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유교문화 다 품은 여기는 ‘살아있는 역사박물관’
불교·유교문화 다 품은 여기는 ‘살아있는 역사박물관’
  • 김정석
  • 승인 2014.09.1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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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관광1번지 우뚝> 7. 세계문화 유산의 寶庫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평원에서부터 이집트의 피라미드, 호주의 산호초와 남미 대륙의 바로크 성당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는 인류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유네스코는 이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들을 발굴하고 보호하고자 지난 1972년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을 채택했다.

지난 6월 현재 기준으로 전 세계 161개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1천7점에 이른다. 이 가운데 문화유산이 779점, 자연유산이 197점, 복합유산이 31점이다.

우리나라에는 등재 순서에 따라 해인사 장경판전(1995년), 종묘(1995년), 석굴암·불국사(1995년), 창덕궁(1997년), 수원화성(1997년)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하회마을과 양동마을(2010년), 남한산성(2014년) 등 총 10점의 문화유산과 1점의 자연유산이 있다.

그 중 경북은 3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경주는 하나의 도시에 석굴암과 불국사, 경주역사유적지구, 양동마을까지 다수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어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문화유산의 보고’로 꼽힌다.

이처럼 많은 세계유산을 자랑하고 있는 경북은 세계유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동해안과 산간지역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유산들을 관광자원화해 경북만이 할 수 있는 관광상품을 선보이겠다는 전략이다. 경북지역의 미래 성장 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세계유산들을 살펴본다.

석굴암과 불국사
東亞 불교조각 최고 평가
건축기법 세계 유례 없어


◆석굴암과 불국사

/news/photo/first/201409/img_142322_1.jpg"석굴암22/news/photo/first/201409/img_142322_1.jpg"
석굴암
석굴암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하기 시작해 서기 774년 신라 혜공왕 때 완공됐다. 건립 당시의 명칭은 석불사였다.

석굴암의 석굴은 백색의 화강암재를 사용해 토함산 중턱에 인공으로 석굴을 축조하고, 그 내부 공간에는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벽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39체의 불상을 조각했다. 석굴은 장방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이 통로로 연결돼 있는데 360여개의 판석으로 원형주실의 궁륭천장 등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것이다.

조각에 있어서 원숙한 조법과 사실적인 표현에서 완벽에 가까운 석가여래상, 10구의 얼굴과 전신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인왕상의 용맹, 사천왕상의 위엄, 주실내의 보살들의 유연 우아한 모습, 나한상들의 개성있는 표현 등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의 최고의 걸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주실내에 봉안돼 있는 굽타양식의 본존불 석가여래불은 고요하고 결가부좌한 모습, 가늘게 뜬 눈, 온화한 눈썹, 미간에 서려있는 슬기로움, 금방이라도 말할 듯한 입과, 코, 길게 늘어진 귀 등 그 모든 것이 내면에 깊은 숭고한 마음을 간직하도록 조성된 것으로 세계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미를 대표하고 있다.

불국사 역시 석굴암과 같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이 창건해 서기 774년 신라 혜공왕 때 완공했다.

토함산 서쪽 중턱의 경사진 곳에 자리한 불국사는 심오한 불교사상과 천재 예술가의 혼이 독특한 형태로 표현돼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는 기념비적인 예술품이다.

불국사 내부에 위치한 높이 8.2m의 석가탑은 각 부분의 비례와 전체의 균형이 알맞아 간결하고 장중한 멋이 있으며, 높이 10.4m의 다보탑은 정사각형 기단 위에 여러가지 정교하게 다듬은 석재를 목재건축처럼 짜맞췄다. 복잡하고 화려한 장엄미, 독특한 구조와 독창적인 표현법은 예술성이 매우 뛰어나다.

불국사는 사적·명승 제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내부에 다보탑(국보 제20호), 석가탑(국보 제21호),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호),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제22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비로자나불(국보 제26호)등 다수의 국보를 보유하고 있다.

