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의 커피이야기>-90여년 代 이은 장인정신…드리퍼의 새역사를 쓰다
<이병규의 커피이야기>-90여년 代 이은 장인정신…드리퍼의 새역사를 쓰다
  • 황인옥
  • 승인 2017.05.3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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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고노家 커피이야기-명문 드리퍼 탄생
1960년대 후반 日 커피수요 급등
일본식 커피 추출기구 필요성 커져
고노 토시오, 융 드리퍼 장점 살린
원추형 드리퍼 필터 개발·판매 시작
1973년 개량형인 ‘명문 드리퍼’ 출시
2010년 창업 85주년 맞아 신제품 발매
전세계 사랑받는 커피명가 저력 입증
고노드리퍼사진
하나의 예술작품같은 색색의 고노 드리퍼.
커피추출-고노토시오 회장
커피추출을 시범하는 故고노 토시오 회장.
고노명문드리퍼2인용세트
고노 명문 드리퍼 2인용 세트.
커피 추출과 드리퍼의 이야기라면, 일본의 고노 가(家)를 빼 놓을 수 없다. 고노는 3대에 걸쳐 커피기구를 연구해 온 집안으로, 지금의 3대째 사장인 고노 마사노부(河野雅信)가 2010년에 창업 8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타입의 ‘명문(名門) 드리퍼’를 발매할 정도로 대를 이어 커피를 연구하는 집안이다.

일본의 텔레비 도쿄(テレビ東京) 방송에서는 2014년 12월 18일, 세계에서 본 ‘Made in Japan’ 프로그램에 고노의 명문 드리퍼를 소개했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핀란드에 있는 커피전문점에서 드립용 커피 만드는데, 고노의 명문 드리퍼를 사용하는 장면과 함께 고노의 명문 드리퍼가 세계인이 사용하는 자랑스러운 일본제품임을 일본 국민들에게 알렸다. 그래서 앞으로 몇 회에 걸쳐 고노 가(家)의 커피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오늘은 그 첫 회로 명문 드리퍼의 이야기다.

이글을 시작하면서 독자들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집안의 가계(家系) 이야기다. 이 집안이 커피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초대 사장인 고노 아키(河野 彬)씨, 그가 명문 드리퍼를 만든 현재의 회사 ‘커피 사이폰 주식회사’를 설립했고, 2대째 사장은 고노 토시오(河野 敏夫)씨. 그리고 3대째 현재의 사장인 고노 마사노부 씨로 이어진다. 오늘의 배경이 되는 주 인물은 명문 드리퍼를 만든 2대째 사장 고노 토시오 씨다.

◇‘명문 드리퍼’ 탄생

1960년대 후반, 동경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일본은 고도 성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때, 커피수요가 증가하자 커피업계는 커피 추출기구로 독일 메리타사에서 만든 메리타 페이퍼 드리퍼를 수입 판매하고 있었다. 이 페이퍼 드리퍼는 간편하게 커피를 추출할 수 있는 기구였지만 커피원두 또한 독일식(풀시티)으로 볶아진 원두커피에 적합한 기구였다.

고노 토시오 씨는 오래전부터 커피기구를 만들기 위해 커피 로스팅을 배우면서, 메리타 페이퍼 드리퍼의 추출방법이 강하게 커피를 볶는 일본식 원두커피에 적합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래서 이러한 일본의 커피 볶음정도에 알맞은 커피추출 기구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일본의 커피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융 드리퍼에서 힌트를 얻어, 융 드리퍼의 장점을 살린 원추형 드리퍼 필터를 만들어 판매를 시작했다. 이 필터는 각도가 급하고 리브도 긴 상품이었다.

고노 토시오 씨는 자신이 만든 원추형 드리퍼 필터를 사용하면서, 긴 리브로 인해 추출 시 필터 상부의 옆 부분에서 뜨거운 물이 커피 분말 입자에 적셔지기도 전에 필터 옆으로 새어나와 커피 본연의 맛을 충분히 추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결점을 파악한 그는, 상품판매를 전면중단하고 문제점 해결을 위해 다시 연구를 시작했다. 필터의 각도와 리브길이 등, 디자인을 변경해가면서 추출과정에서 커피 맛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 추출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하면서 축적된 데이터를 가지고 현재의 명문 드리퍼를 만들었다. 이때가 1973년으로, 고노 토시오 씨는 기능이 보완된 개량형 명문 드리퍼를 다시 판매하기 시작했다.

