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하던 스무 살 때 주인집 아들
날마다 연서를 내 창에 꽂아놓았다
늦은 밤 좁은 골목길에서 딱 마주쳤다
볼을 스치던 서툰 입맞춤과 안간힘의 도리질
이웃집 매화꽃이 우수수 날렸다
겨울의 뒤통수를 밀어내며
꽃을 부르는 땅의 숨소리 너무 커서
십리 길 밖에는 아무 소리도 안났다
빽빽한 마음자리에 매화 몇 송이 얹는 고명
반가운 것들은 꽃이다, 그리운 것들은 가시다
어딘가 네가 있어, 매화가 다시 피고
아릿아릿 그 향기 받아적는 봄밤이다
◇신영순= 포스트모던 한국문학예술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늦은 안부’, ‘달을 품다’, ‘푸른 도서관’, ‘천국에 없는 꽃’. 청주문학상 .여백문학상 수상. 청주문협. 여백문학. 뒷목문학회원. 현, 시동인 <새와나무>회장.
<해설> 연서를 통해 이루어진 사랑 이야기를 요즘 젊은이들은 얼마나 이해할까? 그러나 이 시는 과거의 아늑한 기억과 함께 그날에도 매화꽃은 피었고 지금도 피고 먼먼 훗날에도 다시 매화가 피는 것처럼, 사랑의 기억을 고명으로 얹고 있어, 먹음직스럽기 그지없다. “어딘가에 네가 있어, 매화가 다시 피고 / 아릿아릿 그 향기 받아적는 봄밤이다” 마지막 연이 주는 느낌은 이 시의 맛을 한층 더 오랜 여운으로 남긴다. “겨울의 뒤통수를 밀어내며 꽃을 부르는 땅의 숨소리 너무 커서 십리 길 밖에는 아무 소리도 안났다“ 는 매화의 행위이자 시인의 내면 심리와 멋지게 접목된 성공적 비유여서 이 시는 메타포가 걸린 이야기에 번뜩이는 이미지가 보태어짐으로써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