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우 칼럼] 오펜하이머, 그리고 정율성과 홍범도
[윤덕우 칼럼] 오펜하이머, 그리고 정율성과 홍범도
  • 승인 2023.09.04 20: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덕우 주필 겸 편집국장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펜하이머 전기를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광복절인 지난달 15일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3주차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누적 관객수가 277만여명에 이르고 있다. 그는 핵무기를 비밀리에 만드는 맨하튼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대단한 인물이다. 하지만 청문회 당시 오펜하이머에 대한 미국의 평가는 냉철했다. 그는 공산주의자와의 연관을 의심받아 1954년 정부의 보안심사에서 핵무기 비밀 정보에 대한 접근권한을 박탈당했다. 이 일로 그는 비밀문서를 취급하는 모든 공직에서 사임했다.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를 지지했다고 단정하기는 쉽지않다. 그는 비밀 청문회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충성심과 애국심을 강조했으나 과거 행적들 때문에 결국 보안심사를 통과하는데는 실패했다. 과거에 공산주의자들과 접촉했고, 소련 스파이로 의심받는 동료들을 보호했다는 혐의였다. 오펜하이머 청문회는 1954년 4월12일부터 5월 6일까지 미국 원자력위원회(AEC)가 안보신뢰성과 관련, 오펜하이머의 보안 승인을 취소할 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열린 비밀청문회였다.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도 고쳐 매지 마라’는 속담도 있다. 자신도 청문회에서 밝혔듯이 오펜하이머는 공산당에 가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와 가까운 많은 주변 인물들이 공산주의나 좌익 사상에 경도됐다. 그의 친동생인 프랭크 오펜하이머는 미국 공산당 당원에 가입했던 적이 있었다. 결혼 전부터 알고 지내던 그의 오랜 연인인 진 태트록도 미국 공산당 소속이었다. 아내였던 키티 역시 공산당원이었다. 그의 절친한 친구도 미국 공산당원이었다. 오펜하이머도 여러 좌파운동에 참여하고 스페인 내전의 공화국군에 대한 모금운동에 참여했다고 청문회에서 밝히기도 했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특정 행동에 대해서 “내가 천치였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1945년 7월 미국이 핵실험에 성공한 불과 4년 뒤인 19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자 미 당국은 핵무기 개발 정보 유출 가능성을 크게 의심했다. 당시 트루만 미국 대통령은 소련이 핵무기를 개발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소련과의 군비경쟁이 치열했고, 좌파운동이 성행했던 대공황시절인 점을 감안하면 당시 미 정보당국의 민감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미 정보 당국으로서도 오펜하이머와 주변인물들을 충분히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정율성과 홍범도의 과거 행적을 두고 뜨거운 이념 논쟁이 일고 있다. 정율성은 1914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중국에 귀화한 인물로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조선인민군행진곡’과 ‘팔로군행진곡(현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를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광복 후에는 월북했다. 6·25 전쟁 때 중공군 135만 여명이 투입됐다. 광주시는 6년 전부터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진행, 올 연말·연초에 준공식을 앞두고 있다.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가 문재인 전 대통령 때 설치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교외로 이전하기로 결정하자 정치권 안팎에서 역사·이념 전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지난 31일 육사는 “홍범도 장군 흉상은 육사의 정체성과 독립투사로서의 예우를 동시에 고려해 육사 외 독립운동 업적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적절한 장소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과거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주의 활동 이력이 문제다.

여야는 지난 달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광주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과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을 둘러싼 거센 공방을 벌였다. 여당은 정율성이 ‘김일성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인물’이라고 규정하면서 해당 공원 조성 사업은 우리 역사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한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원 활동 이력을 지적하면서 육사 내 흉상을 두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반면 야당은 이러한 정부·여당의 행태를 두고 색깔론을 덧씌우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며 “우리 당정만이라도 국가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에 대해 확고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 2일 새벽 장거리 전략순항미사일을 발사하며 전술핵공격 가상발사훈련을 진행했다고 3일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적들의 침략전쟁 기도를 억제할 수 있는 행동 의지와 능력을 철저히 시위한 데 대한 해당 군사훈련 명령을 하달했다”며 전날 새벽 “적들에게 실질적인 핵위기에 대해 경고하기 위한 전술핵 공격 가상 발사훈련”이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금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