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사과꽃 향기
[달구벌아침] 사과꽃 향기
  • 승인 2023.04.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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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봄이 절정을 이룰 때 벚꽃이 바람에, 비에 화르르 떨어진다. 도시 공원, 가로수로 심어진 벚꽃이 지고나면 벚꽃을 닮았지만 한복을 곱게 입은 것 같은 사과꽃이 농촌에서, 과수원에서 핀다.

남편의 고향은 청송이다. 청송은 사과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결혼하고 나서 시어른들이 직접 키운 청송사과를 먹어보고 나서 알았다. 영천에서 노귀재를 넘고 나서 청송이 있다. 노귀재는 지금은 그 아래로 터널을 뚫어 평지로 달리지만, 몇 년전까지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렸다. S자가 몇 굽이를 올라갔다. 아래는 낭떠러지처럼 아득했지만, 멀리 바라보면 산 경치가 좋았다. 깊고 높은 산 속에 올라온 느낌이었다. 무섭지만 않다면, 위험하지만 않다면 그 길을 계속 다녀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밤에, 눈오는 겨울에, 빙판길로 위험할 수 있고, 멀미가 날 수도 있는 그 길 대신 아래 새로 난 터널길은 편하고 빠르고 안전하다.

그 노귀재를 넘으면 청송이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컸고, 대구보다 항상 몇도가 낮았다. 한 여름에 대구가 30도가 넘어 찜통일 때에도 청송의 밤은 시원할 때가 많았다. 그 기온차로 사과가 단단하고 꿀이 생겨 아삭하고 달았다. 청송사과를 먹은 이후로 청송사과 예찬론자가 되었다. 말로만 들었는데 진짜 맛있다며 광고를 했다. 요즘은 다른 고장 사과를 먹고 있는데 역시 맛있고 달다.

사과가 유명한 청송으로 가면 사과꽃이 한창 피었다. 흰색과 분홍색이 어울어진 꽃은 한복은 입은 여인같다. 곱고 여린 꽃잎이 멀리서 볼 때보다 가까이서 보면 더욱 예쁘다. 무리지어 핀 꽃들이 뿜어내는 은은한 사과꽃 향기는 이미 사과를 품고 있는 것 같다.

그윽한 사과꽃향기가 좋지만 꽃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사과꽃이 목적이 아니라 사과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여쁘고 향기좋은 사과꽃을 딸 수 밖에 없다. 사과꽃 따는 것은 중요한 농사 일이다. 크고 탐스런 사과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꽃만 남기고 따야 한다. 피어있는 꽃을 그대로 두면 작은 사과가 포도알처럼 달릴 것이다.

홍희는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사과꽃을 따러 간 적이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홍희 고향도 사과과수원이 많다. 사과꽃을 따야하는 철이면 엄마는 돈을 벌러 동네 과수원 사과꽃을 따러 갔다.

그 날은 다른 동네 과수원이었는데, 홍희도 돈을 벌고 싶었던지 따라 갔다. 키가 작아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한 가지에 띄엄띄엄 꽃을 남기고 땄다. 예쁜 꽃이 땅으로 떨어져 밭이 사과꽃으로 그득했다. 오전이 길었다.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아팠다. 돈을 벌러 왔기 때문에 아픈 내색을 하지 못했다. 어린 아이가 와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으리라고 주인이 생각했을 터인데 힘들다고 칭얼거리면 들어주기는커녕 집에 가라고 할 것이 뻔했다. 엄마는 묵묵히 말없이 일만 했다. 원래 말이 많지 않았지만 남의 집 농사일을 하면서, 그것도 어린 딸을 돈 벌게 해주려고 같이 데려와서인지 더욱 말없이 일만 했다

드디어 점심시간이었다. 밥을 먹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와 나란히 강둑에 앉았다. 과수원이 바로 강가에 있었다. 흐르는 강물을 같이 바라봤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린 딸은 새로운 경험이 재미있었고, 예쁜 사과꽃 밭에서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사과꽃 향기가 바람따라 코속으로 들어올 때는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 그 날 행복했어. 엄마와 함께 사과꽃을 따고 사과꽃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좋았어. 엄마 기억나? 같이 사과꽃향기를 맡으러 가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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