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구시대 유물
[대구논단] 구시대 유물
  • 승인 2023.06.2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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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하 변호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19.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저에 대한 정치 수사에 대한 불체포권리를 포기하겠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소환하면 100번이라도 응하겠다.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검찰의 무도함을 밝히겠다”라고 밝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대표의 이날 불체포특권의 포기 발언은 사전에 배포한 연설문에 없던 발언이라고 한다.

사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통령 선거 운동 당시 “불체포특권을 제한해야 한다. 100% 동의할 뿐 아니라 불체포특권 같은 것은 10년 넘도록 먼지 털 듯이 탈탈 털린 이재명 같은 깨끗한 정치인에게는 전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주장하면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한 바 있다.

당시 이재명 대표의 이러한 약속은 그동안 불체포특권이 본래의 목적과는 동떨어진 채 비리 의원의 방어를 위해서 사용되었다는 점을 의식해서 자신은 그들과 다르며 어떠한 혐의에도 결백하다는 점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거전략일 수도 있었겠지만 조금은 신선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 2월 대장동 개발에 관여한 민간 개발업자들이 거액의 이득을 취하도록 편의를 봐주고 측근들과 함께 이득을 취한 혐의와 대기업들의 관련 민원을 해결하는 조건으로 FC 성남에 거액을 지급하도록 한 혐의 등으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약속과는 달리 자신이 당 대표로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전력이 있다.

따라서 자신이 한 약속을 손바닥처럼 뒤집었던 이 대표가 이번에 다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하자, 여당인 국민의 힘은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 쇼를 하고 있다”라고 비판하면서 그 진의를 의심하고 있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검찰이 재차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경우 이 대표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실제로 불체포특권을 포기할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한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후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 사건과 관련하여 자신을 조여오는 검찰 수사에 대비해서 위급한 순간에 자신을 보호해 줄 방어막이 없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지금까지 이 대표는 대장동을 비롯하여 자신에게 제기된 어떠한 혐의도 인정하지 않고 이러한 검찰 수사는 자신을 죽이려는 윤석열 정부의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대표 자신이 스스로 밝혔듯이 승소율이 높았던 능력 있는 법조인이므로 그동안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검찰 수사의 최종목표는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이 대표가 자신의 주장처럼 결백하고, 이번 수사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무리한 기획 수사라면 그 역풍은 고스란히 검찰과 윤석열 정부가 받을 것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를 겁낼 일도, 신경 쓸 일도 없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이 대표가 당 내외의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계양(을)’ 재보궐 선거 출마를 감행한 것은 자신을 보호해 줄 방어막, 즉,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라는 방탄조끼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많은 국민은 생각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이 대표가 위 특권의 수혜를 입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 헌법 제44조 제1항은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국회의원에 대한 불체포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에 대해서는 지금과 같이 행정 권력이 약화하고, 비리 국회의원의 보호막으로 작동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특권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과 우리나라와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수사와 재판 이유로 국회의원의 체포를 허용하면 반대진영의 의원을 탄압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선출되지 않는 권력인 검찰과 사법부의 횡포로부터 의회를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불체포특권이 과거 민주주의가 자리 잡히기 전인 군부 독재 시절에는 독재 권력의 탄압에 맞서는 국회의원의 자유로운 발언과 토론을 보장한다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최근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행사한 불체포특권 사례에서 보듯이 이제는 부패정치인의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한 가림막으로 전락하면서 그 역사적 소명은 다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금처럼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의회 권력이 강화된 시대에는 다수당 의원의 비리를 보호하는 수단으로만 기능하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구시대 유물이다.

국민의 힘에서는 이번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선언 이후 소속의원을 대상으로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6월 23일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에서도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했던 건지 “민주당 전원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서약서를 제출하고, 향후 체포안 가결을 당론 채택할 것을 당에 요구한다”라고 밝혔으니, 이 대표는 제일 먼저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서를 제출해서 자신이 한 약속을 지켜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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