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꾸리던 손이
작은 짐이 되어 등 뒤로 얹혔다
가장 소중한 것이 자신임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 끗발 조이던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안았다
세상을 거머쥐려 나돌던 손가락이
제 등을 넘어 스스로를 껴안았다
젊어서는 시린 게 가슴뿐인 줄 알았지
등 뒤에 두 손을 얹자 기댈 곳 없던 등허리가
아기처럼 다소곳해진다, 토닥토닥
어깨 위로 억새꽃이 흩날리고 있다
구멍 숭숭 뚫린 뼈마디로도
아기를 잘 업을 수 있는 것은
허공 한 채 업고 다니는 저 뒷짐의
둥근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겠는가
밀쳐놓은 빈손 위에
무한 천공의 주춧돌이 가볍게 올라앉았다
◇이정록=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정말> <의자>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제비꽃 여인숙>
<풋사과의 주름살>
2001년 김수영문학상과 2002년 김달진문학상 수상
<감상> 사람마다 생각과 견해가 다르다는 것을 이정록시인의 뒷짐을 보면서 한 번 더 깨닫게 된다. 시인은 뒷짐을 지고 있는 사람의 손을 보면서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고 느끼는 듯하다. 하지만 늘 버릇처럼 뒷짐을 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남편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왠지 나이든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어 늘 못마땅한 생각에 뒷짐 지는 것을 못하게 하거나 토라져 저만치 혼자 걸어 가 버렸던 적도 있다.
어릴 적 들일 다녀오신 아버지께서도 늘 뒷짐을 지고 마당에 들어서곤 하셨다. 두 손을 등 뒤로 가지런히 포개어 받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삶의 무게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남편도 한 가정에 가장이란 힘든 짐이 항상 어깨를 누른 무게로 느껴졌을까 생각이 들어 이제야 이해하며 나란히 함께 걸을 수 있을 듯하다. -달구벌시낭송협회 오순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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