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공동묘지를 넘어서
[달구벌아침] 공동묘지를 넘어서
  • 승인 2023.08.20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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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시골에서는 마을과 마을의 개념이 산이나 강으로 단절되어 있는 공간이다. 억지로 동네를 구분 지은 것이 아니라, 가까이 살고 왕래하는 사람들의 집들이 무리를 지은 공간이 마을이다. 지금 도시에서는 도로를 건너면 다른 동네인 곳이 많다. 예전에는 뚝뚝 떨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집이 많이 들어서서 네거리를 기준으로 네 개의 동이 있고, 구도 세 개로 갈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혼자 살기보다는 사람과 가까이에서 함께 살아가야 외롭지 않고, 힘들 때 도움이 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힘을 모아 해결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늘 무리를 지어 살았다. 처음 이 동네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 동네는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고, 이 동네가 이 세상의 전부였던 어린 아이였던 홍희는 학교를 가면서 다른 동네도 있고,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학교로 가는 길은 초등학생의 걸음 걸이로는 30분 정도 거리였다. 어른들은 20분 정도면 충분히 가고 남았다. 학교에서 5분안에 있는 마을을 제외하면 가장 가까운 동네였다. 원래는 홍희가 살던 동네가 먼저 생겼고, 그 다음에 학교가 있는 동네가 생겼나보다. 홍희가 사는 곳이 1리, 학교가 있는 동네가 2리였다. 학교, 면사무소, 경찰소, 시장이 있는 동네가 2리이고 홍희 사는 곳이 1리인 것에 자부심이 있었다. 번화가보다 먼저 생긴 유서깊은 동네고 원조니까. 2리는 신작로가 나면서 교통이 좋아 중심시가 되었던 것 같다.

얕은 산을 하나 넘어서면 2리가 나오고 학교가 나온다. 문제는 얕은 산이다. 길도 오르막이 있어 낑낑 거리며 올라가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냥 보통의 산이 아니라 공동묘지였기 때문이다. 1리에서 2리로 넘어가는 산은 온통 묘지 투성이였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바로 옆에도 묘지가 있었다. 산 가운데를 사람들이 지나다니도록 길을 만들었던 흔적이다. 포크레인같은 것으로 파서 길을 낸 것처럼 묘지와 묘지 끝이 툭 잘려있었다. 조금만 더 파면 관이 보일 것 같은 아슬아슬함을 느꼈다. 그 곳이 공동묘지 중에도 정중앙이여서 왼쪽에도 군데군데 묘지가 있고, 오른쪽도 마찬가지였다.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이 즐비한 그 곳을 통과해야만 했다. 쉽게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특히 아이들은 혼자서 그 길을 건너 가기 더욱 어려웠다. 한 동네에서 다른 동네로 가자면 치러야 하는 의식이었다.

아이들은 혼자서는 그 길을 가기가 무서워 항상 둘 이상 같이 다녔다. 홍희는 상희를 기다려 같이 갔다. 같이 가면 무섭지가 않았다. 보이는 것은 똑같이 보였지만 공포감은 없었다. 해가 환했고 든든한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공동묘지 구석 쯤에 밭이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어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때면 훨씬 안심이 되었다. 봄에는 둥근 산소에 잡초가 파랗게 올라오고 제비꽃이 피기도 하고 할미꽃이 고개를 숙이고 피어있기도 했다. 씀바귀가 자라 노란꽃이 피어있기도 했다. 무덤과 무덤 사이에 보라색 꽃이 피기도 햇고, 찔레꽃이 무리를 지어 피기도 했다. 삭막하고 공포스러운 무덤에 핀 꽃도 무척이나 예뻤다. 오히려 무덤 위에 핀 꽃이라 더욱 예뻤을지도 모른다. 밝게 예쁘기보다 슬픔이 밀려나오도록 만드는 예쁘게 피었다. 슬픔이라는 아름 다운 감정이 그 때부터 생겨났을지도 모르겠다.

동네 안에서만 있을 때는 몰랐던 죽은이들의 집. 학교를 가면서 그들을 보았고 그들을 느꼈다. 삶은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함께 한다는 것을 공동묘지를 지나며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을 지나면서 느꼈던 무서움만큼 죽음이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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