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달빛이 비치는 공동묘지
[달구벌아침] 달빛이 비치는 공동묘지
  • 승인 2023.09.1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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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홍희는 낮에 혼자서는 지나가기 어려운 공동묘지를 밤에 지나간 적이 있다. 물론 혼자가 아니라, 엄마 아버지와 함께였다. 대구에 있는 큰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큰아버지는 범어동에 살았다. 텔레비전에 '범어동 할아버지'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자신의 큰아버지가 주인공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TV속 범어동 할아버지는 인자하고 자상했고 지혜로웠다. 홍희의 큰아버지도 인자하게 생겼고 말씀도 조곤조곤 하셔서 지혜로워보였다.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큰 소리를 내는 법이 없었고, 이래라저래라 명령조로 말하지도 않았다.

큰아버지는 할머니의 첫째 아들이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넷째아들이자 아들로서는 막내다. 둘째 아들은 6.25때 전사했다고 했다. 셋째 아들은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다.

할머니는 큰아버지를 대구에 사는 할아버지의 사촌 형에게 양자를 보냈다. 셋째 아들은 같은 동네에 사는 할아버지의 형에게 양자를 보냈다. 원래 형들에게 양자를 보낼 때는 나이가 더 많은 아들을 보낸다고 했다. 어쨌든 할머니의 아들은 4명이지만 다들 나가 살고 할머니는 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그래서 고모들도 홍희집에 왔다. 자신들의 엄마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친오빠들의 집에도 자주 방문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자주 가지는 않을 것이다.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족보 때문에 어색한 관계가 된 것인지 홍희가 큰아버지라고 부르며 집을 방문할 때마다 친하지 않은 어떤 거리감을 느꼈다. 막 안기지 않고, 마음이 막 가지도 않는 그것. 혈육이지만 친형이 아닌 관계. 그렇다고 남도 아닌 관계에서 오는 마구 친할 수 없는 그 느낌. 고모들이 오면 그냥 푸근하게 다가왔고, 말도 편하게 했지만 아버지는 큰아버지 앞에서는 다소곳했다. 그랬기에 홍희도 조용히 있었다. 묻는 말만 대답했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엄마와 큰엄마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점심때 쯤 가서 이른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밤이 되었다. 공동묘지를 지나 갈 생각에 미리부터 겁을 먹었지만 한숨 쉬듯 머리를 기대고 있는 아버지를 보며 아무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와 아버지는 늘 마음속에 어떤 마음이 있고, 머릿속에도 어떤 생각이 가득한 것 같았는데도 늘 두 분이서는 서로 밖으로 내보이지 않았다. 서로에게 털어놓고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고함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무얼하겠는가? 말한다고 해결 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말을 해서 좋을 것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서로에게 말을 해도 공감하고 위로가 되지 못해서일까? 남자로서 여자에게 자기 속마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위신이 서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엄마가 이야기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일까? 엄마와 아버지는 농사일에 관한 말만 주고받았고, 가끔 자식 걱정을 함께 했을 뿐 대화다운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공동묘지가 시작되자 엄마와 아버지의 중간에서 걸었다. 보조를 맞추느라 바삐 걸었다. 길이 울퉁불퉁한 곳이 있어 넘어질까 신경이 쓰였다. 어둠 속에서 길을 걸으면 땅이 푹푹 꺼지는 것 같다. 발이 둥둥 떠나니는 것 같다. 엄마의 옷을 잡고 넘어지지 않으려 애쓴다. 드디어 공동묘지다. 저 무덤 중 큰아버지를 데려간 할아버지가 있고, 둘째큰아버지를 데려간 할아버지가 있을 것이다. 자식을 낳지 못해 대를 잇기 위해 할머니는 자신이 낳은 아들을 주어야만 했고, 아버지는 친형을 둘이나 잃었다.

밤에는 도깨비불이 날아다닌다고 한다. 소복을입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귀신이 날아다닌다고도 했다. 보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엄마와 아버지와 함께 공동묘지를 지날 때는 보름달이 떳고, 소복입은 귀신도 보이지 않았고, 도깨비 불도 없었다. 둥근 보름달 아래 반달같은 묘지가 은은한 달빛을 받고 있었다. 아버지와 엄마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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