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마을이야기] 자연의 품에 안긴 고택의 고즈넉함에 취해
[영덕 마을이야기] 자연의 품에 안긴 고택의 고즈넉함에 취해
  • 김상만
  • 승인 2015.08.2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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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경상북도 마을이야기-영덕 인량마을

산·들·반변천에 둘러싸인 최적의 풍수

8개 성씨 모여 일찍부터 자치조직 형성

17~18세기 문중마다 수많은 학자 배출

500년된 충효당, 자연과 조화로운 배치

오봉종택 등 문화재 지정 가옥 열채 넘어
/news/photo/first/201508/img_173636_1.jpg"오봉종택/news/photo/first/201508/img_173636_1.jpg"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오봉종택. 가장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오봉종택(경북문화재자료 제538호)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화를 입어 낙향한 권책 선생의 종택이다.
영덕 바닷가에서 2km 남짓 떨어진 작은 마을. 넓은 들판이 산과 마주한 지점에 오래된 옛 고택들이 펼쳐져 있다. 뒷산의 모습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친 것 같다고 해서 나래골, 익동, 비개동 등으로 불리다가 이곳에서 인자한 사람들이 많이 배출됐다고 해서 인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인량마을은 안동 못지않게 예를 숭상하고 풍속이 엄격하다고 해 ‘작은 안동’이라 불렸다. 삼한시대에 우시국이라는 부족국가의 도읍지였다는 설도 있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 앞으로는 넓은 들과 반변천이 흐르고 있어 농경시대에는 최적의 풍수라 꼽을만하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 대부분 1~2성의 씨족으로 형성된 것에 반해 인량마을에는 8개 성씨의 종실이 있다. 재령이씨, 안동권씨, 무안박씨, 함양박씨, 야성정씨, 대흥백씨, 영양남씨, 영천이씨, 웅성주씨가 서로 협력하며 마을을 꾸려왔다.

광해군 7년인 1615년 향촌 내의 질서를 만들기 위한 향약(鄕約)을 실시했을 뿐 아니라 마을 공동의 재산을 관리하기 위한 자치 조직을 만들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17~18세기에는 각 문중마다 많은 학자들을 배출했고 20세기에 이르러서는 항일 독립의사가 나왔다고 전해진다.

◇마을에 발 딛는 순간 시간여행은 시작되고

인량마을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만 열 채가 넘는다. 역사적인 가치가 뛰어난 유산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인량산 아래 종택들이 있고 그 아래 평지로 소작인들의 집이 모여 있는 모양새다. 우리나라 전통 한옥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싶다.

마을 가장 깊숙한 곳에 한눈에 봐도 풍채가 좋은 가옥 한 채가 눈에 띈다. 이황의 성리학을 계승 발전시킨 갈암 이현일 선생의 출생지 충효당(중요민속자료 제168호)이다. 대문 앞에 서면 인량마을과 앞 들판, 안산을 비롯해 동해까지 보일 정도로 전망이 뛰어나다.

/news/photo/first/201508/img_173636_1.jpg"충효당/news/photo/first/201508/img_173636_1.jpg"
마을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한 충효당. 후학을 양성하던 장소로도 사용됐다.
충효당은 자연의 품에 안긴 듯 둥근 뒷산을 뒤로 하고 널찍한 대지 위에 남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조선 성종 때 건립돼 약 5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오롯이 마을을 지켜본 셈이다. 안채, 사랑채, 마굿간, 사당, 정자 등으로 구성돼 담장 길이만도 100m가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충효당은 다른 지역 한옥보다 나무가 많이 사용된 것이 특징. 임진왜란 직후 별도로 건립된 사랑채는 전면이 나무로만 돼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 널판나무를 이용한 판벽이 많다. 사랑채는 후학을 양성하던 장소로도 사용됐다고 하는데, 주위 자연경관과 조화로운 배치가 옛 사대부들의 의식을 짐작케 한다.

충효당이 마을의 우측을 지키고 있다면 좌측 중심축에는 삼벽당(경북문화재자료 제458호)이 있다. 너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한적한 곳에 세워진 삼벽당은 영천이씨의 종택이다. 조선 중기 중국 명사의 주선으로 직경 10~20cm의 싸리나무 500여 개를 서까래와 도리로 일부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건물 평면은 ㅁ자형으로 구성돼 있으며, 서쪽에 별도의 사당을 모셔두었다.

