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외톨이는 죽은 나무가 아니다
[박명호 경영칼럼] 외톨이는 죽은 나무가 아니다
  • 승인 2023.07.3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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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을 9천860원으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근로자는 물론이고 기업들 특히 소상공인의 반발 역시 매우 크다. 실질임금이 삭감되었다는 근로자 측의 주장과 소상공인들의 형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결과라는 사용자의 주장이 팽팽하다. 편의점을 비롯한 음식점, 카페 등을 운영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최저임금 인상은 결국 근로자의 일자리를 대폭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일자리 문제가 더욱 어려워지는 가운데 구직활동을 하지도 않고 그냥 ‘쉬는’ 청년들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있는 20대∼30대 청년이 무려 61만 명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약 45만 명은 부모와 함께 살면서 생계를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다. 20대에서 그냥 ‘쉬는’ 사람 가운데 약 75% 이상, 30대에서도 58% 가량이다. 이들은 적성과 능력에 알맞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근로의욕을 상실하고 그 결과 경제적 독립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결국 사회적 적응이 점점 더 어려워져 외톨이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의 숫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직장을 구해서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가족과의 대화조차 단절한 채 자기 방에서 홀로 살아간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34만 명에서 2021년에는 무려 54만 명가량으로 급증했다. 전체 청년 인구의 5%에 해당된다. 지난해 출생아 25만 명의 두 배가 넘는 숫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고립청년은 ‘인간관계가 잘 되지 않아서’, ‘학업의 중단으로’ 등을 이유로 들기도 했으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취업이 잘 되지 않아서’였다. 은둔형 외톨이가 되게 한 결정적 요인은 바로 일자리 문제였다.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이미 1990년대부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일본에서 15세∼65세 인구 가운데 무려 146만 명 정도가 ‘히키코모리’인 것으로 추산했다. 더 큰 문제는 중장년층에서도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80대 부모가 50대 자녀를 부양하는 이른바 ‘8050문제’가 이제는 90대 초고령 부모가 60대 노인 자녀를 부양하는 ‘9060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당사자와 그 가족 문제를 넘어서서 각종 범죄로 이어져 중대한 사회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관계는 삶의 중심이다. 진실 되고 소중한 관계가 없다면 우리의 정신과 몸은 쇠퇴한다. 따라서 고립은 사회와의 단절이고, 삶과 영혼을 서서히 갉아먹는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권일용과 고나무는 “고립된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른다”라고 말한다. 고립을 느끼는 이들은 친밀감을 형성하려는 강한 욕구를 지닌다. 하지만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이 없는데다 사회적 시스템조차 미비하면 고립에서 유발되는 분노가 사적이고 폭력적 방식으로 표출된다. 최근 신림동 흉기 난동사건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뒤늦게나마 정부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보건복지부가 17일부터 이달 말까지 고립·은둔 청년 5천명을 대상으로 전국단위의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이 조사에서 고립·은둔 청년으로 판정된 청년들을 대상으로 본 조사를 시행할 계획이다. 정책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고립·은둔 청년들의 삶과 요구를 심도 있게 파악하여 지원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려는 것이다.

고립 문제의 해결에는 정부의 노력 못지않게 민간 차원의 노력도 매우 소중하다. 민관의 공동 노력이 있어야 은둔형 외톨이들이 고립과 은둔에서 깨어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다지 삭막하거나 몰인정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고립 청년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인간적 연대와 소속감에 대한 그들의 갈망을 해소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고립청년들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그들과의 관계에 정성을 쏟으며 진정한 우정을 쌓아 나가야 한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며 살펴야 한다. 청년이 행복해야 대한민국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고립감에 젖어있는 외톨이들을 소생케 하려면 무엇보다도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올바른 관점이 최우선이다. 천상병 시인의 시 ‘나무’가 그것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죽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죽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죽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죽은 나무가 아니다”

외톨이들은 결코 죽은 나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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