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디자인 기행] 땅속까지도 아름다운, 제주 올레...이 아름다운 풍경을 지켜낼 고민
[일상 속 디자인 기행] 땅속까지도 아름다운, 제주 올레...이 아름다운 풍경을 지켜낼 고민
  • 류지희
  • 승인 2023.09.2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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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랑말 모양의 이정표 ‘간세’
천연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제작
간세 매립하기 힘든 곳엔 ‘리본끈’
자연 보존하고 여행자 안정성 확보
편의시설·숙박시설 생겨나며 훼손
자연 앞 겸손해지는 디자인 찾아야
올레길
낮과 밤에도 길을 안내해주는 간세와 리본끈이 길라잡이가 되고, 완주를 인증하는 스탬프가 의미있는 올레길의 시그니처 관광상품이 된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역할을 다하는 간결하고 착한 소재의 안내판 디자인,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조화시켜 참여하게 하는 올레의 경험디자인은 지극히 자연친화적이다.

지난해 4월, 노란 유채꽃이 가장 절정으로 아름다울 때 제주에 머물러 있었다. ‘안녕, 제주’. 그리고 얼마 전 9월, 다시 찾은 제주는 여전히 기분좋은 설레임과 여유있는 모습으로 반겨주었다. 필자가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제주로 날아온 이유는 단 하나다. ‘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마 제주를 오고가는 많은 관광객들이 그러할 것이다.

대학교 공공디자인 수업시간이었다. 필자는 제주를 주제로 관광상품개발 프로젝트를 연구진행한 적이 있다. 10여년 전 그때, 처음 알게된 곳이 바로 “제주 올레길”이다. 당시는 욜로와 트레킹여행 등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제주 올레길 걷기 붐이 한창일 때였다. 한 해에도 25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명실공실한 대한민국 대표 여행코스로 사랑받는 제주섬, 특히 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올레길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알려주었을 뿐 아니라, 발로 걷는 도보여행의 매력을 전파해 전국의 도보여행 열풍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당시에는 1코스~13코스가 전부였던 제주올레길이 이제는 26코스까지 생겨났으니 올레길에 대한 전세계인의 애정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제주를 공부하며 사랑에 빠지는데에는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더욱이 직접 올레길을 트레킹하며 그 매력에 걷잡을 수 없이 매료되었다. 그 후로, 쉼이 필요할 때면 제주 올레길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잠깐이라도 날아가 올레길의 기운을 느끼며 숨쉬고 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쉬멍, 놀멍, 걸으멍’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는 친환경 디자인의 진수를 알 수 있는 올레의 철학을 담은 슬로건이다.
 

간세
낮과 밤에도 길을 안내해주는 간세와 리본끈이 길라잡이가 되고, 완주를 인증하는 스탬프가 무엇보다 의미있는 올레길의 시그니처 관광상품이 된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역할을 다하는 간결하고 착한 소재의 안내판 디자인,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조화시켜 참여하게 하는 올레의 경험디자인은 지극히 자연친화적이다.

올레의 디자인은 간결하다. 페인트로 그린 화살표와 리본이 이정표가 되고 ‘간세’라는 작은 조랑말 모양도 정겹게 길을 안내해준다.
사회 환원의 일환으로 디자인재능기부를 펼치고 있는 현대카드와 협업하여 마련한 간세 이정표는 올레길 20개 코스에 1km마다 하나씩 설치가 되어 있다. 청실 홍실과 같은 리본끈은 간세를 세우기 힘든 장소에 나무 혹은 의자 등에 달아 길라잡이가 된다.

자연의 풍경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그 속에서 여행자의 편의와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된 그야말로 유니버셜 친환경 디자인인 것이다. 제주 올레의 마스코트가 된 조랑말 간세는 현재 걷고 있는 코스, 위치 번호와 종착점, 남은 거리 등이 표시되어 있어 혼자 트레킹하다가 길을 잃어도 구조요청시 본인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다. 그 흔한 안내판이 없어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 없이 아름다운 올레길을 걷고 또 걸을 수 있는 작지만 따뜻한 이유가 아닐까.

특히, ‘간세’는 제주도말로 ‘게으름뱅이’를 의마한다. 제주의 푸른 초원에서 느릿느릿 풀을 뜯으며 걸어다니는 조랑말처럼, 놀다 쉬다 천천히 가는 것이 좋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더구나 환경에 무해한 원료로 승인받은 친환경 소재로, 옥수수 추출 당분을 발효시켜 만든 천연생분해성 플라스틱이다. 폐기 시 땅속에 묻으면 아무런 해가 되지 않고 자연으로 분해되어 돌아간다. 더 놀라운 사실은, 간세를 설치할 때 고정을 위해 땅속에 심는 매립 구조물 역시 비바람에 부러진 나무들을 재활용하여 만든 지지대라고 하니 땅속까지 아름다운 올레길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러니 올레길 코스를 완주할 때마다 만나는 작고 귀여운 스템프를 수첩에 꾹꾹 눌러담아 모으는 일이란, 여행자들에게 올레를 오래오래 애정할 수 있는 덕질이자 인증이라 하겠다.

그러나, 최근 안타까운 얘기도 들려온다. 이토록 애정받는 제주 올레길이 최근들어 예전만큼 여행객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인간을 위한 편의시설과 숙박시설이 많이 생겨나고 기존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훼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날 것 그대로의 제주를 사랑하고 그 자연속에 일부가 되어 머물기를 자처하고 왔던 트레킹여행객들이 예전과는 달리 상업화된 일부 모습에 아쉬움을 느끼며 돌아간다. 본디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올레길이니 꾸며지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원했을 덴데 나 역시 10년 전의 올레와 지금의 올레 모습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주기를 갈망하며 날아왔으니까.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디자인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제주가 빚어 놓은 작품에 작은 리본을 달아 길을 안내해주는 일 그거면 충분하다. 어떻게 하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지켜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디자인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번 제주여행 내내 유달리 기억에 많이 남았던 풍경은 하늘의 구름이였다. 몽글몽글 엄청난 크기의 하늘을 가득 채운 구름떼,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기상이변으로 인한 북극빙하의 해빙으로부터 발생된 하늘의 시그널이라 한다. 모르고 봤다면 아름다웠을 풍경이 알고보니 달리 보였다.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는 디자인, 인간에게는 친절한 디자인이 하나되어 언제까지고 찾고 싶은 풍경이 되길 바라며 여행을 마친다.
 

 
류지희<디자이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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