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경고
꿀벌의 경고
  • 여인호
  • 승인 2023.07.1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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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중순 남산둘레길을 직원들과 산책했다. 맥문동이 피기 시작했고 나리꽃과 비비추, 접시꽃이 뒤따르고 있었다. 한옥 담벼락을 따라 채송화가 키재기를 하고 능소화가 돌담 위에 앉아나팔을 불고 있었다.

‘채송화는 그렇다 쳐도 접시꽃, 능소화는 한여름 뙤약볕에 해바라기와 같이 피는 꽃인데 벌써 피다니... ’

이상기온으로 개나리가 가을에 피기도 하는데 일찍 꽃피는 게 뭐 대수냐 하겠지만 만개한 꽃에 꿀벌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선덕여왕이 벌나비가 날아들지 않는다고 말한 모란조차도 벌, 나비가 부지런히 날아들었는데 남산의 꽃에는 꿀벌이 보이지 않았다. 꿀벌 대신 난생처음 본 러브버그라는 벌레가 득실거렸다. 파리과 우단털파리속의 이 벌레는 검은 암수가 붙어서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러브버그라고 부르지만 이름과 달리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서울특별시에서 러브버그는 꿀벌과 같이 꽃가루받이를 하고 꽃속의 꿀을 섭취하는 유익한 곤충이라고 홍보에 나섰다. 아직 무슨 이유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러브버그가 있는 꽃에는 꿀벌이 접근하지 못한다고 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꿀벌은 교실까지 찾아오곤 했다. 꿀벌이 교실에 들어왔다고 잡아달라고 교무실로 전화하는 선생님도 있었고 방충망 설치를 교육청에 요구하는 학부모, 학생들도 있었다. 교실까지 나타나던 꿀벌이 몇 해 전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2022년 봄 우리나라 꿀벌이 대량으로 사라졌다. 전년도보다 2배 증가한 140억 마리 이상의 꿀벌이 사라진 후 2023년 봄에는 꿀통을 빌리러 다니는 과수농가가 생겼다고 한다.

꿀벌의 집단 실종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미국 등에서 발생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4년 대통령 직속으로 전문가 자문회의를 가졌고 미생물기업인 시드는 꿀벌이 사라진 후의 식단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사과, 복숭아 등의 과일과 오이, 토마토 같은 채소뿐만 아니라 소의 사료가 줄어들어 소고기와 유제품이 식탁에서 사라졌고 가격이 상승한 민물고기 한토막이 단백질로 올라왔다.

꿀벌이 사라진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이상기후의 탓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두 해 우리나라 겨울은 평년보다 따뜻하였다. 따뜻한 날씨에 계절을 착각하여 꽃이 피자 꿀벌이 화분채집을 하러 꿀통 밖으로 나왔다가 꽃을 못 찾거나 급변한 추위 등으로 꿀통으로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브버그가 서울시에 대량 출현한 것도 이상기후와 관련이 있다. 멕시코만과 접한 미국 최남단 플로리다지역을 러브버그가 휩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러브버그는 고온다습한 경우에 출몰한다. 남한에서 비교적 위도가 높은 서울의 유월 날씨가 멕시코 연안의 플로리다만큼 뜨겁다는 것이다.

뜨거워진 한반도는 육지뿐만 아니라 바다도 마찬가지다. 유월 동해에 죠스가 나타났다. 서해에서 어쩌다가 몇 년에 한 번 나타나는 아열대성 어종인 상어가 올 유월에 벌써 동해에 수차례 출몰하였다. 여름철 수온이 서해보다 더 낮았던 동해에 상어가 나타난 것은 동해 수온이 그만큼 상승했다는 것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이 발간한 2022 수산분야 기후변화 영향 및 연구에서 2021년 7월 동해의 수온은 전 지구 해역 중 평년 대비 수온이 가장 높은 해역 중 하나라고 한다.

과거 동해는 한류와 난류의 영향으로 황금 어장이 형성되어 명태, 오징어가 주로 잡히고 서해는 조기, 남해는 멸치가 대표 어종이라고 학교에서 가르쳤다. 수온상승으로 인해 황금어장이 북으로 올라가면서 명태는 이제 동해에서 보기가 힘들고 동해에서 잡히던 오징어가 서해에서 많이 잡힌다. 연해 서식 어종을 구분하던 지리시험의 단골문제는 이제 과거 이야기가 되었고 곧 상어가 동해 대표 어종이 될지도 모를 일이라 상상하니 끔찍하다.

작가 베르나르는 그의 신작 ‘꿀벌의 예언’에서 2053년 꿀벌의 실종으로 세계 3차 대전이 발생하여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꿀벌이 실종돼가는 현실을 볼 때 2053년 꿀벌로 인한 인류멸망은 단지 소설이라고만 여겨서는 안 될 일이다. 정확히 2053년이 아니더라도 6번째 지구 멸망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 아이들로부터 빌린 것이다. 아이들로부터 빌린 자연을 빚더미로 돌려줄 수는 없다. 회복할 수 있는 만큼의 자연은 물려주도록 어른들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계절 따라 꽃피는 학교 화단에 다시 꿀벌들이 윙윙 날아다니고 벌에 놀란 아이들이 달아나는 모습이 회복되기를 소망해본다.

 
 


손병철<대구교육청 장학관·전국시도교육감협회회 정책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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