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 조용하며 강한 사람
[달구벌 아침] 조용하며 강한 사람
  • 승인 2023.08.2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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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소리 없이 강하다' 이 말은 1990년대 후반에 대우자동차에서 새로 생산해 낸 '레간자'라는 자동차의 선전 문구다. 말 하나 잘 만든 덕분에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사용되었고, 평상시 사람들의 대화 속에도 자주 사용되었다. '소리 없이 강하다'라는 문장 하나로 대우자동차는 신차를 확실히 대중들에게 어필했다. 그 차는 선전 문구처럼 엔진소리도 조용하였고, 차의 힘도 좋고, 스피드도 괜찮았던 것 같다. 한 마디로 요란하기만 하고, 실속 없는 차가 아니라, 조용하면서 실속 있는 차라는 뜻이었다. 이 전략이 유효하였는지, 당시에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많이 알려졌고, 더 불어 그 차의 인기도 많았고 판매도 많이 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옛말에 '빈 깡통이 요란하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조금 살아 보니 옛 어른들이 하신 말 중에 틀린 말이 거의 없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말, 곱씹을수록 정말 맞는 말 같다. 안에 든 것이 없는 빈 깡통은 밖에서 막대기로 두드리면 얼마나 시끄러운지 모른다. 그래서 빈 깡통을 버리지 않고 논에서 새를 쫓는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어있는 빈 깡통과는 달리 통 안에 내용물이 가득 차 있으면 소리가 시끄럽지가 않았다.
세상의 지혜는 자연현상, 혹은 사물을 통해서 배우는 경우가 많다. 빈 깡통도 사람에게 적용해보면 사람을 이해하기가 훨씬 쉽다. 사람도 깡통처럼 속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시끄럽지가 않다. 그 모습은 잔잔하고 고요한 호수의 모습을 닮았고, 바람 없는 깊은 숲속의 모습과 닮았다. 참으로 고요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고요하다 해서 멈춰 있다거나, 힘이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들은 깊은 내공을 갖추고 있어서 고요한 것이다. 굳이 자신의 힘을 드러내어 자랑하지 않아도 두려움이 없다. 그 모습은 마치 목표물을 앞에 두고 방아쇠를 당기기 위한 때를 기다리는 사냥꾼의 모습과 같다. 그들은 조용하면서 강한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이런 고요하면서 강한 사람이 좋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약한 사람은 시끄러운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약함이 들킬까 두려운 까닭이고, 상대가 자신을 혹여나 얕잡아 보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기인한 결과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과한 포장을 한다. 소리도 더 크게 내고, 행동도 오버하는 경우가 많다. 형사가 범인을 잡을 때, 과한 행동이나 말을 보고 범인을 추리해낸다고 한다. 숨겨야 할 것이 많아서 불안해지면 평상시와 다른 행동들을 많이 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대체로 조용하기보다는 과한 제스처를 사용하여 자신의 죄를 숨기려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불안이 심할수록 사람은 말이 많아진다. '덕지덕지' 많은 것들을 가져다 붙인다. 명함에도 그렇다. 정말 대가들은 딱 자기를 대표할 수 있는 역할 지위 하나만 명함에 적는다. 가령 의사 김oo. 작곡가 정oo. 자기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를 넣는다. 하지만 뭔가가 자신이 부족하고 약하다 싶은 사람은 자신의 역할들을 마구잡이로 가져다 붙이기 바쁘다. 사실 내가 그랬다. 처음 강의 세계로 뛰어들었을 때, 가진 것도 없고 하는 것도 너무 없어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그 불안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 나는 명함에 수많은 것들을 집어넣었다. 앞면에도 채우고 뒷면에 자격증과 역할들을 채워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짓이었다.
강한 사람은 고요하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신의 능력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때를 기다린다. 하지만 약한 사람은 시끄럽다. 마피아 게임을 해보면 평상시는 조용하던 사람이 갑자기 말수가 많아지는 경우가 있다. 십중팔구 마피아다. 자신이 마피아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 그럴 때 사람들은 의심한다. '어 너 갑자기 말이 많아졌는데'라며 마피아라고 의심한다. 형사들도 그래서 말이 많고 변명을 많이 하고 이야기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그 사람 속에 불안이 많다는 걸 알고 그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끄러운 사람은 대다수가 약한 사람이다. 그 사람들의 시끄러움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신의 불안을 숨기기 위한 시끄러움이다. 시끄러움을 통해서 타인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말할 기회를 자기가 주도함으로써 불안을 해소시키는 행동이다.
시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도록 나를 살펴야겠다. 속부터 가득 채워서 조용하면서 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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