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여론과 떼쓰기 문화
[대구논단] 여론과 떼쓰기 문화
  • 승인 2023.07.1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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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 지방자치연구소장
엄마와 같이 길을 가던 아이가 길거리에서 딩굴면서 떼를 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떼를 쓰는 행동에는 타협이 없고 고집만이 있다. 한국인들의 나쁜 특성 중 하나는 떼쓰기 문화에 젖어있는 것이다. 떼를 쓰면 무슨 문제든지 해결된다는 생각 때문에 나라가 조용할 때가 없다. 노조를 비롯하여 사회 곳곳 각종 단체가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떼문화 때문이다.

극성적으로 떼문화가 심한 곳은 국회다. 여·야 불문하고 말로 맞받아치는 솜씨는 실로 정치기술자 답다. 국회 안에서는 무슨 발언을 해도 괜찮다는 특권의식이 한몫하고 있다. 저질 발언을 일삼으면서 자기 위상을 돋보이려고 애쓰는 경우를 목도하면서 처절한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정치가 직업인 그들은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여론과 떼쓰기 문화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골탕 먹이면서 페이크 정치를 일삼는다. 가짜 뉴스를 예사로 만들고 그것을 정쟁의 무기로 삼아 개인적·정당적 투쟁을 계속한다.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이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하지 않고 일상적 떼쓰기를 하면서 소일하는 것을 보고 속상해한다. 300명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행태가 엇비슷하지만 유난히 야당의원들의 언행이 귀에 거슬리는 경우를 많이 접한다.

지금 한국은 독특한 여론정치에 매여있다. 여론(public opinion)은 사회 전체의 이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하여 공중이 표현하는 집합적 의견을 말한다. 여론은 정책형성에 중요한 투입 요소로서 특히 세련된 국민여론은 국가의 정책형성에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여론은 여론형성자(opinion leader) 또는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정책에 연결된다. 정당 역시 국민여론을 정책에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매개체다. 과거의 여론형성과정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면이 있었다. 국회의원이 출신 지역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였다. 언론은 사회적 감시견(watch dog)의 사명을 가지고 사실문제에 접근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정당은 정치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면을 보여 주었고 국민들이 정당의 정책을 이해하는데 기여한바 있었다. 아울러 국회의원은 품위유지를 위하여 조신하면서 지역민과의 접촉점을 넓히려고 애썼다.

지금은 어떤가. 다각적인 체제 발전과 더불어 국가, 사회 전체가 큰 변화를 초래하면서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각양각색으로 작용하고 있고 사회전체를 보는 국민들의 의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이분법적 논리가 사회 전반에 걸쳐 횡행함으로써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떼문화가 형성되어 국가형성 내지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하고 있다. 개인 또는 체제가 자기중심, 집단중심으로 결속되면서 통섭의 담을 더 높이고 있다. 국가체제의 중심인 정치는 정치인의 개인적 욕구와 정당이 한통속이 되어 정권 쟁취를 위한 일에 매진하게 되었고 국회는 국가정책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여·야 상호 간 비방으로 점철되어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는 형세가 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권위주의에 빠져 행정부에 대한 질의내용이 조잡·저질스럽고 한건주의로 치닫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객관성이 생명인 언론은 언론 다원주의에 매몰되어 정치적 편 가르기에 동조하는 모양새를 보여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여론의 형성에 언론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들은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언론 역시 이분적인 이념화의 영향을 받고 떼문화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아심을 가질 때가 더러 있다.

우리 사회가 이념의 이원화에 고착된 것은 개인이나 집단의 주관성 부족도 있겠지만 여론조작으로 인한 상황판단에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조직이 강한 체제 유지를 위해 여론형성 매체를 통하여 국민들에게 옳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거짓 정보와 떼쓰기로 국민들을 속이고 혼란에 빠뜨린 지난 경험을 논하지 않더라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문제는 여론과 떼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문제는 떼를 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과학을 근거로 설득하려고 했지만 수용이 어려운 것은 정치적 이념을 떼문화로 승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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