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한국의 맛’ 그리고 못난이 농산물
[박명호 경영칼럼] ‘한국의 맛’ 그리고 못난이 농산물
  • 승인 2023.08.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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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올여름 집중 호우와 폭염으로 농산물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채소, 과일 사기가 겁난다는 주부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작황이 엉망이라 제대로 된 상품을 건지기가 어려운 농민들의 시름도 깊어만 간다. 정부의 비상한 노력에도 농산물가격의 안정이나 농가 수입의 보장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농산물은 수요·공급의 미세한 변화에도 가격 변동이 매우 크다. 공급이 과잉되면 물량 조절이 어려워서 폐기되는 농산물이 부지기수다. 더구나 규격품 이하의 소위 B품은 헐값에도 팔 수 없어서 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따라서 농산물의 마케팅과 판로 확보가 농민의 안정적 소득에 결정적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농산물마케팅에서 두 가지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했다. 첫째는 유통업계가 지역의 생산 농가와 협업해서 지역 특산물을 대표 상품으로 개발하는 ‘로코노미(Loconomy)’ 마케팅이다. 로코노미란 지역(Local)과 경제(Economy)의 합성어다. 지역의 농산물 유통을 돕기 위한 새로운 개념의 상생 마케팅이다. 선두 주자는 맥도날드의 ‘한국의 맛’ 프로젝트다. 2021년 ‘창녕 갈릭 버거’에 이어서 보성의 녹차, 진도의 대파 등 국내산 식재료를 활용한 신제품을 출시하여 크게 성공했다. 메가MGC커피, 롯데웰푸드, 이디야커피, 굽네치킨, 스타벅스도 지역 상생을 기치로 내세우며 로코노미 마케팅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로코노미 마케팅의 성공 비결은 소비자, 지역 농가, 그리고 기업의 니즈가 골고루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기업은 지역과의 상생으로 제품 인지도와 긍정적인 기업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게 되었다. 소비자들의 ‘가치소비’ 트렌드도 로코노미 식품의 구매에 한몫했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고, 더욱이 경제적 약자인 농가를 돕는 것이 지역 사랑의 실천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판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 크게 반긴다. 이렇듯 로코노미 마케팅은 소비자와 지역 농가, 기업 모두가 상생하는 유통 방안으로 인식되면서 향후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농산물마케팅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유통행태는 ‘못난이’ 농산물의 활발한 거래다. 단순히 B급이라는 이유로 소비되지 않았던 농산물을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활발히 구매하게 된 것이다. 맛과 영양 등 품질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농산물의 외모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버려졌던 B급 농산물이 이제는 오히려 소비자가 선호하는 상품이 되었다. 이것은 지구환경을 위해 농산물이 버려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새로운 소비행태로 여겨지면서 지구와 개인을 위한 더 나은 소비 습관으로 정착하고 있다.

못난이 농산물은 어글리어스, 예스어스, 언밸런스마켓 등 온라인 기반의 유통 서비스에서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소비가 급증했다. 최근에는 롯데마트, 편의점 CU, 마켓컬리 등도 못난이 채소와 과일을 적극 취급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농가와 상생하면서도 소비자가 장바구니물가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다양한 상생 시리즈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이전에 버려졌던 못난이 농산물이 다양한 판로를 확보하게 되면서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고 농가에는 더 많은 수익이 돌아가게 되었다.

이제 못난이 농산물의 구매는 더 이상 일회성으로 끝나는 소비행태가 아니다. 주기적 구매로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경험이 늘어나고 인식도 변화되고 있다. 가격 메리트나 농가 돕기 등과 같은 종전의 시혜적 관점에서 식품의 본질인 맛과 건강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본질적 소비로 진보하고 있다. 못난이 농산물의 부상은 저렴하며, 품질도 좋고, 트렌디하며, 건강한 삶도 놓치지 않으려는 새로운 개념의 소비가 앞으로도 꾸준히 나타날 청신호로 보인다.

역사상 농산물마케팅의 원조는 아마도 프리드리히 대왕의 감자 마케팅일 것이다. 맛도 없고 향도 없어 아예 ‘줘도 안 먹는 농산물’이었던 감자를 ‘안 먹고는 못 배기는 작물’로 바꾸었다. 대왕의 특별한 감자 마케팅전략은 백성들의 관심과 공감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정원사에게 감자를 재배하라는 비밀 명령을 내리고 도둑을 막는 것처럼 보이려고 감자밭에 무장 감시 요원을 배치해 백성들의 궁금증을 키웠다. 결국 백성들은 이 비밀의 밭에 큰 관심을 보였고 왕의 밭에 자라는 식물을 서리해 자기들 땅에 몰래 심었다. 백성들이 감자를 재배하도록 만들기 위한 왕의 목적은 달성되고, 이로써 유럽의 식량문제가 해결되었다.

버나뎃 지와는 『그들이 시장을 뒤흔든 단 한 가지 이유』에서 마케팅은 “인간이 느끼는 방식을 바꾸는 것, 결국 어떤 물건에 애정을 주게 만들거나 자기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다”라고 했다. 농산물마케팅은 단순히 먹거리를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다. 상생의 농산물마케팅은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의미 곧, 감정과 애정의 행위로 이해해야 비로소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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