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전문가 4人이 말하는 대구미술의 현 주소와 재도약 방안
<창간특집> 전문가 4人이 말하는 대구미술의 현 주소와 재도약 방안
  • 김기원
  • 승인 2014.09.0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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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들 꿈 펼칠 공간을 확충하자”

박남희 교수 복지정책, 문화콘텐츠 개발과 함께가야

김선희 관장 기업 후원·해외 미술시장과 교류 필요

김은아 대표 작가들 소신 갖고 자신만의 색 입혀야

정세용 대표 선배들 노하우, 후배들과 공유해야
대구시를 중심으로 대구미술계가 제2의 도약을 위한 발판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근대미술과 1970∼1980년대 대구현대미술이라는 대구 미술의 역사적 자부심을 따라잡지 못하던 하드웨어가 대구미술관, 대구예술발전소 등이 개관하면서 제2의 도약을 시작한 것이다.

시동은 대구미술관이 먼저 걸었다. 신생미술관인 대구미술관이 지난 2011년 개관하고 개관 2주년과 3주년에 각각 쿠사마 야요이, 쟝사오강 이라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전시를 유치하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관심을 대구로 불러 모으고 있다.

한국담배인삼공사 연초제조창을 리모델링해 전시장과 아티스트 스튜디오,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대구예술발전소도 새롭게 부각되는 공간이다. 다양한 장르 예술의 융·복합을 시도하면서 실험적이고 역동적인 공간으로 역량을 축적해 가고 있다. 하지만 미술전문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은 확립하지 못한 상태여서 미술계의 고민이 깊다. 대구미술관과 함께 또 하나의 미술관이 개관할지 주목받고 있는 대구시가 추진하고 있는 ‘만남의 미술관-이우환과 그 친구들’ 건립 계획도 현재 대구미술계의 최대 이슈다.

대구지역의 시민단체와 원로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대구미술의 거목인 이인성 이쾌대, 석재 서병오 선생을 제치고 연고 없는 대구에 왜 이우환이냐”며 건립 자체에 반대 의사를 내 놓는 가운데 “대구미술관과 함께 대구미술에 시너지 효과를 불러 올 것”이라는 찬성 의견도 만만치 않아 ‘만남의 미술관-이우환과 그 친구들’을 둘러싼 두 세력 간의 기 싸움이 팽팽하다. ‘건립이 대구 미술의 분홍빛 청사진이 될지’, ‘전면 백지화가 차라리 이득일지’는 대구시와 이우환의 행보를 더 지켜봐야 하는 분위기다.

제2의 도약을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는 ‘대구 미술의 역사적 자부심은 무엇인지’, ‘만남의 미술관-이우환과 그 친구들’을 둘러싸고 안개 속처럼 혼미한 ‘대구미술의 해법’은 무엇인지 대구 미술의 중추에 있는 박남희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와 김선희 대구미술관장 등 중견 2인과 김은아 우손갤러리 대표, 조각가 정세용 B커뮤니케이션 대표 등 새롭게 부상하는 신진 미술인 2인을 만나 그들의 생각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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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박남희 경북대 미술학과 교수, 김선희 대구미술관장, 김은아 우손갤러리 대표, 정세용 B커뮤니케이션 대표
◇대한민국 미술의 중심지였던 대구

근대와 1970~1980년대에 이르는 시기의 대구는 대한민국 미술의 중심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역동적이었으며, 앞서나갔다. 하지만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경제성장과 함께 미술도 순수성에서 상업성으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거치면서 대구미술의 저력과 명성은 빛이 바래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구의 근대 미술과 1970~1980년대 대구현대미술이 재조명되고 있다. 새롭게 조명해야 할 대구 미술의 자부심은 무엇인지에 대해 박남희 경북대학교 교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대구는 근대에는 이인성, 이쾌대 등의 걸출한 작가들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영남선비 문화가 있었다.