경주역사유적지구
불교·신라왕경유적 보존
지정문화재도 52개 포함


◆경주역사유적지구

/news/photo/first/201409/img_142322_1.jpg"안압지22/news/photo/first/201409/img_142322_1.jpg"
경주 안압지의 야경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천년고도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있는 불교유적과 왕경(王京)유적이 잘 보존돼 있는 곳이다.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일본의 교토·나라의 역사유적과 비교하면 유적의 밀집도, 다양성 면에서 훨씬 뛰어난 유적으로 평가된다.

2000년 12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유산이 산재해 있는 종합역사지구다.

유적의 성격에 따라 모두 5개 지구로 나눠져 있는데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년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왕을 비롯한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능원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돼 있으며 52개의 지정문화재가 세계유산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경주 남산은 야외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신라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신라 건국설화에 나타나는 나정(蘿井), 신라왕조의 종말을 맞게 했던 포석정(鮑石亭)과 미륵곡 석불좌상, 배리 석불입상, 칠불암 마애석불 등 수많은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고 월성지구에는 신라왕궁이 자리하고 있던 월성, 신라 김씨왕조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鷄林), 신라통일기에 조영한 임해전지, 그리고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시설인 첨성대(瞻星臺)등이 있다.

대능원지구에는 신라왕, 왕비, 귀족 등 높은 신분계층의 무덤들이 있고 구획에 따라 황남리 고분군, 노동리 고분군, 노서리 고분군 등으로 부르고 있다. 무덤의 발굴조사에서 신라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금관, 천마도, 유리잔, 각종 토기 등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출토됐다.

황룡사지구에는 황룡사지와 분황사가 있으며, 황룡사는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됐으나 발굴을 통해 당시의 웅장했던 대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4만여점의 출토유물은 신라시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산성지구에는 서기 400년 이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명활산성이 있는데 신라의 축성술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영향을 끼쳤다.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조선시대 옛건물 잘 보존
풍수지리·민간놀이 이목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news/photo/first/201409/img_142322_1.jpg"하회마을전경004/news/photo/first/201409/img_142322_1.jpg"
안동의 역사와 생활을 그대로 간직한 하회마을 전경.
안동 하회마을은 조선 중기인 1600년대부터 풍산류씨들이 모여 주택과 서원 등을 건축하고 마을을 조성한 풍산류씨의 집성촌이다.

하회마을은 그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양반의 주거문화를 대표하는 양진당과 충효당, 북촌댁과 서원건축의 백미인 병산서원과 같은 옛 건축물들은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다. 하회마을은 주변 자연경관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낙동강의 넓은 강류가 마을 전체를 동·남·서 방향으로 감싸고 있어 풍수지리적으로 ‘연화부수형’ 또는 ‘태극형’이라는 명국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마을에는 크고 작은 양반집들과 노비들의 주택인 가랍집들, 그리고 원지정사와 병산서원과 같은 독특한 건축들이 자연친화적인 마을구성과 건축배치를 이루면서 산재해 있고, 별신굿과 별신굿때 쓰이던 하회탈, 부용대에서 벌어지는 줄불놀이 같은 독특한 민간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경주 양동마을은 경주에서 형상강을 따라 동북쪽으로 16㎞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된 민속마을이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 초기에 입향한 이래 지금까지 세거(世居)해온 월성손씨와 여강이씨가 양대문벌을 이루고 있다. 양동마을에는 월성손씨의 종가인 서백당과 여강이씨의 종가인 무첨당을 비롯해 관가정, 향단 등 조선시대 양반주택들과 하인들이 살았던 초가집들, 그리고 이향정, 심수정 등의 정자와 서당인 강학당 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옛 건물들이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민속과 함께 잘 보존되고 있다.

마을의 지세는 산등성이와 골짜기의 구성이 ‘勿’자형으로 이뤄져 있으며, 작은 산등성이와 골짜기에는 반가(班家)들이 비교적 높은 위치에 자리잡고 그 아래에는 가랍집들이 위치하고 있어 조선시대 신분제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공간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끝>

김상만기자 ksm@idaegu.co.kr
김정석기자 kjs@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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