가장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오봉종택(경북문화재자료 제538호)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화를 입어 낙향한 권책 선생의 종택이다.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위풍당당한 솟을대문을 지나면 안채와 사랑채인 오봉헌, 별도의 종자인 벽산정을 만날 수 있다. 영덕지역 안동권씨 가문의 정신적 구심적 기능을 해오고 있다.

만괴헌(경북문화재자료 제209호)은 본래 야성정씨의 고택이었으나 1843년 신재수가 구입한 이후 평산신씨 종택으로 여겨지고 있다. 충효당과 함께 가장 높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15세기 처음 지어졌고 19세기에 개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해지역에서 많은 공로를 세운 만괴헌 신재수의 호를 따서 이름 붙여졌다. 영덕 지역의 특성을 살린 ㅁ자형 주택 전형이 잘 보존돼 있다.

이밖에도 영남학파의 거두 갈암 이현일의 종택인 갈암종택(경북기념물 제84호)과 숙종 때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던 강파 권상임의 살림집인 강파헌 정침(경북 문화재자료 제358호),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운 정담장군에게 하사한 정담 장려비(경북문화재자료 제380호) 등 10여개의 문화재를 만날 수 있다.

◇보리 밟고 마차 타고… 신나는 농촌체험

현재 14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는 인량마을은 2004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받았다. 마을 주민들은 폐교된 인량초등학교를 구입해 ‘나라골 보리말 체험학교’로 리모델링했다. 현대식 숙박시설과 단체 식당을 갖추고 계절마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봄이면 보리밟기와 당나귀마차 타기, 여름에는 복숭아 따기, 보리개떡 만들기, 보리 베기, 피라미 잡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가을에는 사과, 배, 옥수수 등을 수확하고 겨울에는 연날리기나 썰매타기로 추위를 날려버린다. 높고 빽빽한 건물과 아스팔트 도로가 익숙한 도심의 어린이들에게 감성을 키워줄 최고의 놀이터다. 어른들도 옛 추억을 떠올리며 동심으로 돌아간다.

마을 주민들이 손수 재배한 채소로 만들어 내놓는 식사 역시 농촌 나들이의 묘미. 인량마을은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이색 체험하기 좋은 농촌체험휴양마을’ 10곳 중 하나로 선정되며 인기몰이 중이다. 영덕=이진석기자

◇여덟 요괴를 물리친 역동 선생과 마을의 든든한 수호신 팔풍정

인량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느티나무다. 나뭇잎이 무성한 여름이면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널찍한 그늘이 생겨 마을 사람들의 쉼터가 돼 준다.

이곳을 팔풍정(八風亭)이라 부르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때는 고려 후기, 팔령신(八鈴神)이라는 여덟 요귀가 이 나무 위에 살았다. 요귀들은 형체가 보이지 않고 방울소리만 냈는데 딸랑딸랑 방울 소리만 났다하면 마을에 사는 누군가가 이유 없이 죽어나갔다. 나랏일을 보는 관리도 화를 피하지는 못했다. 하룻밤 사이에 송장으로 실려 나가기 일쑤였기 때문에 중앙에서도 관리를 보내기 두려울 지경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영해부사(寧海府使)나 사록(司錄)이 새롭게 부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일주일 전부터 팔풍정 앞에서 몇 마리의 소를 잡아 술을 빚고 음식을 장만해 무당들을 불러 굿을 치르곤 했다.

그러던 중 역동 우탁 선생이 영해사록으로 부임했을 때다.

벼슬아치들은 늘 그랬듯 굿을 준비했다. 이 사실을 들은 역동 선생은 치성을 거절하고 강력한 부적을 써서 팔령신들을 제압했다. 역동은 관어대 입구에서 동해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을 한 요귀만 살려두고 나머지 일곱 요귀는 모두 바다에 던져 없애버렸다. 이후 인량마을은 평화를 되찾았으며 마을 주민들은 팔령신이 사라진 팔풍정을 마을의 수호신목으로 여기고 있다고 전해진다.

영덕=이진석기자 leejins@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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