또 6.25전쟁 시기에는 대구가 북한군의 군화로부터 유린되지 않았던 유일한 지역이라 전국에서 예술인들이 대구로 모여 들어 그야말로 대한민국 예술의 중심지였다. 종전 후에는 대구의 종합대학들에 미술대학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미술의 바탕이 두터워졌다. 그런 저력 위에서 1974년부터 1979년까지 대구에서 현대미술의 역동성이 꿈틀되었다. 당시 대구는 서울보다 먼저 한국모더니즘의 중심지였다.”

내친김에 한국모더니즘이 대구에서 태동하게 된 사회적 배경도 박 교수에게 청했다. 그는 “대구는 전통적인 가치관과 근대화로 인한 새로운 문화와의 충돌, 전통유교의 철학과 신교육의 충돌이라는 기운 생동하는 환경이 있었다”고 분석해 주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인 정세용 B커뮤니케이션 대표에게 선배 화가들의 화려했던 역사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궁금했다. “다른 지역의 작가들과 공동전시를 하게 될 경우 서울과 함께 미술의 중심지로 역할을 했던 대구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며 그 또한 대구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성장한 일원임을 에둘러 표현했다.

◇중심에서 변방의 길로

박 교수의 진단처럼 1970년대 후반까지 대구미술은 한국모더니즘 미술의 중심부였다. 주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를 지나면서 대구미술은 서서히 변방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대구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다 보니 1980년대 격렬했던 민주화 열망을 담은 민중미술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또 1990년대에 아파트문화가 확산되면서 판매에 유리한 구상미술이 각광받고 또 미술대학이 양적으로 팽창했지만 교육환경, 여건 등의 질적 향상이 뒷받침 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번에는 좀 다른 시각으로 대구미술의 현주소를 짚고 싶어 외지에서 대구미술의 중심부로 들어온 김선희 대구미술관장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김 관장은 “대구미술을 잘 모르고 왔지만, 막상 와서 보니 대구 근현대 미술의 풍부한 자원에 놀랐다. 광주가 예향의 도시라고 하나 대구의 근현대는 광주를 능가하는 빛나는 전통이 있었다”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미술관 건립이 너무 늦어지면서 대구미술이 수도권이나 타지역에 비해 미술관 문화가 낙후되고 우수한 대구미술의 저력을 구슬에 꿰지를 못해 대구미술이 1990년대 이후 꽃을 피우지 못하고 공백이 생기게 됐다”며 미술관의 부재를 꼽고, “늦었지만 대구미술관이 생기면서 대구에 미술이 제대로 펼칠 장이 마련됐다”며 향후 대구미술관의 역할에 주목했다.

지난해 우손갤러리를 재오픈하고 세계적인 작가들의 릴레이 전시를 이어가며 주목받고 있는 대구미술의 차세대 리더인 김은아 우손갤러리 대표도 “미래 설계는 현재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전제돼야 한다”며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느낀 대구 미술계의 현주소를 짚었다.

김 대표는 “대구 미술계는 누구나 다 아는 유명 미술인이 아니면 그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다. 예컨데 우리 갤러리에서 유럽미술계의 신적인 존재인 쿠넬리스의 개인전을 했는데, 당시 대구의 반응은 소극적이었다. 이런 차이가 서울과 대구를 중심과 지역으로 가르는 것 같다”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중견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중간 세대인 정세용 B커뮤니케이션 대표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는 젊은 미술가들의 애로점과 문제점에 논점을 제한해서 의견을 피력했다.

정 대표는 “젊은 작가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작업을 해 나가면서 개인전을 열어야 하는데 비용문제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최근에 대구시 산하 전시장과 일부 상업갤러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젊은 작가전이나 레지던시에 집중하게 된다”며 후배들의 열악한 상황을 강변했다. 그 역시 척박한 환경에 노출된 대구의 평범한 젊은 작가였지만, 자생력 확보를 위해 작업실 한켠에 전시공간을 마련하고 대구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을 적극활용하며 기획자를 겸하고 있다.

