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칼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 승인 2023.09.2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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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
나에게 있어 올 한해 가장 좋았던 전시는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이었다.

프랑코 폰타나와 JR의 사진전 그리고 평소에도 보고 싶었던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도 감동적이었다. 그 외에도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미술관과 도쿄에서도 블록버스터 급 전시를 감상하였지만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작품 전시가 마음에 특히 와 닿았다. 익히 알려진 대로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 회화까지 시대를 망라한, 그야말로 거장들의 작품들이다 보니 나 같은 문외한에게는 벌써 이름값으로 다가오는 뭔가가 있었다. 그리고 전시 주제 설정에서 밝혔듯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신으로부터 사람과 우리 일상으로 향하는 모습’을 간결하게 조명한 설득력 높은 멋진 전시였다.

그리고 좋은 작품과 그것을 멋지게 디스플레이 해놓은 것의 감동만큼이나 내셔널갤러리를 설명하는 영상에서도 감명을 깊이 받았다.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런던은 독일의 공습을 날마다 받게 되었다. 내셔널갤러리의 작품들을 이런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안전한 지하시설에 모두 옮겨놓게 되자 런던시민들은 더 이상 작품들을 감상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어떻게 하든지 그림을 볼 수 있게 해 달라. 하루에 한 작품이라도 좋다. 이러한 시민들의 요구에 영국 당국은 아주 제한적이지만 극소수의 작품이라도 감상할 수 있게 하였고 그것이 전쟁의 와중에 있는 영국민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는 얘기였다.

대구가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에 가입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육이오 전쟁의 와중에도 대구 도심에서는 바흐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것처럼 밤마다 포탄세례를 받는 런던 시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이면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그림 앞에 섰다는 얘기에 유럽 문화예술 저력의 근원이 어디인지 느낄 수 있었다.

몇 해 전 대구시 수성구와 독일 칼스루에 양 도시간의 교류사업 추진 방문단의 일원으로 독일 현지를 찾게 되었다.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에 들어서있는 세계적 수준의 문화예술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대단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현지에서 지켜본 결과 이런 인프라가 가능했던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있기 때문임을 느낄 수 있었다. 미술계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미술과 미디어 센터인 ‘ZKM 뮤지엄’은 전 세계 탑 랭크에 속한다. 여기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은 대단했으며 공연장인 흔히 칼스루에 국립극장이라고 부르는 바덴 국립극장에 대한 사랑 역시 이에 못지않았다. 이곳에서 제작하는 공연은 대단히 수준 높지만 세계 최정상급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오페라, 발레공연은 거의 매진 사례다. 극장 입구에서 “티켓 구함”이란 팻말을 들고 서 있기도 한다. 이런 시민들의 큰 호응과 애정 속에 ‘메이드 인 칼스루에’ 예술이 자랄 수 있다고 느꼈다.

지금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은 과거 대단히 뛰어난 외국인 지휘자들이 다수 거쳐 갔지만 지금과 같은 뜨거운 호응에는 다소 못 미쳤다. 그러던 중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가 낳은, 현시대 거장 지휘자 중 한명인 ‘두다멜’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마에스트로 곽승이 대구시향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시민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 뒤를 이은 코바체프의 재임기간을 거쳐 현재까지 시향의 공연은 당연히 매진이라고 여긴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구시향의 음악적 수준은 대단히 훌륭하며 앞으로 더 좋은 오케스트라가 될 자질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세계적 오케스트라를 향한 관계자들의 열망과 다소간 존재하는 약간의 빈틈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성원을 보내는 시민들의 큰 애정이 합하여 우리의 자산은 완성되어 갈 것이다.

내년도 세수가 부족해 정부를 비롯한 모든 지자체의 예산운용이 어려워질 거라는 얘기가 있더니 올해부터 그 현상이 닥쳤다. 국가적으로는 수십조, 우리 대구도 무려 세수 6,200억이나 부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비상 재정 체제에 돌입했다고 한다. 이런 체제에서는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아끼고, 쓰기 전에 다시 돌아보는 일이 일상이 된 것이다.

과거의 전례를 봤을 때 문화예술계가 상대적으로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기초예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원과 육성의 대상이다. 이것은 돈을 버는 장르가 아니라 써야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니 그렇다. 기초예술이 융성하고 따라서 그로인하여 산업으로서의 예술장르까지 활짝 꽃이 피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지원에 다소의 편차가 있었으며 이에 따라 관련 분야의 부침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의 창작열이 식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 역시 식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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