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의료대란, 우리 모두가 피해자다!
[의료칼럼] 의료대란, 우리 모두가 피해자다!
  • 승인 2024.03.2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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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구광역시의사회 부회장
‘소동파(蘇東坡)가 이르기를 ‘천리 밖을 염려하지 않으면 환란이 눈앞에 닥치게 된다. 눈앞에 닥쳐서야 뉘우치는 사람들은 저급한 사람이다. 세상의 일시적 향락을 탐하는 자들은 그물에 걸린 제비나 솥 속의 고기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였다. 계책이 조정에서 잘못 되었는데 그 해는 백성에 치우쳐 구렁에 뒹굴고 도탄에 빠진 자가 모두 죄 없는 사람이었으니 이것이 어찌 하늘의 뜻이겠는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李瀷)의 대표 저서인 성호사설(星湖僿說)의 한 구절이다. 정부 정책이 잘못되어 무고한 국민이 손해 보는 것을 개탄하는 글인데, 중국 송나라의 소동파와 조선의 이익이 살던 사회 상황과 현재가 다르지 않으니 이건 도대체 무슨 조화인가. 과학 문명은 발전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이 쳇바퀴 도는가보다.

의대생 증원과 의대 신설은 진정한 의료와 사회적 수요에 의한 ‘정당한 설립’이라기보다는 정치인들의 표심잡기용으로 자주 등장하는 공약이다. 국회의원 입후보한 지역구에 의과대학이 없으면 이를 이슈화하여 지역 경제 발전과 보건의료 서비스 도약을 공언하는 모습은 선거철의 흔하디흔한 풍경이다. 또한 의대생 증원은 정권 차원에서 지지율 상승과 지지층 결집을 위해 애용되는 꽃놀이패로, 가깝게는 2020년에도 문재인 정권도 써먹었던 적이 있었다. 우리 사회는 전문가집단의 주장 보다는 행정부를 장악한 고시출신의 관리들의 말에 더욱 더 밀착해 귀를 기울인다. 거기에 평소 의사들에게 불만 있던 보건의료노조, 시민단체와 언론이 가세하고,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 공백에 불안감을 느낀 시민들의 불안감, 의사 숫자가 늘면 편하게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기대감이 복합되어 의대증원은 대세로 굳었다.

정부는 예측치를 훨씬 상회하는 2,000명 증원을 강행하며 의료계의 파업을 유발한 뒤 ‘불법 파업 엄벌’ 등의 강경 입장을 고수하여, 집단적 반발과 저항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듯하다. 의사의 본분과 환자의 소중한 생명을 망각한 이기적인 특권 세력으로 의사들을 악마화하고 이를 ‘의료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강력한 행정력으로 진압하는 돌파력을 과시함으로써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하면 과한 억측일까.

의사 숫자가 부족하든 아니든, 또 정부의 실제 의도가 어떻든 간에 이와 같은 설익은 정책의 ‘급발진’에 따른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떠안게 된다는 것과 국정 운영의 미숙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정부는 진정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상승하는 지지율에 취해 애써 눈감은 것인지 궁금하다.

필수의료 및 지방 의료 공백 등 지금 나타나는 의료계의 문제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되어 발생된 것이다. 작고 가녀린 민들레도 뽑아보면 뿌리가 한자가 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경작지 욕심에 민들레 들판을 밭으로 개간해 보겠다고 무턱대고 달려들었다가 뿌리 뽑다 벌써 지쳐 나가떨어지는 초보 농부의 꼴이 이렇지 않을까.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이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 원인은 성과만 욕심내어 과감하게 덤벼드는 ‘투 다이내믹 코리아(too dynamic korea)‘의 조급증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문한다. 의욕이 앞서 성급하게 뛰어 들더라도 모두가 공감하여 함께 한다면 안 될 일도 없겠으나, 다른 의견은 배척하고 혼자 가는 마이웨이식의 독선으로는 될 일도 안된다. 농부만 사방팔방 뛰어 다닌다고 풍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가 제때 오고 농부가 부지런하고 소가 튼튼해야 가을 들녘에서 풍년가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민들레 들판을 헤집어서 단칼에 ’의료개혁‘을 해내겠다는 독불장군의 카리스마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종(縱)으로 손 내밀고 횡(縱)으로 연대하여 두루 공감하고 함께 가는 포용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10년 뒤 의사 숫자를 늘리기 위해 현재 일하고 있는 의사들을 내쫓는 의료대란, 결국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것이다, 슬프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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