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천국
우리들의 천국
  • 승인 2020.10.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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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경제학박사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나환자들의 수용 공간인 소록도를 중심으로 병원장과 병원 관계자들 그리고 나환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진정한 삶을 위한 공간 건설의 문제를 통해 우리 시대의 이상향 건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소록도 국립병원에 전직 군의관 출신 조백헌 대령이 병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원장은 이곳 소록도 나환자들을 위해 낙토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은 녹녹하지 않다. 부임 첫날부터 원생의 탈출 사고가 일어나고, 불신과 패배감에 젖어 있는 섬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조 원장은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번번이 의심스러운 눈초리와 불신의 벽에 부딪힌다. 이는 일제 강점기 시대 주정수를 비롯한 역대 원장들이 자신의 명예와 권력욕을 채우느라 원생들을 착취하고 그들만을 우상화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낙토 건설은 필연적으로 동상과 배반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 보건과장 이상욱은 야심차게 추진하려는 조백헌 원장의 시도를 막으려고 했지만, 조 원장은 주민들을 설득하여 간척 사업을 추진한다. 천신만고 끝에 나환자들의 노역으로 쌓은 둑이 바다위로 올라오는 듯 싶드니 태풍으로 인해 가라앉는다. 결국 간척공사 당시 벌어진 사건과 사고를 통해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나환자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를 지속하려 했고, 이런 목표를 위해 외부의 압력을 과장하고, 육지인들에 대한 그들의 콤플렉스와 분노까지 자극하며, 심지어 지나간 원한을 들추는 등의 대중 조작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 드러나면서 조백헌 원장은 환자들에게 위협을 당하면서 섬을 떠난다.

두 가지 의문점을 갖는다. 먼저, 원생들은 독재자 조백헌 원장을 증오하고 그를 쫓아냈으면서도 은근히 또 다른 독재자를 갈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른 하나는 왜 <우리들의 천국>이 아니라 <당신들의 천국>이라고 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독재를 비판하면서 그 반대로 전체주의에 열광하는 이유를 에릭 프롬은 그의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책임을 수반하는 자유 보다는 빅 브라더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무조건 따르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것은 자유의 이면에 도사린 개인의 불안과 고독의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는 고립적인 인간에게 신화와 우상이 필요하며, 현실로부터 상실되어 가는 자아를 찾는 길은 충분한 지식을 갖추고 객관성과 이성을 위한 자질을 발휘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 의문점은 그 섬을 떠난지 5년 뒤 민간인 신분으로 다시 돌아온 조백헌이 5년 전 이상욱이 자신에게 썼던 그 편지에서 찾을 수 있다. 이상욱은 조백헌이 만들려고 한 천국은 원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 아니라 원장만의 천국이었으며, 진정한 천국이란 그 천국을 선택하고 부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위로부터의 통치가 아닌 그들과 하나된 공동 운명 속에서만이 원장과 원생들은 비로소 서로를 신뢰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임을 이야기 해준다.

보건과장 이상욱이 조백헌의 낙토 건설을 반대한 이유인 동상과 배반의 아픈 기억이 우리 주변에서 시나브로 되살아나고 있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포장된 촛불로 집권한 정부는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비전을 제시하고 권력기관 개혁과 반부패, 사회전반적인 개혁을 위해 공정, 평등, 정의를 추구하고 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한때는 독재 타도와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외쳤던 그들이 또 다른 괴물로 등장해 비판과 토론에 재갈을 물리는 닫힌 사회로 질주해도 높은 지지율을 보내주는 전체주의의 악령 때문일 것이다. 비판과 토론이 자유롭지 못한 닫힌 사회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노예의 길로 질주하기 때문에 <당신들의 천국>이 될 수밖에 없다.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진정한 <우리들의 천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아마 열린사회가 되어야 한다. 열린사회는 다양한 사회와 정치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도출된 결과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를 말한다. 이처럼 열린사회에서는 토론과 비판을 통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며,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할 수 있다. <당신들의 천국>은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는 독재 권력의 모습과 이를 견제해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자유, 평등, 비판적 자기의식의 소중함이 그 어느 때 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시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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