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나른해지는 게 가슴골에 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
내 안에도 봄이 오는 줄 알았다가, 그랬다가
대구 제일영상의학과와 경대병원을 전전했다
피었다 지는 안타까운 꽃 말고
피어서 안 될 꽃이 필까 봐
세상에 항복한 포로가 되어
온몸 꽁꽁 묶인 채 삼십 분 동안 사진을 찍었다
어린 왕자가 쓰던 호기심 가득한 렌즈로
열길 보다 깊은 속을 퍼 올리는데
살아오면서 소화되지 못했던 것들이 끅끅 소리가 난다
힘들 때마다 얼마나 누르고 싶었던 비상벨 소리인가
온몸으로 삼켜가면서, 내가
다독이지 못했던 세월을 무작위로 복사하는 사진사는
내 안에 꽃이 필까 의심스럽다 하였다
그 말에 내 가슴속엔 은사시나무가 심어지고
은사시나무는 붉은 몽우리가 꽃망울처럼 터질까 봐
환희로 터져버릴까 봐
며칠 동안 시시때때로 흔들리면서 떨고 있다
이 봄날
저도 꽃 인양 발칙하게 피울까 봐
◇김성희=낙동강문학·시에디카 신인상 수상
<해설> 누구나 어딘가 아픈 곳이 있다. 비록 느끼지 못하지만 몸과 마음 구석구석에 송곳처럼 깊게 박혀 있을 수 있다. 행복한 순간을 위해서는 행복하지 않은 일도 때때로 해야 한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 그것을 찾아내고 몰두하는 것은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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