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비'...바비가 말한다 “자기 자신이 되세요”
영화 '바비'...바비가 말한다 “자기 자신이 되세요”
  • 김민주
  • 승인 2023.07.20 21: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만 권력을 갖는 ‘바비랜드’
완벽한 가부장 사회 ‘현실세계’
성별권력 불균형 유쾌하게 지적
핑크로 물든 세상 보는 즐거움
‘여성 인권 후퇴시켜’ 오명 벗고
2023년에 걸맞게 현대적 진화
영화'바비'4
‘바비’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1959년 미국 장난감 박람회에 ‘바비’ 인형이 처음 등장했다. 마텔사가 출시한 바비는 수영복을 입고, 굽 높은 샌들과 나비 모양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나타났다. 팔다리가 통통한 3등신 아기 인형이 여자아이들의 옆자리를 꿰차고 있던 때, 옷과 액세서리를 착용할 수 있는 9등신 글래머 인형이 완구 시장을 흔들었다.

이후 다양한 직업의 바비 인형이 출시됐다. 교사, 트럭 운전사, 의사, 우주비행사, 대통령까지.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마텔의 창립자인 ‘루스 핸들러’는 소녀들이 성인의 형상을 한 인형을 갖고 놀면서 자신의 미래를 꿈꿀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바비는 소녀들에게 도달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몸을 선망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바비가 주로 금발 백인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이후 다양한 인종, 몸을 가진 바비 인형이 출시됐다. 하지만 여전히 ‘바비’ 하면 금발, 백인, 글래머인 최초의 바비가 떠오를 것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바비’는 바비를 둘러싼 복잡한 맥락을 유쾌하게 그려냈다. 바비와 켄, 앨런 등 ‘마텔’의 인형들은 바비랜드에 살고 있다. 전형적인 바비(마고 로비)는 언제나 행복하다. 여자들의 파티 속에서 매일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바비'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바비'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바비는 뭐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 법원에서 바비들이 판결하고, 의회도 바비들이 차지했으며 노벨 문학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도 바비만이 호명된다. 바비의 남자친구 ‘켄’(라이언 고슬링)은 그냥 켄이다. 켄은 직업도 없이 해변을 떠돌며 바비의 남자친구로만 의미를 갖는다. 바비들은 자신들 덕분에 현실 세계의 여성들 또한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떠올린다. 이후 바비의 하루는 점점 인간적으로 변한다. 입 냄새가 나고, 아침 식사인 식빵이 까맣게 타고, 점프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제일 중요한 건 바비의 시그니처인 발이 하이힐 모양대로 허공에 떠있지 않고 땅에 내려앉는다. 완벽한 바비의 삶에 균열이 생겼다.

'바비'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바비'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바비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얼월드(현실 세계)로 향한다. 그곳에서 자신을 가지고 노는 여자아이를 만나야 한다. 바비의 남자친구 켄은 이 여정에 따라나선다.

현실 세계로 넘어간 바비는 여성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바비랜드와 다른 세상이 낯설다. 어떤 기억 속에서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는 ‘사샤’(아리아나 그린블랫)를 찾아가지만 이미 5살 때 인형놀이를 그만두고 사춘기를 맞이한 그는 바비 인형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던진다.

그곳에서 바비가 보고 겪게 된 건 ‘현실’이다. 바비는 자신을 둘러싼 시선을 통해 현실의 여성이 겪는 시선과 감정을 알게 된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나 자신을 의식해야 하고, 때때로 폭력적인 시선 앞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

반면 켄은 화폐에 남자 얼굴만 가득하다는 사실에 놀라고, 대통령, 대법관, 회사 임원 등이 남성이라는 사실에 감동한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배운 가부장제를 바비보다 한발 앞서 바비랜드에 전파시키면서 바비랜드를 ‘켄덤’(Kendom)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한다.

영화 속 바비랜드와 현실 세계는 명확하게 여성과 남성의 권력관계로 미러링해서 비유된다. 바비와 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두 세계를 오가면서 두 캐릭터의 계급이 전복되는 모습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이자 주요 웃음 코드로 작용한다.

거윅 감독은 어느 한쪽에 권력관계가 쏠린 상황에서 다른 한쪽이 느낄 박탈감을 관객이 자연스레 느끼게끔 한다. 동시에 성별 권력의 불균형이 현실에 얼마나 만연한지를 꼬집는다. 이를 모나지 않게, 때로는 웃음이 새어 나오도록 경쾌하게 그려냈다.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하고 단순하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든 애쓰지 않아도 존재할 이유와 가치는 충분하다. 냉혹한 현실에 우울해하던 바비는 물론, 바비가 봐줄 때만 멋진 날을 보낼 수 있던 켄 역시 자아를 회복하는 순간을 맞는다. 기울어있던 바비의 하이힐이 단화처럼 평평해질 때, 두 자아는 비로소 동등해진 다는 것을 감독은 영화 내내 깨닫게 한다.

볼거리도 화려하다. 바비의 시그니처 컬러인 핑크로 온통 물든 바비랜드의 비주얼은 당장이라도 소꿉놀이를 하고 싶게 만든다. 바비 하우스, 해변, 법정 등 거대한 공간도 미니어처 느낌을 내 인형이 살고 있는 공간이라는 디테일을 확실히 잡았다.

특히 ‘전형적인 바비’를 연기한 마고 로비는 걸음걸이부터 손동작, 미소까지 확실하게 인형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섬세한 연기를 선보였다. 영화 중간 바비가 자신의 외모를 폄하하며 우울해하자 ‘제작진 여러분, 이런 대사하는 역할로 마고 로비는 캐스팅하는 건 아니죠’라고 불쑥 등장하는 더빙에 웃음이 나듯 마고 로비는 ‘전형적인 바비’ 비주얼 그 자체를 완벽히 소화했다.

과거의 바비 인형은 언제부턴가 여성 인권을 후퇴하게 만들었다고 비판받지만, 마고 로비의 ‘바비’는 2023년에 걸맞게 진화됐다. 영화는 다시 한번 바비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작품을 만나게 될 전 세계 여성들에게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라는 마법의 주문을 안겨줄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바비는 평범해도 괜찮아!’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