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가르치는데 여러 사람이 듣지 않고 떠들어 댄다(一傅衆咻)
스승이 가르치는데 여러 사람이 듣지 않고 떠들어 댄다(一傅衆咻)
  • 승인 2022.01.27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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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교 교장
며칠 후면 모두가 좋아하는 설이다. 범띠의 해가 된다.

연암 박지원은 『호질(虎叱)』에서 ‘범은 너그럽고 걸출하다. 몸은 얼룩무늬이고 발자국도 크다. 동물이지만 자비로우며 효성스럽다. 또한 지혜롭고 어질며 씩씩하고도 날래다. 용맹하고 사납기로는 천하무적이다.’라고 하였다.

범이 사람을 먹으면 조화를 부린다고 한다. 그것이 창귀(
倀鬼)이다.

창귀는 세 종류가 있다. 한 사람을 먹으면 굴각귀신이 되고 범의 겨드랑이에 붙어산다. 굴각귀신이 범을 시켜 남의 집 부엌에서 솥전을 입으로 핥으면 집안 식구들은 배고픔을 못 참게 된다. 엄마는 밥하느라고 고달파진다.

두 사람을 먹으면 이올귀신이 되고 범의 광대뼈에 붙어산다. 이올귀신은 높은 산에 올라가서 사냥꾼의 움직임을 살피도록 한다. 사냥꾼이 설치해 놓은 함정, 올무, 화살의 상태를 파악하고 처리한다. 그래서 범은 높은 곳에 산다.

세 사람을 먹으면 육혼귀신이 되고 범의 턱에 붙어산다. 육혼귀신은 평소에 알던 친구들의 이름을 자꾸 부른다. 부르는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멀리 퍼져나간다. 범의 포효이다.

어는 날 범의 창귀가 세 귀신에게 명령을 내렸다.

굴각귀신은 “뿔도 없고 날지도 못하며 눈 위에 발자국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뒤통수에 꼬리가 있으며 꽁무니도 제대로 감추지 못하는 놈이 있습니다.”하고 아뢰었다. 아마 하인의 모습 인듯하여 범은 말이 없다.

이올귀신은 “동문에 의원이 있는데 좋은 약초랑 녹용을 먹어 살과 고기가 향기롭습니다. 또 서문에는 무당이 있는데, 매일 목욕재계하기 때문에 고기가 아주 깨끗합니다.”하고 아뢰었다.

범이 이 말을 듣고 “의원은 원래 의심스럽다. 무당은 속임수에는 명수다. 의원과 무당 때문에 죽은 사람이 몇 만 명이나 된다. 모두 금잠(金蠶, 독이 든 벌레)같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고 호통을 쳤다.

육혼귀신이 “인자하고 의롭고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걷는 발자국마다 예의가 뚝뚝 떨어지며 말끝마다 온 세상의 이치를 다 압니다. 자기 말은 모두 신뢰할 만 하다고 합니다. 인의예지신의 다섯 가지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하며 선비를 말하였다.

범이 “이 고기는 음양으로 맛이 잡되다. 오상(인의예지신)으로 순수하지 못하다. 여섯 가지 기운으로 맛이 잡탕이다.”하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세 귀신은 재성보상(財成輔相)이라 일컬으며 서로 공을 세우려고 떠들고 야단법석을 떤다. 재성보상은 좋은 상태가 되도록 미치지 못한 데를 보충한다는 뜻이다. 범은 세 귀신이 떠들어대는 소리에 정신이 아뜩하였다.

교사로 학생을 지도할 때 난감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선생님은 열과 성을 다하여 열심히 가르치는데 학생들이 딴전 피우거나 따라오지 않을 때이다. 의견을 모아서 진행하고자 할 때 학생들이 무조건 떠들어대는 경우이다. 간혹 학부모까지 반대하며 시끄럽다. 이것을 ‘일부중휴(一傅衆
)’라 한다.

맹자가 송나라의 재상 대불승에게 “초 나라의 대부가 아들에게 제 나라 말을 배우게 하려는데, 스승은 제 나라 사람이 좋을까요? 초 나라 사람이 좋을까요?”하고 물었다.

대불승은 “당연히 제 나라 사람이 낫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맹자는 “제 나라 스승이 초 나라 제자에게 제 나라 말을 가르치고 있는데, 주위에서 많은 초나라 사람들이 제 나라 스승에게 떠들어 댄다면 어떻습니까?

비록 매일 회초리로 제자를 때리며 제 나라 말을 가르치더라도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하고 설명을 하였다.

맹자는 덧붙여 “그대는 현자인 설거주(薛居州)를 송 나라의 왕궁에서 지내게 했습니다. 그런데 왕궁 안에는 모두 간신배들이 넘쳐 났습니다. 설거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현자인 설거주가 바른 말을 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듣지 않고 떠들어댄다면 어떻습니까?”라며 깨우침을 주었다.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지고 주사를 가까이 하면 붉어진다. 틈이 가거나 뒤틀린 활을 바로 잡아주는 도지개가 있다면 습관과 성질은 바로 잡아진다. 소리가 조화로우면 울림은 맑을 수밖에 없다. 형태가 똑발라야 그림자도 곧다.

설을 맞이하여 덕담으로는 범의 이야기를, 주변이 코로나와 대통령 선거 이야기로 시끄럽다면 ‘일부중휴(一傅衆
)’의 의미를 깨닫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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