나눔과 배려의 삶이 묻어나는 그의 다양한 글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깨우침을 전한다.


“나만 귀하고, 내 것만 챙기는 개인주의가 팽배하다. 개인주의의 심화는 공동체의 와해로 이어진다. 그런 사회에는 진정한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 최근 책 ‘둔필(鈍筆)’을 출간한 정극원(대구대학교 DU 인재법학부 교수)이 ‘이타적 삶’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의 첫 산문집인 책 ‘둔필’에는 산을 다녀온 후의 감상을 적은 산문과 유학시절과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은 수필과 시, 그리고 법학교수와 한국헌법학 회장으로 활동하며 발표했던 각종 학술대회 등의 행사에 남긴 개회사와 인사말 등이 실렸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어진 부드러운 대화였지만 책의 정신적인 토대가 됐던 삶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그는 단호했다. “가난한 시절에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존재했다. 그 덕에 외롭지 않았다. 그러나 물질이 풍요로워진 지금은 서로의 다른 생각이나 주장들을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다. 섬처럼 외로운 대치보다 모두 행복한 협치로 가야 한다. 그때 사랑과 배려가 필요하다.”

정극원은 법학자다. 대구대 법대를 졸업하고 독일 콘스탄츠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대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동대학 법대 학장을 역임했다. 한국헌법학회장과 유럽헌법학회장을 맡았었고, 중국 호북성 민족대학 석좌교수, 경북도 선거방송토론위워장을 맡고 있다.

법학자 그리고 헌법학회 회장으로서의 궤적은 생의 전부가 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법 전문가의 책이어서 그랬을까? 딱딱한 법 이론이나 법 관련 정보들로 구성됐을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의외로 책에는 수려한 문체와 유려한 감성으로 넘실댔다. 법학자의 엄격함과 근엄함은 찾기 어려웠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그의 얼굴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온화했다. 이야기가 깊어갈수록 요즘 보기 드문 순수 영혼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짙어져갔다. 1시간 이상 이어진 대화는 순수한 추억, 사랑과 배려로 점철됐다. 그가 “법학자나 개인 정극원 모두 사랑과 배려라는 가치에 주목해왔다”고 했다.

성장기를 시골에서 보냈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축복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주위를 배려하는 가치를 몸으로 습득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순리를 거스르는 과욕은 자연을 거스르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이해하면 자연이 주는 교육적 효과는 의외로 클 수 있다. 정극원은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책 곳곳에서 묻어나는 유연한 정신은 필시 자연으로부터 왔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다. 그 정신이 책에 오롯이 담겼다.

특히나 가난한 시골살이의 고단함은 온데간데 없고, 독기 없는 순한 영혼들이 자연에 순응하며 서로를 보듬었던 기억들로 채워져 삶을 지탱하는 원천으로 살고 있다는 명징한 사실만 책에 아로새겨져 있다. 책에는 휴머니스트 정극원의 감성으로 그득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과 측은지심의 선한 인성을 남다르게 발현하는 데는 타고난 천성도 있겠지만 특별한 사연이 있지 않을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가 속내를 들켰다는 듯 한숨을 뱉으며 말을 이었다. “중학교 때 권위적인 선생님을 만나 힘들었다. 제자가 부족해도 보듬어주는 것이 스승의 도리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중고등학교 시기가 가혹했다. 그때의 상처가 오히려 역지사지로 사람이나 상황을 접근하는 정신으로 승화된 것 같다.”

성장기가 상처로 얼룩지며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경험을 했던 그의 교육관은 확고했다. 어른들이 성장기 아이들의 불완전함을 성장을 위한 진통의 시간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고, 그 인식하에 그들을 보듬어야 한다는 것. 어른의 시선으로 권위적으로 제압하기보다 눈높이로 소통하며 선한 영혼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곧 건강한 공동체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어릴 때는 누구나 삐뚤어질 수 있다. 아직은 미완의 인격체니 당연하다. 그때 어른의 역할이 중요하다. 스스로 이타심으로 아이를 보듬어야 한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이타심 배양하는 교육이 된다.”

책을 통해 본 그는 오지라퍼다. 누군가의 상황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요청하지 않아도 상황이 유연해질 수 있다면 적극 개입을 자처한다.

그의 위치와 네트워크라면 작은 호위도 상대방에게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그처럼 행동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이유들을 들이대며 외면하는데, 그 중 번잡함이 가장 설득력을 얻는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에너지와 시간낭비를 피할 수 없기 때문. 그가 ‘이타심’이 곧 ‘자기애’라고 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곧 자신에 대한 배려라는 의미였다.

“내가 다른 사람의 행운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면 반드시 내게도 행운이 돌아온다는 것을 많은 경험으로 터득하게 됐다. 나눔과 배려는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한 협치의 가치임에 틀림없다. 망설일 이유가 뭐가 있겠나?”

글쓰기는 우연의 산물이었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국내에 들어왔지만 대학에서 자리 잡는 것이 순탄치 않았다. 그때 그를 품어준 것이 산이었다. 산을 오르면서 분별 없이 누구에게나 품을 내어주는 산의 덕성에 매료됐고, 그 감동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그의 글쓰기가 시작된 것.

“가장 힘들고 지쳐있을 때 등산을 하면서 위로를 받았다. 내 상처를 산이 오롯이 보듬어 주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 위안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 방법론이 글쓰기였다.”

성장스토리, 가족이야기, 주변 이야기가 글감이 된다. 주로 현재 상황보다 회상한 내용이 글로 쓰여 진다. 이때 중요한 것이 ‘기억’이다. 그는 엄청남 기억의 소유자다. 네 살 때의 기억도 또렷하게 기억하며 현재로 소환한다. 삶의 궤적은 모두 그의 기록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무릇 글이란 누군가에게 읽혀질 것을 동력으로 한다. 그의 글쓰기가 지향하는 바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내용으로 들어가면 좀 달라진다. “동료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나, 어려운 일이나 행복한 일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을 위한 글을 써서 보낸다.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글인 셈이다. 그렇다보니 더 구구절절한 마음이 담길 수밖에 없다.”

15년 동안 1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비교불가의 양도 놀랍지만 주제가 모두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점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지방대학 교수와 한국헌법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늘 더 많이 듣고 살피고 먼저 다가가고자 했던 그다. 인정하든 않든, 그는 좋은 리더로 살아가고 있다. 후학들에게 삶의 지침을 가르치고, 헌법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마중물을 자처하고 있다. 주변 인물들을 살피며 그들의 삶에 디딤돌 하나 놓는 것도 소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신은 리더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종족 중에서 뛰어난 종족보다 협력하는 부류가 살아 남았다. 공동체 관념이 없으면 빨리 사라진다. 나는 내 위치에서 누군가와 더불어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기심보다 이타심으로 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면 그 일에 역할을 보태며 살고 싶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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