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렵혀진 물이나
썩을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 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은가
◇도종환=1984년 문학무크 <분단시대>로 등단.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등.
2009년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감상> 흘러가는 강물이 생각지도 못했던 온갖 여러 물들을 만나면서도 그 흐림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모든 더러움을 품어 맑히며 결국 먼 길을 가듯, 우리들도 넉넉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길을 묵묵히 걸어가면 좋을 듯하다. 그러다보면 우리도 어느새 강물이 흘러흘러 언젠가 만나게 될 바다의 넓이와 깊이를 닮아있지 않을까 싶다. -달구벌시낭송협회 박미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