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편집증 환자의 괴이한 내면을 따라가다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편집증 환자의 괴이한 내면을 따라가다
  • 김민주
  • 승인 2023.07.0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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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호러 장면 거의 없이
‘보’의 불안한 심리 전면 부각
부모·자녀 불편한 감정 터치
‘유전’ 아리 에스터 3번째 장편
호아킨 피닉스 눈빛 연기 일품
영화-보이즈어프레이드2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보 이즈 어프레이드’(Beau is afraid)에는 제목 그대로 두려움을 겪는 주인공 보(호아킨 피닉스)가 있다. 머리가 하얗게 샌, 불안과 편집증에 시달리는 40대 중반 보의 눈은 초조함으로 가득 찼다. 가글을 먹고 위암을 걱정하고, 자신이 틀지도 않은 음악 때문에 옆집에서 그를 밤새도록 괴롭혀도 그냥 참고 만다.

오랜만에 엄마 모나(패티 루폰)를 만나러 가야 하는 그날, 하필 보는 열쇠와 캐리어를 잃어버린다. 자신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는 엄마에게 어렵게 말을 꺼낸 보는 냉담한 그녀의 반응에 전전긍긍한다. 무조건 엄마를 만나러 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 보가 가까스로 여정에 나서지만 일은 점점 꼬인다.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호러 영화계의 젊은 거장 아리 에스터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이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첫 장편 영화 ‘유전’으로 핏줄로 묶여 벗어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저주받은 가족 수난사를 호러 장르를 섞어 그려내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두 번째 작품 ‘미드소마’로 ‘유전’을 뛰어넘는 공포 걸작이라는 극찬과 함께 ‘현대 호러 마스터’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실력파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불안한 가족, 연인 관계에서 오는 비극을 극대화해 기존 영화 문법을 비틀며 현대 호러의 흐름을 바꾼 뛰어난 작품으로 전 세계 영화 팬을 매료시켰다.

이번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는 편집증 증세를 보이는 보를 둘러싸고 익숙한 공포들이 집합한다. ‘비행기를 놓치면 어떡하지, 문을 잠깐 열어둔 사이 누가 집에 들어오면 어떡하지, 뉴스에 나오는 연쇄살인범이 내 눈앞에 나타나면 어떡하지?’ 영화는 고약하게도 보의 걱정을 모두 현실로 만든다. 전통적인 호러 장면은 거의 없지만 오히려 익숙한 공포가 스크린에 펼쳐지며 관객의 마음을 졸이게 만든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주인공 보의 심리를 따라가는 완벽한 체험형 영화다. 보의 복잡한 심리 세계를 그의 시선으로 뒤따라가는 만큼 다소 불친절하고 난해해 보인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즉각적으로 머리로 분석하고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일단 보를 따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더 쉽게 완주할 수 있다.

모나가 보를 출산하는 과정을 아기인 보의 시점으로 그려내며 출발선을 끊은 것을 시작으로, 철저하게 편집증 환자인 보의 시선으로 그려낸 영화는 이야기를 감상하는 관객이 보가 된 것처럼 뒤죽박죽인 세계를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현실과 환상이 엉켜있는 보의 세계는 터무니없고 섬뜩하다. 그가 살고 있는 시궁창의 풍경과 존재할 리 없는 환상은 한곳에 뒤섞이며 현실과 망상의 구분선을 흐려놓는다. 이에 더해지는 잔잔한 배경 음악 아래로 들리는 비명과 아우성은 기묘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렇다고 해서 극 중 보가 느끼는 모든 공포가 마냥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보이지는 않는데, 이는 극 중에서 다루고 있는 엄마 모나와 아들 보의 관계에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모나는 아들을 집착적으로 사랑하고, 그런 엄마의 통제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가 느끼는 죄책감, 두려움과 공포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영향력’에 대해 고민한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포인트다.

모나의 모성애로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는가 하면, 편집증으로 하루하루 어렵게 지내는 보에겐 미안할 만큼의 짙은 연민이 생긴다.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누군가의 부모가 된 이라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에 특히나 더 공감할 수 있다. 영화는 부모에게 버림받는다는 두려움, 머리가 새하얗게 샌 노인이 되더라도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무력감을 호러 영화라는 장르에 알맞게 표현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영화의 또 하나 강력한 힘은 호아킨 피닉스의 눈에서 발생한다. 불안에 떠는 두 눈동자, 금방이라도 톡 하고 눈물을 떨어트릴 것 같은 그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보의 내면과 동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의 대표 필모그래피 ‘조커’와 같은 배우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등장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세계, 모든 것이 기괴한 현실처럼 느껴지는 것은 편집증인 보가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을 완벽하게 관객에게 전달해 낸 호아킨 피닉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산한 분위기와 내용에 애초에 진입 장벽이 높을뿐더러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지만, 아리 에스터의 전작을 재밌게 봤거나 혹은 ‘호러 마스터’라고 자부하는 관객이라면, 그 속에 담긴 주제와 생각거리, 어쩌면 곳곳에 숨겨져 있을 유머까지 발견할 수 있는 영화다. 여름 바캉스 시즌 귀신이 출몰하는 호러 영화보다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선택하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는 이유다.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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