명문 드리퍼는 일본의 커피 전문가들 사이에 융 드리퍼보다 편리하고 맛이 좋다고 입소문으로 퍼져나갔다. 2003년에는 일본의 유명 잡지인 ‘슈부노 도모(主婦の友)’회사 주최로, 잡화 카다록 우수상품 선발행사에서 디자인과 기능이 뛰어난 상품으로 인정받아 그랑프리를 받기도 했다. 1985년에는 가정용으로 간편하게 개량된 ‘드리퍼 명인’을 판매했다. 명문 드리퍼와 드리퍼 명인의 차이점은 2인용 명문 드리퍼를 기준으로 볼 때 드리퍼 명인 쪽의 리브가 짧다. 4인용에서도 드리퍼 명인은 짧은 리브에 필터 각도가 명문 드리퍼보다 완만하게 제작되었다. 이것은 가정에서 커피를 추출할 때 사용하는 주전자를 고려한 형태로, 커피의 추출속도를 늦추어 맛을 좋게 하려고 한 것이다.

2010년에는 고노 마사노부 씨가 드리퍼 명인의 장점을 한 번 더 개선하였다. 리브를 가늘면서 좀 더 짧게 하고 추출구의 직경을 작게 함으로서 보다 추출효율을 높인 뉴 타입의 드리퍼 명인을 개량했다. 드리퍼 명인은 원추형으로 물의 투과 속도가 빨라서 일반인들이 투과 속도를 잘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뉴 타입의 드리퍼 명인은 투과 속도조절을 비교적 편하게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커피분말의 투과층이 깊어서 커피 맛에 깊이가 있고, 맛과 향을 조화롭게 추출하는 장점을 가지게 되었다.

◇짝퉁 드리퍼와 경쟁하는 고노 드리퍼

나는 오래 전, 일본의 카페 쇼에서 고노 부스를 차려놓고 명문 드리퍼를 홍보하고 있는 고노 마사노부 사장을 만났다. 그는 오랜만에 보는 나를 무척이나 반가워하면서, 전시를 위해 특별히 만든 투명한 그린색 칼라 명문 드리퍼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 전시회에는 명문 드리퍼를 흉내 내어 만든 하리오사의 원추형 드리퍼가 이웃 전시부스에서 홍보를 하고 있었다. 그날 이 모습을 보고, 마사노부 사장은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명문 드리퍼와 똑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원추형으로, 명문 드리퍼를 잘 아는 사람이 보면 모방한 드리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하리오의 원추형 드리퍼는 추출원리와 기능을 알지 못한 채, 독일의 메리타 드리퍼를 카피하여 성공한 어느 업체의 경험을 본받아 똑같은 길을 가고 있었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전시부스가 넓고 화려해서 하리오가 더 좋아 보일 수도 있었다. 더더욱, 흉내를 내어 만든 회사의 규모가 고노보다 큰 회사고 일본에서 인지도도 높기 때문에 커피를 좀 안다는 전문가들조차도 짝퉁인지 모르고 있었다. 또한, 일본의 드리퍼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원추형 드리퍼의 진위를 밝히는 것은 고노 마사노부 사장의 몫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이치가 다 그렇다는 듯, 어처구니없는 광경이 그날 일본의 카페 쇼에서 벌어지고, 회사의 홍보와 영업능력이 드리퍼의 모든 진실을 덮어 버리는 세상. 기만과 거짓의 탈을 쓰고 왜곡된 진실을 팔고 있는 그들에게 나는 한마디 하고 싶었다. ‘당신들, 커피 맛을 알기나 해?’

◇에필로그

우리의 현실은 일본의 그것보다 훨씬 더 참담하다. 우리에게는 커피 사이폰이나 하리오 같은 회사도 없다. 그러나 요즘 우리의 커피시장이 커지자, 세계커피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단기간에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기 때문이다. 아마, 장사꾼들에게는 대단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커피로 돈을 번 사람과 기업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들이 양심이 있고, 우리의 커피문화를 사랑한다면 이처럼 좋아진 사회적 인프라를 그냥 돈벌이로 이용하지만 말라고. 우리에게도 ‘커피 사이폰㈜’과 같은 회사가 하나쯤 있기를 소망한다고. 그래서 지면을 통해, 우리의 커피와 기업의 창업스토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 위의 내용의 일부는 명문 드리퍼를 알리기 위해, 고노 마사노부 씨가 만들어 놓은 홍보물에서 발췌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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