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당신 이름은 팔월의 벚꽃이겠지
[좋은 시를 찾아서] 당신 이름은 팔월의 벚꽃이겠지
  • 승인 2024.03.1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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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교 시인

팔월에 지는 벚꽃이 있다고 들었다 통영공립중학교 인근 어느 섬에서 간혹,

난온대 해양성 기후를 놓치고
사람의 계절을 놓치고

하염없이
지는 벚꽃이 있다고 들었다

아침저녁으로 오체투지 하는 늙은,

벚꽃이 있다고 들었다

(죽음을 사이에 두고)

섬의 서쪽 浦口를 녹슨 그림자로 지우는

여러 번의 계절과
여러 번의 낙화,

생달나무·후박나무·마삭나무·광나무·곰솔·동백나무

이런 늙은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이 오늘 하루도 바삐 가는

별이 한꺼번에 몰려왔다가 포구에 정박한 낡은 배에 부딪히며 부서지는,

한여름 밤, 오래된 이름들

(봄을 사이에 두고)

겨울이 온다

◇정훈교= 2010년 ‘사람의 문학’으로 데뷔했으며 시집으로 ‘또 하나의 입술’, ‘난 혼자지만, 혼밥이 좋아’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썼다 지우는’ 그리고 시에세이집 ‘당신의 감성일기’와 ‘당신이라는 문장을 읽다’가 있다. 독립문학잡지 ‘시인 보호 구역’(통권 22호)를 발간하고 있으며, 시인보호구역 대표를 맡고 있다.

<해설> 들었다. 와 들었다. 사이에 놓인 벚꽃의 의미는 그 구체성을 통영공립중학교 인근 어느 섬이라는 장소를 데려다 놓음으로 시를 읽는 이로 하여금 더 긴장하게 한다. 들었다가 마치 들은 것이 아닌 눈앞의 현장처럼 생생함을 더 하는 것은 또 뭔가? 팔월에 하염없이 지는 벚꽃의 이야기이다. 아침저녁으로 오체투지 하는 늙은 벚꽃의 이야기이다. 죽음을 사이에 두고, 봄을 사이에 두고 난데없이 한 여름밤의 이름들이 가을이 아닌 겨울을 부르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토막과 토막 사이에 당신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포구에 정박한 낡은 배에 부딪히며 부서지는 별의 이름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의 어떤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메시지를 넘어 질박한 노래로 표현한 시로 읽힌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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