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미술 이끈 장상의 화백 회고전 ‘빛과 넋’…이천월전미술관
한국 추상미술 이끈 장상의 화백 회고전 ‘빛과 넋’…이천월전미술관
  • 황인옥
  • 승인 2022.10.3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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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에서 태어나 월남한 작가
대작 ‘개성에서 서울까지’ 통해
오방색 중심 유연한 수묵 구현
“죽은 군인·피난지서 본 자연…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아
다양한 기억 토해내야만 했다”
비단·金 등 다양한 재료 사용
먹·채색 넘나들며 완벽 소화
60여년 걸친 작품세계 총망라
 
장상의 작 ‘개성에서 서울까지’.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제공
장상의 작 ‘개성에서 서울까지’.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제공

 

장상의작-2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장상의 작 ‘넋’. 대구미술관 제공

누구에게나 삶의 원형에 대한 기억은 존재한다. 삶의 구비마다 경험했던 특별한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순간들이 기억저장소에 차곡차곡 저장되고, 삶의 원형에 대한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새 생명을 얻는다. 누군가의 원형의 기억 총합은 개인의 역사이자 자화상이 된다.

1940년생인 장상의 작가에게는 유난히 삶의 원형에 대한 기억들이 굴곡지다. 태어난 개성에서의 평화로웠던 기억, 월남한 서울에서 겪은 6·25전쟁의 상흔, 4·19와 5·16 군사혁명의 혼란기, 70년대 민주화운동과 경제개발로 이어지는 격동의 한국사를 그는 온 몸으로 겪어냈다. 그 긴 시간의 아픈 경험들을 그가 유일하게 오롯한 주체성으로 발현할 있었던 것은 기억하는 행위 밖에 없었다. “그 질곡의 소용돌이가 세월이 흐르면서 저의 인생을 설명하는 원형의 기억이 됐어요.”

한국화의 대표적인 추상화 작가인 장상의 회고전 ‘빛과 넋: 장상의 60년’전이 이천시립월전미술관 1, 2, 3, 4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미술관의 ‘현대 미술가 조명 프로젝트’ 일환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에는 그의 작업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작품 40여점을 소개하고 있다. 먹과 채색, 종이와 비단을 비롯한 다양한 재료를 탁월한 조형의식으로 다루었던 작가의 60여년에 걸친 작품세계가 총망라된다.

◇ 삶의 원형에 대한 기억을 생명의 원형에 대한 그리움으로 승화

서울예고를 졸업한 그가 서울미대 동양화에 진학한 데는 그림을 너무 좋아한 이유도 작용했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절박함도 빠트릴 수 없는 배경이 됐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고, 나를 얘기하고 사는 것 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개성 송악산 및 호두나무 밭과 개성들에 지천으로 피었던 싱아들, 장포동의 도라지꽃, 후퇴하는 북한군에게 총 맞아 축은 필국이 오빠, 집 앞에서 눈이 마주쳤던 국군의 죽음, 피난지였던 오지에서 만났던 아름다웠던 자연 등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던 기억들을 어딘가에는 토해내야 했고, 그것이 시각적인 형상들로 드러났다.

그가 “한 개인이 평생 그 만큼 질곡진 역사를 겪기도 힘들 것”이라며 “그러나 한반도의 현대사는 그랬다”고 언급했다. “아름답거나 힘겨웠거나, 기뻤거나 슬펐던 기억들이 공존했는데, 세월이 지나도 그 기억들이 옅어지지가 않았어요. 그런 잠재된 기억들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마다 그림으로 그려야만 했어요.”

한국 현대사이자 인생의 여정을 그린 그의 그림은 한국인의 초상이자 그의 자화상이다.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자 한국 현대사에 대한 무의식적 환기를 그림 속에 표출됐기 때문이다. 때로는 담담하고, 때로는 처절했던 잠재의식 속 잠자던 사건들과 인물들이 화폭 위로 스멀스멀 되살아났고, 삶의 원형에 대한 기억들이 화폭에 쌓일수록 그의 그림은 자전적이 됐다.

그가 겪었던 삶의 경험들은 ‘빛’과 ‘넋’이라는 주제의식으로 구체화됐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아우르는 대주제였다. “그림을 통해 힘겨웠던 기억을 치유하려 했던 것 같아요.”

소용돌이치는 역사 속에서 그가 본 인간의 모습은 욕망과 불안, 광기와 고통의 연속이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장에서 그가 본능적으로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가치는 ‘평화’와 ‘안정’이었다. 그것이 무목적적이고 무의식적이고 자연발생적인 삶에 대한 향수로 이어졌다. 그 사유의 끝에 만난 것이 자연, 생명의 원형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가 원형으로서의 자연을 통해 나는 인간을 사유한다”고 전제하고, “인간을 통해 다시 자연으로 회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인간은 비록 수적으로 하나의 개체에 불과하지만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타인과 함께 시간을 견디어 가는 대지, 즉, 자연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장상의 작 '꽃비'.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장상의 작 '꽃비'. 이천시립월전미술관

 

◇ 한국 현대사와 함께 한 작가의 삶이 한국화의 확장과 함께 표현돼

역사적 경험과 삶의 원형들은 현대적인 도상들로 구체화됐다. 그가 기억의 편린들을 현현(顯現)해 내는 구체적인 방식은 비구상이었다. 이는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일찍부터 실험적인 작업들로 새로움을 추구한 태도로부터 왔다. 그의 평생에 걸친 실험정신은 쉼 없이 이어졌다. 비단이나 모시, 삼베가 한지를 대신했고, 가죽이나 황토, 금 등의 동양화에선 낯선 재료들의 사용에도 적극적이었다. 신문사진을 전사(轉寫)하고, 광고 전단지를 활용하기도 했다. 설치작업에도 마음을 활짝 열었다.

