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어떤 위로
[달구벌아침] 어떤 위로
  • 승인 2023.06.0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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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시'의 'ㅅ'은 '사람인' 자와 닮아있다.
장미처럼, 계절이 지나도 식을 줄 모르는 열정하나로 늦깎이 공부를 하는 모임이 있다. 장옥관 교수님(우리는 선생님을 일명 장모님이라 부른다)을 모시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시를 읽고 씀으로써 살아갈 길을 모색한다. 매 주 숙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관찰일기다. 수행자의 자세로 누구하나 빠짐없이 성실이 정진한다.
몇 주 전, 생이 아득하던 날, 숙제로 제출한 관찰일기에 달린 댓글이 식어가는 삶의 열정에 불을 붙였다. 길 끝, 막다른 곳에 주저앉아 맥 놓고 있는 나에게 손 내밀어 일으켜 주었다. 내가 내민 아득함보다 문우들의 댓글이 더 아득하게 전해 오던.
내일을 미리 알려주는 표지판이란 인생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앞만 보고 달려온 길에서 길을 잃었다. '길없음'을 만났다. 내비게이션도 전혀 모르는 길이라는 듯 시침을 떼고 있던 차였다. 길을 잃을까 봐 누군가 써 놓은 교통 표지판에서 따스함이 배어온다. 혹시나 길을 잘못 들어 사고라도 날까 봐 돌아가라는 온기 가득한 마음을 새겨 놓았다. 다정하게도.
벽을 뚫고 나갈 수도 없고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하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인 오른쪽으론 갈 수 없다고 하니 선택의 여지라곤 없다. 나갈 길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 끝이 어딘지 모르는 생소한 왼쪽 길뿐.
살다 보면 가끔 길을 잃을 때가 있다. 막힌 길 앞에서 망연자실 주저앉아 막막해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좌회전으로 방향을 튼다. '경로를 다시 탐색합니다.' 아비가 말썽꾸러기 자식을 타이르듯 내비게이션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연신 잔소리해댄다.
새로운 길에서 색다른 길을 만났다. '신동재'다. 굴곡진 인생길처럼 굽이굽이 고비를 넘나든다. 꽃들의 축제가 한창이다. 아카시아와 이팝나무, 사이사이 찔레꽃이 길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들앉아 사열하듯 피어있다. 결혼식을 올리던 날 첫발을 내딛는 신부의 부케 같은 꽃잎 세례를 우리 머리 위로 흩뿌려 준다. 천사처럼 날개를 펼친 민들레 홀씨가 허공을 향해 날아오른다, 하늘로. 마이웨이를 꿈꾸며.
추녹샘; 생이 아득한 날 '신동재'를 갔군요. 아카시아 군락지로 유명하죠. 왜관에서 대처 대구로 나올 때, 꼭 거쳐야 했던 신동재. 구불구불, 구불 길을 돌아가는 완행버스, 떨어지지 않으려고 꼭 잡은 손, 한참 뒤에 떼보면 나던 손잡이 쇳내, 곧은 새 길이 나면서 잊힌 신동재, 아카시아 축제로 다시 북적대는 고갯길!
모모샘; 저는 2년 전에 '신동재'를 처음 가봤어요. 그 굽이굽이 돌아가던 곡선의 길과 그 넘쳐나던 아카시아 향기는 잊을 수 없어요. 사람도 지역도 이름을 부르면 떠오르는 저마다의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금선생; 인자 들어와 자세하게 살펴봅니다. 제가 하는 일도 스트레스 장난이 아니다보니 어제 하루는 우째 지났는지, 이제야 우리 식구들의 관찰일기를 조용히 봅니다. 문샘 언제나 씩씩하게 굽이굽이 넘어가시길….
윤슈샘; 마카다 살아내느라 욕보는 시간들, 저도 지난겨울에 반죽다가 살아남았네요. 부처님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그 고비만 잘 넘기면 또 잠시 슬픔이 없는 15초가 주어지니 인생은 그런 반복이겠지요. 함께 밀고 당기고 가입시더.
늦숙샘; 신동재가 신통하지요? 거기 기대고 선 사람들 많으니 우리, 신통하게 잘 견디고 살아요.
예빈샘; 신동재 아카시아 나무 아래에 자리 깔고 맥주 마시던 생각이 나요. 너무 오래된 일. 오래된 아카시아나무 구불구불한 길, 그리고 포장마차들. 신동재 하니까 다 떠오르네요. 잘 읽고 갑니다.
추녹(총무님); 인생길 어디에도 없는 이정표. 앞만 보고 달려온 길에서 길을 잃었다. 내비게이션도 전혀 모르는 길이라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다. '길없음' 돌아가시오. 누군가 써 놓은 교통 표지판 혹시나 길을 잘못 들어 사고라도 날까. 그 마음 따뜻하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오른쪽으론 갈 수 없다고 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 끝이 어딘지 모르는 왼쪽 길뿐. '경로를 다시 탐색합니다.' 색다른 길에 접어든다. 신동재다. 마이웨이를 꿈꾸며 아득히!
정랑 샘으로부터 카톡이 날아든다. '내일 간식입니다.' 여행지에 가서조차도 문우들이 생각났던지 수업시간에 나눠 먹을 간식을 챙겼다는 메시지다. 거기까지 가서도 여기 생각이 났었나 보다. 동행은 그런 것일까. 부표처럼, 언제 어디서든 그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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