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해도 희망이 안 보인다”… 숫자에 멍든 청춘
“열심히 일해도 희망이 안 보인다”… 숫자에 멍든 청춘
  • 정혜윤
  • 승인 2015.09.03 20:5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높은 실업률·저임금에 신음하는 2030세대

야근수당·연월차 없고

퇴근 후에도 ‘카카오톡 지시’

대다수 100만원 안팎 월급

저임금 근로자 30% 차지

사람 대신 로봇 활용

스마트공장 확대 추세

단순노동 등 일자리 줄어

직장인도 고용 불안
/news/photo/first/201509/img_174549_1.jpg"/news/photo/first/201509/img_174549_1.jpg"


‘아프니까 청춘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그럴듯한 말들이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학교를 휴학하고 하루 16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달픈 청춘들에 용기를 주고 희망을 보여주려 했던 메시지같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무리 메시지를 되뇌며 마음 다잡고 헤쳐가려 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많은 청년이 말한다.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메시지는 추상적인 말에 지나지 않는다. 아파도 그냥 견디라는 ‘강요’로 들리기 때문이다. 청춘의 마음을 알아주는 기성세대는 드물다. 취업에 치이고, 세상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는 현실을 얘기하면,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치면서도 궂은 일을 마다하고 편한 자리만 찾는다.’는 훈계만 돌아온다.

청춘의 희생을 젊은 시절의 낭만으로 당연시하는 사회는 이들의 가슴에 더 깊고 예리한 상처를 남긴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 절망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유일한 희망을 걸고 발버둥친다.

◇직장에 낭만은 없다…무기여 잘 있거라

지역 4년제 대학의 인문계열 학과를 나온 이은미(28·여·가명)씨는 사회생활 5년 동안 직장을 여섯 번 옮겼다. 첫 번째 직업은 대구의 한 방송사 작가였다. 취업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연히 시작하게 된 작가 일은 이씨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막내 작가들은 신분은 프리랜서인데, 법정 노동 시간을 훌쩍 넘기는 초과 근무를 한다고 했다. 매일 출근을 해야 하고 야근수당도 교통비도 받지 못한다. 맡은 프로그램이 결방되면 100만원 안팎의 월급도 온전하게 못 받는다. 실상을 알곤 입사한 지 보름 만에 그만뒀다. 글 쓰는 직업을 선망한 이씨는 ‘현실과 꿈은 다르구나’ 비관을 했고 다시 일자리를 찾았다.

이씨의 두 번째 직장은 온라인 쇼핑몰 홍보팀이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홍보를 맡은 이씨는 이 회사에서 2년 동안 근무했다. 월급은 첫해 110만원, 이듬해 120만원을 받았다. 회사생활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사내 분위기도 좋았고 일도 수월했다. 하지만, 이씨는 일을 그만뒀다. 5년, 10년이 지나도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받을 것만 같아서였다. 그런데 이씨는 이 회사가 자신의 여섯 직장 가운데 가장 높은 복지 수준을 갖췄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8개월 뒤 입사하게 된 세 번째 직장은 부산에 있는 전시기획 전문회사였다. 연봉은 2천만 원으로 여태껏 이씨가 다닌 회사 가운데 가장 높았다. 그런데 이곳은 6개월 만에 그만뒀다. 업무 외적인 스트레스가 컸다. 강압적인 사내 분위기에 사내 예절은 고약할 정도로 엄격했다. 업무시간 외에도 회사 건물 밖에서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지적을 받았다. 부서장이 만든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의 대화는 퇴근 후에도 이어졌고 부서장이 쓴 글에 대답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혼났다.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할 때도 잦았다.

이직이 잦아지면서 이씨는 신중해졌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던 그는 편집 디자인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국비지원을 받아 3개월 동안 디자인학원에 다녔고 여기에서 배운 실력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인터넷 구인·구직사이트에 올렸다. 디자인 회사 4곳에서 면접을 봤고 사장을 포함해 직원이 2명밖에 없는 회사에 취직하게 됐다. 이씨는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없었지만, 사장은 “디자이너로 키워주겠다”며 일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이씨는 미래를 상상하며 꿈에 부풀었다. 업무 강도가 버거운 편이었지만 희망을 갖고 힘을 냈다. 연차나 월차를 쓸 수 없어도 실망하지 않았다. 회사가 발전하는 만큼 처우도 나아질 게 분명하니까 낙관했다. 어쨌든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선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고 이를 얻으려면 버텨야 했다. 하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잘렸다. 사장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금방 새 일자리를 찾았다. 직원이 3명인 회사였다. 이전 회사와 마찬가지로 사장은 “일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2개월 만에 잘렸다. 그만두던 날, 사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을 배우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명함을 만드는 데 온종일 걸리면 회사로서는 손해다.”

