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참사’ 우리의 불행임을 깨달아야…
‘대구지하철 참사’ 우리의 불행임을 깨달아야…
  • 황인옥
  • 승인 2014.03.10 16: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스라엘 출신 로미 아키투브 ‘기억의 흔적’
봉산문화회관 기획전
유리벽면 글라스에 새겨진 희생자들 이름과 생년월일
햇빛 통해 공간으로 들어와결코 사라지지 않는 과거 강조
대구지하철사고희생자의이름과나이
대구지하철사고 희생자의 이름과 나이, 생년월일을 조합해 만든 설치작 ‘기억의 흔적’.
불행을 겪은 당사자에게 제3자가 대응하는 방식은 금기시와 적극적인 위로 두 가지다. 금기시는 ‘상처를 건드려 좋을 것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고, 적극적인 위로는 ‘상처에 적극 개입해 심리적 무게감을 덜어주겠다’는 의도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같은 상황을 공동체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공동체의 불행은 철저하게 규명돼야 하며, 그 역사성은 어떤 경우든 반드시 보존·상기돼야 한다는 관점을 따르게 된다.

왜 다른 잣대일까. 개인의 경우가 불행을 당한 당사자에 집중했다면, 공동체의 불행은 사건 자체에 포커스가 맞춰졌기 때문이다.

봉산문화회관이 기획전으로 열고 있는 이스라엘 출신의 전 홍익대 교수 로미 아키투브(56)의 설치작품 ‘기억의 흔적(Memory’s Stain)’전의 주제는 불행한 사건에 대처하는 공동체의 방식에 관한 것이다. 특히 정부 혹은 공공기관 혹은 시민들의 대응방식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사례는 2003년 2월 18일에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다.

4면이 유리로 마감돼 일명 유리상자로 불리는 봉산문화회관의 아트스페이스 유리 벽면에는 스테인드글라스 형식으로 이름과 숫자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이 문자들은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로 숨진 192명 희생자의 이름과 생년월일들이다. 벽면과 대조적으로 바닥에는 상자 몇 개가 드문 드문 놓여 있고 그 위를 대구 지하철 노선이 그려진 천이 덮고 있다. 벽면 안은 공공의 공간이고, 벽면 바깥은 관찰자들의 공간이며, 벽면은 안과 밖의 경계면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나.

“희생자 가족들은 떠난 가족을 늘 생각하고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사회나 기관 역시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희생자 가족들처럼 잊지 말고 안고 가야한다. 왜냐하면 사회는 가족의 확대된 형태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구의 지하철사고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이점에 주목하고 작품을 통해 고립된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위로를 전하고, 대구사회에는 참사를 잊지 말고 상기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에 대해 알고 있나.

“한국을 대표하는 비극적 참사이며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지하철사고 정도로만 알았다. 하지만 전시를 기획한 김기수 대표의 설명과 전시 과정에서 대구시와 지하철기관이 이 사건을 덮고 싶어 하는 인상을 받으면서 이 불행을 바라보는 대구사회의 태도를 알게 됐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희생자가족단체 외에는 공식적인 행사가 없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비영리예술법인 온아트와 현대미술연구소 디카가 대구지하철사고를 상기하는 CMCP전을 열면서 김기수 온아트 대표가 내게 전시를 제의했다.”

-햇빛을 받은 스테인드글라스의 느낌이 색다르다.

“유리 벽면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햇빛을 받으면 데칼코마니 형식으로 새겨져 있는 희생자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유리공간 안으로 비쳐져 들어온다. 그 순간 안과 밖의 경계는 사라진다. 대구시나 기관들이 사건을 바깥으로 밀어내려고 해도 햇빛을 통해 사건의 실체가 벽면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미 일어난 사실은 은폐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스테인드글라스에 압축돼 있다.”

-공동체의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이 이스라엘과 한국 어떻게 다른가.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 전쟁과 테러 등의 상처투성이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애를 쓴다. 하지만 한국은 좀 다른 것 같다. 현재와 미래만 중시하고 과거는 과거로 묻어버리는 극단적인 태도를 보인다. 대구지하철사고에 대한 대응도 그런 연장선으로 보인다.”

-단절의 뿌리는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은 계급사회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때 계급간 소통 단절의 전통이 형성된 것 같다. 현대 한국 사회의 건축, 미술, 의식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과거는 극단적으로 배제되고 새롭고 현대적인 것만 추구한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서로 소통해야 온전한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바램이 있다면.

“911 테러가 발생한 뉴욕에는 그라운드 제로가 있다. 하지만 대구지하철사고역에는 사고를 상기하는 어떤 표식도 없다. 어떤 형태든 추모 조형물은 있어야 한다. 기회가 주어지면 공적인 공간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작품을 만들어 영구적으로 전시하고 싶다.” 전시는 다음달 13일까지. 053)661-3500

황인옥기자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