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실천과 정치적 불평등 극복
지방분권 실천과 정치적 불평등 극복
  • 승인 2016.04.1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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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지방분권운동대경본부 공동대표·부산대 경제통상연구원 연구교수
재작년에 작고한 민주주의 이론의 최고 권위자인 로버트 달 교수가 남긴 마지막 저작은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이다. 평생을 민주주의 연구에 헌신했던 그는 이 책에서 “왜 다시 정치적 평등인가?”를 화두로 꺼내들고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시나리오를 펼쳐보았다. 하나는 인구증가로 인한 정치체제 규모의 확대와 경제위기 등이 정치적 불평등을 거의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밀어붙이고 결국 민주주의 제도들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비관론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를 지배하는 ‘경쟁적 소비주의’ 문화가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더 많은 정치적 평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시민의 힘이 결집되는 낙관론이다.

정치적 평등은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다. 달 교수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 주제에서 손을 놓지 못한 이유는 18세기 후반 이래 인류 역사에서 민주주의와 정치적 평등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진전됐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한계와 도전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평등을 가로막는 첫 번째 장애물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용하는 돈, 정보, 시간, 지위 등 정치적 자원의 불평등이다. 쉽게 말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평등한 투표권을 보장한다 하더라도 정치엘리트들과 일반 시민들 사이에 힘의 균형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근대 이후 세계를 지배하는 민주주의는 대표자를 선출해 우리의 권한을 위임하는 ‘대의(代議) 민주주의’이다. 그러나 정치엘리트들은 권한을 위임한 주인이 방심하는 틈을 타, 즉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에 의존해 권력을 강화해 나간다. 그리고 그 권력은 대개 시민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기 마련이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그 자체만으로는 정치적 평등이 달성될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는 이를 대의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민주주의 결핍’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시민들의 직접적인 정책결정과 같은 ‘참여민주주의’의 등장을 불러온 배경이다.

그러나 결함이 많은 ‘대의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에 의해 보완돼야 할 대상이지 폐기의 대상은 아니다. 참여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의 완전 대체재라면 지금처럼 정치혐오증이 극에 달한 시기에 굳이 누군가를 뽑아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직접참여는 어디까지나 대의제의 보완재이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 정책을 만들고 고쳐나갈 대표자를 우선 골라야만 한다. 대표를 선택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며,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한 선택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건강성과 역동성 유지에 도움이 된다. 특히 정치적 불평등 해소에 도움을 주는 기준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전국의 지방분권 관련 단체들이 시민들을 위해 이런 기준 하나를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중앙의 관료와 정치엘리트들에게 집중된 권한을 지역으로 분산해 궁극적으로 시민권력을 강화하는 ‘지방분권’이라는 기준이다. 이를 위해 지방분권운동본부와 같은 시민단체, 민과 관의 협의체인 지방분권협의회, 지역언론 등이 목소리를 모았다.

지방자치 20년이 흘렀어도 권력과 돈, 기회 등이 중앙에 과도하게 집중된 기형적 한국사회에서 지역과 지역민이 회생할 수 있는 길은 지방분권 밖에 없다는 데 뜻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공약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한 지방분권 의제들은 지방분권형 개헌, 자치입법권과 자치재정권의 강화, 지역정당 설립의 보장, 지역정치를 왜곡시키는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의 한시적 폐지, 주민주도형 주민자치회법 제정과 같은 것들이다.

중앙정당이나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누리는 막강한 권력의 일부를 지역과 지역민들에게 내줘야 하는 것이니 표를 위해 공약으로 수용하더라도 실행에는 소극적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분권 단체들은 공약채택과 협약체결을 동시에 촉구하고 있다. 협약체결은 지방분권을 위해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하겠다는 서약을 하는 것이다. 이제 정당과 후보자들이 지방분권 공약화와 협약체결로 유권자들의 요구에 답할 때이다. 우리는 지방분권 실천으로 정치적 불평등을 극복할 의지가 있는 후보에게 소중한 권리를 행사할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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