◇대구미술관과 ‘만남의 미술관-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 시너지 효과 발휘할 것

대구에는 현재 대구시 산하의 대구미술관이 미술의 중심을 잡고 있다. 타 지역에 비해 늦게 시작한 미술관 역사가 근현대 대구미술의 저력을 단절하게 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5월로 개관 3주년을 맞은 대구미술관이 대구미술에 어떤 길잡이가 되고 있는지에 대해 박 교수는 ‘일부 호의적, 일부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대구미술관이 쿠사마 야요이, 장샤오강 등의 세계적인 미술가의 전시를 이끌고 엄청난 관람객을 끌어 모으며 국내외적인 입지를 다져온 것은 호의적이지만, 대구미술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또 대구미술가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점도 보완점으로 보여진다.”

이에 대해 김은아 대표는 “대구미술관이 세계적인 작가들의 전시를 유치하면서 대구에 온 외지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대구의 다른 갤러리와 작가들을 둘러보고 있다. 대구 미술이 새롭게 사람들의 관심 속으로 떠오른 데에는 대구미술관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고 의견을 냈다.

주제는 자연스럽게 논란의 중심에 있는 ‘만남의 미술관-이우환과 그 친구들’로 옮아갔다. 이 미술관 건립에 대한 이들 4인(人)의 의견은 원론적으로 찬성 편에 서 있었다. “미술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대구 여건에서 미술관 하나가 더 생기는 것은 환영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박 교수는 “이우환 미술관이 왜 대구냐는 이해가 안 가지만 대구에 하드웨어적인 미술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술관이 하나 더 건립되는 것은 찬성이다. 이제는 하드웨어가 갖춰져야 한다. 특히 도심 내에 미술관이 와야한다”라며 한발 양보한 찬성 의견을 보냈다.

◇대구 미술 재도약, 가능하다

대구미술관과 대구예술발전소의 개관과 ‘만남의 미술관-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 건립 등의 논의들이 이어지고 있고, 대구아트페어와 대구사진비엔날레 개최, 대구현대미술제의 부활 등이 가세해 근현대 대구미술의 저력을 21세기에도 이어가기 위한 대구미술의 행보가 진행되고 있다. 제2의 성장 묘책은 무엇일까.

“대구미술은 역사적 자산이 훌륭하고 미술 인프라가 굳건하다. 하지만 아직은 관 중심의 미술정책이 크게 작용하고 서울과 지방의 격차도 크다. 뜻있는 지역 기업들의 대구미술에 대한 관심이 더해지고 전문큐레이터 양성과 해외미술시장과의 네트워크 개발과 활발한 교류 등의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김선희 관장)

“세계적인 수준의 미술관들이 더 지어져서 대구미술의 입지를 세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특히 작가들은 자기만의 독특함이 묻어나는 색깔을 추구해야 한다. 또 상업화랑들도 전문화해서 색깔있는 화랑으로 정체성을 확립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이 필요하다.” (김은아 대표)

“지역의 젊은 작가들이 계속해서 성장해야 한다. 대구시의 지원도 더해졌으면 좋겠고, 작가들의 자생력 확보를 위한 나름의 노력도 보태져야 한다. 여기에 우리보다 더 어려웠던 환경을 극복하고 중견 작가로 성장한 선배들의 노하우를 후배들이 들을 수 있는 세대간의 소통도 확대돼야 한다.” (정세용 대표)

“미술관 등의 하드웨어 확충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견인해야 한다. 대구시의 복지정책도 퍼 주기식 복지에서 벗어나 문화 복지 쪽으로 가야한다. 장기적으로 시민들의 인식을 바꾸고, 예술인들의 살 길을 위해서는 보도블럭을 까는 방식에서 벗어나 북성로 개발 등의 문화콘텐츠 개발로 전환해야 한다.” (박남희 교수)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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