현재 이씨는 여섯 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다. 5개월쯤 됐는데 “쟤는 하는 일이 뭐야? 일을 하긴 하는 건가?”라는 얘기를 얼마 전 동료에게서 들었다. 그 후로부턴 ‘아직 한참 일을 배우고 있는데,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몸 상태가 나빠졌지만, 끝까지 버틸 참이다. “일을 못하면 회사에 불만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참아야죠. 또다시 직장을 옮길 순 없잖아요. 이직이라면 진저리쳐질 정도에요.”

이씨의 여섯 직장 평균 월급여는 131만 원이다. 가장 높은 임금을 주는 곳은 세 번째 회사였다. 4대 보험 혜택은 모두 누렸지만, 연차, 월차를 쓸 수 있는 곳은 2곳뿐이었다. 대부분 법정 노동 시간을 넘겨 초과 근무를 하는 곳이지만, 야근 수당을 주진 않았다.

만 18~35살 청년층의 실질실업률은 30.9%에 이를 정도로 높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취업한다 해도 좋은 일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는 수두룩하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만 15~29살 노동자 가운데 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2015년 기준 월 104만원, 시급 6천900원 안팎)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가 30%에 이른다. 60대 이상 고령자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청년층 저임금자 비중은 이탈리아의 2.5배나 된다.

특히 대구는 노동자에게 ‘최악의 도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013년 8월 발표한 ‘16개 시·도별 노동시장의 주요 특징’ 자료를 보면, 대구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4.0시간으로 전국에서 울산(44.2시간) 다음으로 길다. 반면 대구 노동자의 월평균 급여는 226만 원으로 제주(213만 원) 다음으로 낮다.

인력난도 전국에서 대구경북 지역이 가장 심각하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지난 4월 공개한 ‘2015년 상반기 수출기업 인력수급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전국 12개 지역 가운데 대구경북 수출기업의 인력부족 응답 비중이 32.1%로 가장 높았다. 이 가운데 기술직 부족이 42.3%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국 평균과 비교해서 12.6%포인트나 차이 났다. 기업과 구직자 간의 임금과 복지수준 불일치로 협회는 분석했다.

◇스마트공장…로봇에 일자리 뺏기나?

김지훈(31·가명)씨는 어릴 때 공상과학영화를 좋아했다. 영화에서는 가까운 미래, 인공지능 로봇들이 인간이 할 일을 대신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로봇들이 인류를 지배하기도 했다. 공상과학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여겼지만, 얼마 전 ‘정부가 공장을 스마트화 하기 위해 지원한다’는 내용의 뉴스를 보고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인터넷, 무선통신 같은 정보통신기술(ICT)과 각종 센서, 소프트웨어(SW), 자동화 로봇 등 첨단 IT를 제조현장에 적용해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자동화 비중을 높인다는 내용이었다. ‘10년, 20년이 지나 자동화된다면, 나이 든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의 일차적인 대상이 되지 않을까?’ 고약한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다.

김씨는 대구에서 규모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에 다닌다. 이곳에서 맡은 일은 물류관리업무다. 공장에서 만든 부품에 대한 수송·보관을 담당한다. 수송 물량을 눈으로 확인하고 지게차로 옮겨 차에 싣는 일인데, 점차 사람이 맡는 일이 줄어든다는 것을 느낀다.

지방대 출신에 자격증이 없는 김씨는 이 회사를 평생직장을 삼고 있다. 대구에서 이만한 직장이 없다고 여긴다. 김씨는 주·야간 2조 2교대로, 한 달에 250만 원 정도 번다. 대구 노동자의 월평균 급여(226만 원)보다 24만 원 높다. 여기에 700%의 상여금과 격려금이 더해진다. 그런데 공장 자동화로 자신의 일을 로봇에 빼앗길 날이 올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김씨의 우려는 현실이 될까?

스마트공장은 제조 공정 대부분이 자동화되고 통합 관리 솔루션을 적용하면서 공장에 필요한 사람 수가 일반 공장보다 훨씬 적어진다. 단순 반복 업무는 로봇이 대신하고 직원 한 명이 관리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구글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최근 컴퓨터 알고리즘과 로봇의 발전이 불러올 미래의 파급 효과로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20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노동집약적 제조업으로 성장해온 중국에서 인건비가 오르면서 로봇 판매량이 연평균 31%씩 증가해 지난 2012년 판매량이 이미 2만3천여 대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첨단산업용 로봇에 의한 한국의 2025년 노동비용 감축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33% 수준일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한국 성인 학습의지는 23개국 가운데 꼴찌(2.9점)로 분석됐다. 사실 기술 발전과 일자리 문제는 인류사에서 지속해 온 논란 중 하나다. 스마트공장 운영되면 양질의 다양한 일자리는 생기겠지만, 단순 근로 업종은 자리가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지역 업계 관계자는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스마트공장에 대해 관심을 갖는 기업이 많다. 공장 자동화가 된다면 일자리는 분명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일자리 감축에 대해 고민을 하는 곳은 크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손선우기자 sunwoo@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