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댓글부대' 진실과 거짓 사이, 판단은 관객의 몫
영화 '댓글부대' 진실과 거짓 사이, 판단은 관객의 몫
  • 김민주
  • 승인 2024.03.28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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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소재 온라인 여론 조작
거짓과 진실의 모호함 속으로
댓글 그대로 보여줘 현실감↑
손석구·명품조연 3인방 시너지
카타르시스 없는 결말은 찝찝
손 “관객 느낌대로 엔딩 완성”
영화-댓글부대-2
영화 ‘댓글부대’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단독 아니고 특종”

사회부 기자 임상진(손석구)은 기술이 탈취당하고 대기업이 자신들의 인력까지 빼갔다고 호소하는 중소기업 사장을 만난다. 하지만 특별한 증거가 없는 상황을 보고 손을 떼려는 순간 중소기업 사장이 유명 대기업 ‘만전’을 언급하자 상진의 눈이 번쩍인다.

특종에 목마른 상진은 대기업 ‘만전’의 비리를 취재해 보도한다. 하지만 공개 이후 비리를 폭로한 제보자의 자살로 인해 ‘기레기’(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합성어) 여론이 형성되고 결국 희대의 오보로 판명되어 회사에서 정직 처분을 당한다. 오보 사건 이후 상진을 받아주는 언론사는 없다. 그러던 중 “기자님 기사 오보 아니었어요”라며 온라인 여론조작에 대해 제보하겠다는 의문의 남자가 그를 찾아온다.

그는 자신을 온라인에서 여론 조작을 펼치는 댓글부대 ‘팀알렙’의 멤버라고 소개하며 돈만 주면 진실도 거짓으로, 거짓도 진실로 만들 수 있다며 상진의 보도 역시 오보로 몰아갔다고 주장한다. 혼란에 빠진 임상진은 고민 끝에 누명을 벗기 위해 그의 제보를 바탕으로 댓글부대의 진상을 밝히는 후속 기사를 준비한다.

27일 개봉한 영화 ‘댓글부대’는 전직 기자 장강명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온라인 여론 조작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다룬 영화이다. 영화는 도입부부터 ‘이 이야기는 실화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를 고려해 주요 인물 및 기업의 이름을 가명으로 바꿔 전달한다’는 손석구의 내레이션을 통해 앞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모두 진짜라고 선언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의도적으로 흐려진다. 감독은 영화를 거울삼아 현실을 이리저리 비추며 거짓이 약간 섞인 진실이 오히려 더욱더 진짜처럼 보이는 세상을 풍자한다.

성별과 세대를 불문하고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하지 않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든 현재, ‘댓글부대’는 ‘내가 본 게시물도 주작(조작)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짜깁기로 만들어진 거짓 게시물에 여론이 요동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담겨있어 관객들은 흥미로움을 느끼는 동시에 어느 정도 환멸을 느끼게 된다. 어디선가 보거나 들어봤던 이야기지만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음모론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관객들은 ‘진실’에 대한 경각심을 깨닫는다. 영화 커뮤니티에 달린 ‘선거에 앞서 꼭 봐야할 영화’라는 댓글평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지점이다.

영화 ‘댓글부대’는 제목 그대로 댓글부대를 이루는 팀알렙 일당이 나오고서야 진가를 드러낸다. 이름도 어려운 찡뻤킹(김성철), 찻탓캇(김동휘), 팹택(홍경)이 그 주인공이다. 빠른 두뇌 회전으로 여론 조작을 주도하는 ‘찡뻤킹’, 스토리를 짜는 작가 ‘찻탓캇’, 키보드 워리어 ‘팹택’으로 이루어진 팀알렙은 SNS 사진 한 장으로 새로운 담배를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잘나가던 영화를 순식간에 망하게 하는 여론을 만들어낸다.

특종을 터뜨리고 싶어 끝도 없이 내달리는 기자 ‘임상진’과 댓글부대 ‘팀알렙’의 기발하고도 치밀한 여론 조작 과정이 교차로 편집되면서 영화의 속도감이 느껴진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제5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언론과 평단의 주목을 받은 안국진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또한 현실에서 운영되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들 속 글과 그곳에 달리는 댓글 흐름이 그대로 영화에 등장하면서 현실감을 높인다. 진실 혹은 거짓, 현실과 허상을 고민하게 하는 이 모호함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다.

그러나 실체가 없는 소재를 상대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의 전개는 전형적인 상업 영화를 생각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는 자칫 실망을 줄 수도 있다. 어딘가 섬뜩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긴 과정을 따라온 것에 비해 결말이 허무하다. 누군가를 엄벌하는 카타르시스가 없는 결말은 현실을 반영한 주제 의식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일 수 있지만 극장을 나서는 순간까지 남아있는 찝찝한 감정이 해소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기자 일에 대한 디테일도 아쉽다. 상진이 ‘특종’이라고 단언할 만한 엄청난 기사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양측 팩트 체크를 두 번이나 제대로 하지 않은 점은 다소 현실과의 괴리가 느껴진다.

러닝타임 동안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하는 데에는 임상진 역의 배우 손석구와 ‘팀알렙’ 멤버 김성철, 김동휘, 홍경 배우의 열연이 큰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속 배우 손석구의 연기는 기자가 볼 때도 언론사 사무실에서 한번 봤을 듯한 누군가의 모습처럼 보일 정도로 현실감이 느껴지고 균형 잡힌 연기를 보여준다.

찻탓캇 역을 맡은 김동휘 배우는 기자에게 자신들의 행보를 제보하는 역할로 숨겨진 이야기를 털어놓은 화자가 되는데 독기가 바짝 오른 상진을 앞에 두고 그의 분노를 차분히 내려놓게 하는 특유의 표정과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또한 팀알렙 멤버들은 욕망과 정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춘의 다양한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역할 분담이 명확한 한 팀으로 보이고 싶었다는 김성철의 바람처럼 팀알렙으로 뭉친 세 사람의 티키타카는 스토리에 ‘힘’을 불어 넣는다.

영화에서는 기자 입장에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반전이 있다. “현실을 보고 현실을 살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가상인지 구분이 안되는 세상이다. 주연배우 손석구는 “관객이 받는 느낌대로 엔딩이 완성되는 작품”이라고 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아마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댓글부대’ 관련 기사나 평점 등을 보는 시각도 달라질 것이다. 그의 말처럼 이 영화는 마지막에서 보는 이들에게 모든 공을 넘긴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인터넷 상에서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지 말고 궁금하다면 직접 보고 판단하기를 바란다.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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