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핀 꽃
옛 가지에
다시 올해도 핀 꽃
빛깔도 같고
향기도 같고
모양도 같은데...
보는 내 눈이 다르고
생각하는 내 마음이 변했고
냄새 맡는 내 코가 무디어 지고
계절은 변하지 않았는데
시절은 어기지 않았는데
봄은 옛날의 봄 다시 왔는데
달라진 눈으로 보는 꽃
40세의 새초롬한 봄과
50세의 풀죽은 봄과
60세의 고개 숙인 봄이
같은 꽃 위에서 달리 온다
내 곁에 머물던 사람 떠나가고
달라진 눈으로 보는 봄이여
달라진 가슴으로 우는 봄이여
뒤돌아보지도 않고
조금도 멈추어 주지 않고
가는 봄에 가는 꽃
지는 꽃에 가는 인생이여
해마다 피는 꽃은 같건만
가노라 희젖는 봄이여
낙환들 꽃 아니랴 양탈하는 맘이여.
◇문병란=시집 <문병란 시집, 1971> <죽순밭에서, 1977>
<벼들의 속삭임, 1980> <땅의 연가, 1981>
전남문학상(79), 요산문학상(85), 금호예술상,
광주예술상, 화순문학상, 한림문학상, 평화문학상 수상
<감상> 시인은 40세, 50세, 60세의 달라진 마음과 눈으로 보는 꽃은 같은 꽃 위에서 달리 온다 한다. 그러나 머물지 않는 세월에 뭔가 모르게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자기만의 성찰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달구벌시낭송협회 오순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