“삶을 관조하고 생명의 원형을 표현하는 것이 제게 주어진 과제였고, 그 과제에 더 밀착될 수 있다면 시각적인 변화는 충분히 할 만하다고 판단했어요.”

한국의 현대사나 개인의 체험들을 회화의 소재로 삼아 한국화의 확장을 치열하게 고민한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현상은 표현방식이다. 바로 수묵과 채색이다. 그는 동양 오행사상의 핵심인 오방색을 중심으로 하며, 수묵의 유연화를 지향했다.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한 정신이 함축적으로 드러난 작품은 ‘개성에서 서울까지’(1989)다. 채색이 중심을 잡고 수묵이 거드는 212x2100 대작이다. 일제강점기 개성에서 태어나 서울로 월남했지만 한국의 파란만장한 현대사에 휩쓸리고, 그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개성에서 서울까지’로 펼쳐졌다. 이 시기 그는 맏며느리, 주부의 역할까지 도맡으며 여류작가로 살아가는 어려움에 노출되기도 했다.

“‘개성에서 서울까지’를 그렸을 때가 성주 도씨 가문의 맏며느리, 아내, 엄마 역할을 하며 힘겨웠던 시절이었어요. 그 시절에 여류 화가로 산다는 것이 사회 통념상 쉽지 않았거든요. 그래서인지 붓만 들면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내는 무당이 됐던 것 같아요.”

1993년 작품 ‘백두산 신곡’ 역시 ‘개성에서 서울까지’처럼 대서사로 구축됐다. 단군신화를 토대로 하늘과 땅의 화해를 주제로 한 도올 김용옥의 희곡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이 작품 역시 245x1715㎝의 대작이다. 소용돌이치는 강렬한 원색으로 한국 고유의 춤사위를 연상하는 화면을 그린 작품으로, 80년대 수묵화에 경도됐던 한국 화단의 새로운 움직임을 대변했다.

“대작은 혼이 오롯이 들어가야 하는 작업이라 더 힘이 들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큰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속이 차지를 않았어요. 제 인생이, 우리나라 역사가 길바닥에 내려진 것 같았잖아요. 그런 경험과 상처들이 저의 마음을 허허롭게 했던 것 같아요.”

2000년대 이후에는 채색을 순화하고 다시 먹으로 되돌아왔다. 구성적으로는 정적인 가운데에 움직임이 내재되어 있는 ‘정중동적(靜中動的)’을 추구했다. 또한 때로는 먹만을 이용하여 작업하고, 때로는 채색만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등 재료 자체의 경계를 완전히 넘어서기도 했다. 이는 먹과 채색 두 가지 모두에 고루 역량을 집중시켜온 그 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시기의 대표작은 ‘꿈’ 연작과 ‘꽃비’ 연작, ‘꽃과 영혼’ 연작, ‘바람과 넋’ 연작, ‘하늘에 걸린 산’ 연작 등이었다.

◇ 먹에 대한 믿음과 함께 찾아온 희망에 대한 깨달음

최근에는 작품 ‘빛의 축’ 연작을 통해 먹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고 있다. 먹이 한결 짙어진 것. 먹의 농담으로 면 분할을 감행하고, 독특한 기하학적 구성미도 끌어들였다. 여기에 한 줄기 날카롭고 곧은 금색의 선을 절제된 미감으로 표현하며 긴장감을 더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빛의 축’은 고통의 시간으로 은유되는 밤과 어둠 사이로 결국 날이 밝아 해가 비추는 희망의 표현이라 할 수 있어요.”

질곡의 현대사를 건너왔지만 그는 스스로를 “불꽃같은 인생도, 목숨을 건 사랑도, 발을 굶은 경험도 없는 평범한 삶이었다”고 회상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억울하거나 분노할 일을 겪을 수밖에 없고, 그 역시 그런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고통’을 ‘희망’으로 승화해 낼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속내가 함축된 말이었다. 팔순을 넘기고 보니 자연스럽게 삶에서 깨달아지는 진리들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가 “억울함과 분노는 슬픔으로 변하고, 슬픈 과거는 애잔한 추억으로, 그 추억은 아름다움이 되며, 슬픔은 아름다움으로 승화한다”고 했다. “이제는 가슴의 불꽃을 내려놓고, 모든 어려움을 기쁨으로 승화시키고 싶어요. 그리하여 오늘도 열심을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시는 11월 27일까지.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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