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 독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달구벌 아침] 독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 승인 2023.04.05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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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 심리연구소 소장

흔히 앞뒤가 다른 두 얼굴의 사람을 우리는 '야누스' 같다고 한다. 야누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데 얼굴이 하나가 아닌 양면(兩面)의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어느 면의 얼굴을 보느냐에 따라 야누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달랐다. 야누스의 이야기가 사기꾼을 지칭할 때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원래 모두가 두 얼굴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친구 중 어느 분이 쓰신 글인데, 너무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분의 글을 일부 인용해보려 한다. 다음은 그분이 페이스북에 쓰신 글이다. (누군가 나에게 냉혈한이라 했고, 다른 누구는 매우 따듯하다 했다. 또 다른 누구는 나에게 칼 같고 불같다고 했고, 어느 누구는 내가 마음이 유약하고 너무 여리다 했고, 어느 누구는 내가 매우 독하다 했고, 또 누구는 한없이 정에 약하고 순수하다 했고, 또 다른 누구는 선수 중에 선수라 한다.)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 그분의 모습이 마치 내 모습 같았다. 내가 썼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내용이었다. 나 역시 그분과 같이 상반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은 나를 물러터졌다 했고, 누구는 나를 독해 빠졌다고 했다. 또 누구는 나를 신경질 한번 내지 않는 부드러운 사람이라 했고, 누구는 늘 화가 가득한 신경질적인 사람이라 말했다. 누구는 나를 보고 바보같이 손해만 본다 했고, 누구는 나를 보고 계산적이고 자기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누구는 나를 주도적이라 말했고, 누구는 나를 순종적이라 말했다. 이렇게 상반된 두 모습 모두 나의 모습이 맞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싹둑 잘라내지 못하는 편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에게 좋지 않은 행동을 하고,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때, 나는 그를 쉽사리 정리하지 못한다. 아니, '정리하지 않는다'가 더 맞는 표현이겠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안 좋은 영향을 줘도 한 번 더 믿어주는 편이고, 어떻게 해서든 그와의 관계를 이어가려는 편이다. 이런 나의 모습에 곁에서 나를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닐 것이다.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면 똑 부러지게 맺고 끊어야 하는데 계속 관계를 이어간다고 그들은 나를 물러 터졌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말대로 물러터진 사람이 맞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독한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의 관계 속에서 몇 번을 믿어주고 참아주고, 오랜 시간 기회를 주지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으면 나의 모습은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 된다. 즉, 독해진 모습을 바뀌게 된다. 그래서 그 모습 때문에 나를 독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둘 다 내 모습이 맞다.

이름에 순할 순(順) 자가 들어가서 이름대로 순한 모습도 내 모습이 맞고, 화가 가득한 모습도 내 모습이 맞다. 이렇게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서로 상반 되게 나를 기억하는 것은 모두 그들과의 상호작용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은 하나이지만 내가 만나는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기에 나는 다른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일종의 화학 작용과 비슷하다. 그래서 서로 상반된 모습으로 나를 경험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상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상대가 누군가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최근에도 경험한 적이 있다. 최근에 일 때문에 A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에 대해서 사전 정보가 없었던 나는 그를 먼저 알고 있던 사람에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의 물음에 지인은 A라는 사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알려줬다. 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욕심도 많고, 성격도 모가 났고, 고집도 세고 자기 마음대로라고 했다.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요약하자면 '가깝게 지내면 안 좋을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말의 요지였다. 이야기를 듣고, 나의 판단은 A를 '가깝게 지내지 말고 형식적 만남만 해야 할 사람'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A를 만나고, 알고 지내면서 내가 들었던 그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부드러운 모습과, 여린 모습을 많이 보게 되었다. 대화도 잘 통하고, 성격도 막히지 않고 시원시원했다. A는 이렇게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가 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모두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다른 재료와 혼합하여 독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반대로 사람을 살리는 약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나 또한 상대와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은 모두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다만 나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서로 상호작용 잘해서 사람을 죽이는 독보다는 사람을 살리는 약으로 더 많이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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