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은 좋은 글쓰기의 기본
관찰은 좋은 글쓰기의 기본
  • 여인호
  • 승인 2023.08.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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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안도현 시인의 무식한 놈이라는 시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시인은 자신에 대해 무식하다고 하지만 쑥부쟁이, 구절초 이름을 알고 구분하려는 것은 어느 정도 식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 주위에는 쑥부쟁이와 구절초처럼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비슷한 꽃이 가끔 있다.

3월이면 노랗게 피어나는 대표적인 봄꽃 개나리가 있고 비슷한 꽃 영춘화가 있다. 꽃색깔도 비슷하고 꽃의 생김새도 비슷하지만 영춘화는 꽃잎 5개, 개나리는 4개이다. 노란 봄꽃 중에 흔히 착각하는 나무에는 산수유와 생강나무도 있다. 꽃대가 있는 산수유는 산에 있을 것 같지만 대다수가 평지에 심어져 있고 오히려 생강나무가 산에 심어져 있다. 김유정의 문학작품 ‘동백꽃’에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라는 표현 속의 노란 동백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붉은 동백꽃이 아니다. 김유정이 살았던 춘천지방에는 생강나무를 동백꽃이라고 부르니 이때 노란 동백꽃은 노란 생강나무꽃을 일컫는 것이다.

안도현 시인처럼 유명한 시인이 식물 구분을 못한다고 무식한 놈이라고 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시인들은 식물을 제대로 관찰하려 노력했다.

황동규 시인은 달개비 속에 코끼리 한 마리가 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정두리 시인은 자운영꽃을 일제히 흰 띠를 두르고 스스로 다가오는 첫 눈이라 표현하였다. 시인의 묘사는 사물이나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으로 관찰을 중요시한다. 안도현 시인은 허리를 낮추거나 무릎을 구부려 꽃잎을 들여다볼 것을 말했고 풀꽃의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했다. 시인의 관찰력은 남달랐다.

이처럼 아이들에게 자세히 보는 관찰력을 길러 주는 것은 과학학습 뿐만 아니라 좋은 글을 쓰게 하는 밑걸음이 된다. 어떻게 하면 관찰력을 길러 줄 수 있을까?

과거 여름방학숙제 단골메뉴인 식물채집처럼 아이들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 아이들이 꽃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방법 중 하나로 생김새와 관련된 꽃이름부터 알게 하면 좋다.

나팔 같은 나팔꽃, 초롱처럼 생겨서 초롱꽃, 방울같은 방울꽃 등 꽃의 생김새에 따라 이름이 지어진 꽃들은 아이들이 그 이름을 쉽게 기억한다.

뭐니 뭐니해도 직접 식물을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과서에는 학년마다 배워야 할 식물이 있다. 그 식물들을 교실에서 스스로 재배해보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다. 봄이 되면 교실 뒷자리나 창가에 화분을 두고 꽃씨를 심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자기 식물을 관찰을 했는데 싹이 올라올 때 아이들은 가장 놀라워한다. 누구 것은 싹이 났는데 내 것은 나지 않았다고 실망하기도 하고 흙 속이 궁금해 파보는 아이도 있었다.

꽃이 피고 꽃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는 것을 직접 보면서 자연 단원의 내용을 저절로 알게 된다. 그럴 때 방금 식물을 보면서 있었던 일을 글로 쓰게 했다. 싹(꽃)을 보면서 오감으로 관찰한 것. 그때 든 생각이나 느낌, 식물에게 해주고 싶은 말 등 내가 기르고 있는 식물과의 대화는 글을 풍성하게 한다. 자신과 관련된 것이 없는 상태에서 꽃에 대해 글을 쓰라고 하면 꽃은 예쁘다와 같은 형식적인 글밖에 쓰지 못한다.

학교 화단도 아주 좋은 식물원이 될 수 있다. 봄이면 민들레 홀씨도 불어보고 가을이면 부채처럼 생긴 은행잎을 날려보기도 하면 좋다. 대나무 잎같이 한쪽이 표쪽한 나뭇잎으로 멀리 날리기를 시합도 해 봄직하다. 아이들은 홀씨와 나뭇잎의 특징을 놀이로 알게 된다.

허리를 낮추고 무릎을 굽혀 쑥부쟁이 구절초를 구별하려는 아이들이 많아지면 풀 한포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고 꽃 속에서 코끼리를 찾는 훌륭한 시인이 많이 배출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손병철<대구교육청 장학관·전국시도교육감협회회 정책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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